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내 소원은 초원이가 저보다 하루 먼저 죽는 겁니다.”

영화 <말아톤>의 초원 엄마 경숙(김미숙)의 대사다. 발달장애를 가진 초원(조승우)이가 엄마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초원 엄마에게 우리 사회는 가혹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는 끝까지 희망을 부여잡는다. 초원이에게 마라톤을 훈련시키고 애정을 쏟는 전직 마라토너 코치 정욱(이기영)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 ㈜아삭은 발달장애 청소년과 가족에게 희망을 놓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기업이다. 회사 이름 아삭은 ‘아주 건강한 속삭임’이란 뜻이다. 1994년 설립된 ‘청소년과 사람 사랑’ 재단을 모법인으로 사업단 형태로 운영하다 2011년 7월 분리독립했다. 도시락과 케이터링 서비스를 통해 순이익의 66.7%를 장애 청소년과 취약계층의 교육과 자립 지원에 쓴다.

자립의 힘 키워주려 직업교육 시작

아삭의 이승연 대표는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교육 체계는 처음부터 설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아이들을 중심으로 동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발달장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 한명 한명 주의 깊게 관찰했어요. 그러면서 연극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단 한번도 영화관에 발을 들여놓지 못한 아이들에게 문화를 경험하게 해야겠다 결심했죠. 또 부모님들을 만나다 보니 (초원 엄마처럼) 하루라도 아이보다 더 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발달장애 친구들이 일자리를 갖고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도록 직업교육을 하게 되었죠. 인턴십 직업 체험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체험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만들어갔죠. 재단 1층에 위치한 ‘카페 꿈 너머’는 그런 취지에서 만들었어요.”

하지만 졸업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이 다시 돌아오기 일쑤였다.

이승연 대표는 “좀더 다양한 직업 체험 기회를 주고, 만약 사업적인 가능성이 보이면 직접 일자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이들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실패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게” 목표였다. 실제 플라워숍을 개장했다가 문을 닫기도 했다. “실패를 해도 괜찮습니다. 잘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해가는 교육의 과정이니까요.”

급식 직접 조리해주다 아이디어 반짝

대표 상품인 ‘아삭도시락’ 역시 아이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아이들 급식을 외주업체에 맡겼는데, 처음엔 비위생적인 처리 때문에 거래를 중단했고, 두번째는 ‘아이들이 너무 많이 먹는다’며 업체가 철수해버렸다. 이 대표는 스스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30여명의 음식을 직접 조리해 제공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들 중 야유회 가는데 김밥을 싸줄 수 있느냐, 샌드위치를 만들어줄 수 있느냐는 등의 ‘단체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시락을 만들어 팔면 어떨까? 아이들을 위한 일자리가 보였다.

‘규모의 경제’ 대신 ‘건강 도시락’으로

도시락 업체 ‘곰아저씨에프앤비(F&B)’를 설립해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분리시켰다. 발달장애인 3명과 1명의 고령자, 요리 전문가, 마케팅 전문가, 행정담당직원 등 7명이 근무하고 있다. 아삭이 배달 서비스(a-sak.co.kr) 등 유통을 돕고 있다. 현재 도시락 메뉴는 7000원~3만5000원 선이다. 규모의 경제로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에 ‘건강한 도시락’으로 승부를 걸었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제품을 미리 만들지 않는 것이 아삭의 전략이다. 도시락 하나하나에 가격에 걸맞은 정성을 쏟는다는 것이다.

단체 급식은 대기업 시장이어서 소규모의 급식 시장을 타깃으로 했다. 현재는 대부분 공기업에 판매되고 있지만, 집에서 하는 돌잔치 같은 소규모 행사의 케이터링 서비스도 가능하다. 이 대표는 “가수 성시경씨 팬클럽에서 단체주문을 해오기도 했다”고 자랑했다. 성공적인 모델로 성장하면 아이들과 학부모가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직접 가게를 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아삭의 꿈이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gobog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