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은 선생님과 이송희(오른쪽)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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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드득 소리로 금강산 봤어요”
“야호~!”
지난 21일 흰눈에 푹 싸인 금강산 구룡연 계곡. 서울맹아학교 5학년 이송희(13)양이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담긴 옥류동 무대바위에서 금강산 정상을 향해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그리고 산의 대답을 들을 요량인지 가만히 눈을 감는다. 비장애인에겐 아무것도 아닌 산행이지만, 2년 전인 11살 때 뇌수막염을 앓고 시력을 잃어버린 송희에겐 참 쉽지 않은 길이었다. 한걸음 한걸음을 맹아학교 김태은(32) 선생님의 손과 말에 의지해 힘들게 옮겨야 했다. 김 선생님이 “계단, 계단”하고 외치거나 “오른쪽 낭떠러지야”라고 주의를 주면, 송희의 발걸음은 주춤한다. 경사가 조금 높아지면 선생님이 앞에 서고 송희가 뒤에 서는 ‘기차놀이’ 모양으로 한걸음씩 앞을 향해 나아가기도 했다.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너무 좋아요.”
힘든 산행이었지만 송희는 뽀드득 소리 하나에도 금강산을 느끼며 기뻐했다. 구룡연 입구에 있는 북한 식당인 ‘목란관’을 떠나, 코끼리 거북 등 동물들이 절경에 놀라 멈춘 채 돌이 됐다는 ‘앙지대’를 지나고, 인삼과 녹용이 섞인 듯 효능이 좋다는 약수터 ‘삼록수’를 넘으면서, 송희의 얼굴에 힘든 기색이 역력해졌다. 하지만 송희는 “더 올라갈래요”라며 의지를 꺾지 않는다. 금강산에 오기 전 자기 자신과 한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송희의 이번 산행은 통일부와 교육부가 ‘통일체험학습’ 프로그램에 장애가 있는 청소년들을 포함시킨 뒤 첫 번째로 송희를 비롯한 서울지역 장애 학생 21명을 초대해 이뤄졌다. 송희는 겨울 산행이 처음이라 많이 망설였지만, 말로만 듣던 북한 사람도 만나고 싶었고,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어 금강산행을 결심했다. 계곡 중간중간 금강산의 설화를 들려주는 북한 안내원들도 송희한테 따뜻한 관심을 보여줬다. 안내원들은 송희를 보고는 “어카나” 하며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용하다”며 힘을 북돋워주기도 했다.
힘겨운 발걸음 끝에 송희는 마침내 옥류동 무대바위에 올라섰다. 무대바위 위에 선 송희가 감았던 눈을 떴다. 금강산의 대답을 들은 것일까. 아니면 금강산에 간절히 어떤 소원을 털어놓은 것일까. 다시 산 아래로 발걸음을 옮기는 송희는 금강산에 오르기 전과는 분명 달라진 송희일 것이다. 송희의 등 뒤로 “부모님과 함께 꼭 다시 금강산을 찾아오라”는 북한 안내원의 말이 정겹게 쫓아온다.
금강산/글·사진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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