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조교수.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왼팔장애’ 전지혜 교수 “장애학 책 한권이 인생 바꿔”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조교수는 유학중이던 2003년 가을을 잊지 못한다. 런던정경대 구내서점 서가 꼭대기에 놓인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미 일리노이주립대 출판사에서 펴낸 <장애학>(Disability studies)이었다. 그의 인생이 바뀐 순간이었다.
선천성 왼팔 장애인인 전 교수는 연세대 사회복지학과에서 학·석사를 마친 뒤 사회정책을 공부하기 위해 런던정경대를 택했다. 학부 시절 그는 시각장애인 교수가 가르치는 장애복지론 수업을 일부러 피했다. “같은 장애인 교수를 만난다는 게 불편했어요.” 이때만 해도 그가 걸어갈 학문의 영토에 장애가 낄 자리가 거의 없어 보였다.
2003년 이후 상황이 바뀐다. “기존 장애 관련 학문은 재활, 특수교육과 같이 장애 전문가 양성에 초점을 맞추지요. 하지만 장애학은 장애인의 관점에서 역사와 철학, 문화를 들여다봅니다.” 장애학의 견지에서 장애는 비정상이 아니라 몸의 개성이며 자연스런 현상이 된다.
전 교수는 최근 펴낸 <수다 떠는 장애>(울력)에서 장애학을 만난 뒤 장애인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석사를 마친 뒤 바로 일리노이주립대 장애학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장학금에 한달 생활비 1500달러까지 받는 조건이었다.
“장애학은 20년 전 영국 리즈대와 일리노이주립대를 중심으로 생겨났지요. 지금은 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와 컬럼비아대에도 생겼고, 일본과 캐나다 대학에도 장애학과가 만들어졌지요.” 한국은 아직 장애학과가 없다. “학문의 성격을 봤을 때 국립대에서 장애학과를 만들면 좋겠지요. 연초 국내에 장애학회가 출범했는데요. 창립 때 각 세션마다 200명 정도가 참여할 정도로 성황이었어요.”
그가 장애학을 공부한 시카고는 장애인이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 책에서 그는 시카고와 서울의 차이를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게 버스다. “지난해 서울서 비올 때 버스를 타다 발가락이 부러졌어요.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자리에 앉기도 전에 출발하는 바람에 넘어졌지요.” 승객이 좌석에 앉은 뒤 출발하면 문제가 없는데 이 기본이 무시되는 바람에 그와 같은 한팔 사용자에겐 위험천만한 일이 자주 벌어진다. 그래서 버스를 탈 때는 카드 대신 현금을 낸다. 승하차 때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시카고는 기사가 직접 일어나 장애인의 승하차를 도와주고 출발합니다. 답답할 정도로 느리지요. 다른 승객들도 기다려줍니다.”
그에게 어린 시절 버스는 ‘탈출하고 싶은 공간’이었다. 한 팔이 없는 그는 ‘참을 수 없는 타인의 시선과 말 고문’을 당해야 하고 심지어 어떤 엄마가 “너 계속 울면 저사람처럼 된다”고 아이를 달래는 말까지 감내해야 했다. 그는 정상인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깁스를 하고 다니는 대학생 얘기도 했다. 아직 장애 정체성이 생기지 않은 것이다.
전 교수는 자신도 미국에선 하지 않았던 의수를 서울에선 하고 다닌다고 했다. 의수를 화장이나 단정한 옷차림과 같은 일종의 예의 차리기로 받아들인다는 그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나와 사회와 부닥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서관과 같은 비장애인 시설도 찾아가 불편하면 바꿔달라고 요구해야 바뀝니다. 이상하게 보는 시선도 즐겨주라고 이야기합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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