한 중증 장애여성이 장애인 시설에 다니며 한달내내 십자수를 놓아 받는 금액이 4만원.
그 돈은 정확하게 그녀의 한 달 버스삯으로 고시란히 쓰여진다. 하루에 점심 한 끼를 시설로부터 제공받는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종합한 결과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이익이 집중되는 것도 아니다. 대강 살펴보건데 버스회사만 그녀를 통해 한 달 4만원의 수익을 늘리고 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녀의 한 달 간의 사회적 노동가치는 4만원 정도가 마땅하다는 계산이다.
중증장애여성의 노동과 자본주의의 노동 가치를 함께 열거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렇다면 그녀의 노동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내가 주목하고 속상한 것은 그녀가 그 일에 지나치게 집중한다는 점이다.
중증임에도 아직 전동휠체어가 없는 그녀는, 팔의 장애때문에 바퀴를 굴릴 수 없어 수동 휠체어도 타지 못한다. 허리와 다리를 힘겨워하며 최소한으로 가눌 수 있는 그녀는 온 몸을 위태롭게 흔들며 분주하지만 아주 느린 속도로 길을 걷는다. 그러나 걷기는 그녀의 허리와 다리의 장애와 고통을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하게 한다. 그런 무리를 하면서도 그녀는 "그래도 돈받는 건데..."라며 좀처럼 결근을 하지 않는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5시45분에 일을 마친단다.
단지 4만원으로 보상되는 그녀의 성실함이 아깝다. 그 성실함에 대한 4만원의 보상이 화가 난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적 기준이다.
가장 근본적으로라면 "그녀가 다른 선택의 여지 속에서 지금 행복한가?"를 따져야 한다. 그 노동에 그 돈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런대로 일은 재미있다고도 했다. 노동 자체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문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녀의 조건으로 더 많은 돈을 받는 노동은 현재 그녀의 정보력으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돈을 떠나 다른 일을 하거나 배울 수 있는지를 알아볼 기회가 그녀에게는 애초에 없었다.
출생직후 버려져 시설로 넘겨졌고, 몇 곳 시설을 거치다 현재의 시설을 마지막으로 20대 중반인 1년 전 다른 중증장애여성 두 명과 함께 독립생활을 하고 있다. 차비로 다 나가버리는 4만원의 노동댓가 이외에 국가가 지급하는 1급장애수당 40만6천원이 그녀 수입의 전부이다. 공동생활비 25만원을 내고, 집을 나서는 중증 장애인의 필수 지출항목인 택시비에 나머지의 거의 대부분이 지출된다.
자신을 돌보아 준 시설에서 하는 십자수 작업이기에 그리고 그녀 몫의 전세보증금 400만원을 빌려 준 측이 시설이라고 믿기에(아마도 정부 정책에 따른 은행의 장애인전세자금 대출을 시설이 대행해준 것일 텐데...)그녀는 그것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에 대한 판단 없이 그 일을 마다하지 못하고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노동이든 다른 활동이든 자신의 욕구에 맞는 다른 일을 선택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룸메이트인 친구 장애여성의 강권으로 장애여성극단 ‘춤추는 허리’에서 '장애여성의 독립'을 주제로 한 연극을 공연하는 과정이 그녀에게는 다른 세상과 다른 장애여성들의 삶을 넘보는 계기가 되었다. 연극 연습과 십자수 출퇴근이 겹쳐 허리 통증으로 잠까지 설친다면서도 미련스럽게도 둘 다 거의 결석을 안했다.
지난 주 2박3일의 짧은 제주도 여행(문화관광부 지원)에서 만난 그 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곧 있으면 그녀에게 전동 휠체어가 생긴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그녀는 전동휠체어만 갖게 되면 여기저기를 찾아보겠다고 한다. 주변의 장애여성들이 어떤 일을 하는 지, 자신은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그러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전동 휠체어는 중증장애인들에게는 선택 가능성에의 접근이다. 효율성과 속도의 자본주의 세상에서 중증장애인들이 자신들의 대안을 시작하고 키워나갈 수 있는 열쇠이다. 돈이 아니라 ‘행복’이 어디에 있는 지, 자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자신과 세상을 만나 나갈 수 있는 필수불가결한 시작인 것이다.
그녀의 전동 휠체어가 그녀에게 4만원 이상의 자본주의적 보상을 줄 것이라고는 믿음은 없다.
그렇더라도 전동휠체어로 만나는 그녀의 세상이 우리들의 세상과 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선 자본주의에서 구체적인 실천을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들도 그녀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시작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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