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역사가 1일 오후 서울 강동구 암사동 한국점자도서관에서 알루미늄판에 점자요철 작업(점자판에 글자를 새기는 것)을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출판사, 원본파일 공개 꺼리고
점자도서관끼리 정보교환 안돼
점자 번역사 인력 양성도 시급
시각장애인 강복동(23·서경대 3년)씨는 1학기에 수강한 다섯 과목 가운데 두 과목을 교재 없이 공부했다. 일본어를 전공하는 강씨는 시각장애인복지관에 교재 점역(일반 책을 점자로 옮기는 일)을 신청했으나 학기가 다 지나도록 두 권밖에 받아보지 못했다. 그는 “올해 12월에 있는 일본어능력시험 교재도 미리 점역 신청을 해놓았지만, 완성된 부분부터 받아봐도 시험 전에 다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국어를 전공하는 강명옥(46·한국방송통신대 2년)씨는 “학기 중에 교재라도 제때 번역이 되면 다행이고, 참고도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전문 분야를 공부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역 전문서적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국 점자도서관과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제작 되는 새 점자책은 1년에 5천여권. 소설류의 베스트셀러가 대부분이다. 전공서적이나 전문도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 시각장애인을 위한 출판물의 70% 정도를 제작하는 한국점자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점자책은 2만여권. 이 가운데 문학이 8777권으로 46%를 차지한다. 점역된 전문도서가 부족한 이유는 수요가 적고 전문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들 책을 필요로 하는 시각장애인은 전맹(전혀 앞을 볼 수 없는 사람) 2만6천명 가운데 대학생 380명을 포함해 1천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특히 외국어와 수학, 과학, 컴퓨터 등은 이 분야를 전공한 점역사가 드물어 더 취약하다. 중국어는 점역사가 국내에 1명뿐이다. 출판사들이 파일 유출과 저작권 보호 등의 이유로 책 원본 파일을 점역기관에 넘겨주는 것을 꺼리는 것도 걸림돌이다. 육근해 한국점자도서관 관장은 “출판사에서 책 내용이 담긴 원본 파일을 바로 도서관이나 복지관 쪽에 넘겨주면, 워드로 옮기는 작업 없이 바로 점역 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분량이 많은 전공서적은 원본 파일을 바로 받아 제작하면 제작기간을 10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길게는 3~4개월이 걸리는데 워드프로세서 작업만 1~2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점자 책을 만드는 시각장애인복지관들과 전국 32곳에 이르는 점자도서관들이 정보교환을 원활하게 하지 못해, 책을 중복 제작해 인력을 낭비하기도 한다. 육 관장은 “선진국처럼 중앙도서관을 주축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점자 파일을 관리하면 중복제작을 피하고 다양한 점자 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주희 기자, 강나림 인턴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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