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텔레뱅킹 아직도 ‘그림의 떡’
HSBC·하나·산업은행 등 점자카드 발급안해…인권위에 진정
“저희는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만 사용하므로, 시각장애인은 텔레뱅킹 서비스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시각장애인 허아무개(44)씨는 12일 홍콩상하이은행(HSBC)에 전화해 텔레뱅킹 업무에 관해 물어보려다 ‘다른 은행을 이용하라’는 대답을 들었다. 이 은행은 원격거래 서비스에서 보안카드 대신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를 쓰도록 하고 있다. 생성기는 이용할 때마다 즉석으로 비밀번호가 만들어지도록 보안을 강화한 서비스다. 그러나 이 번호는 눈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 한아무개(28)씨도 비슷한 불편을 겪었다. 지난달 취업한 회사의 주거래은행이 하나은행이어서 새로 계좌를 만들었는데, 이 은행이 점자 보안카드를 발급하지 않아 텔레뱅킹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은행에 항의했지만 “죄송하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현재 시중은행 9곳과 특수은행 5곳, 새마을금고 가운데 점자 보안카드 등을 발급하지 않는 곳은 홍콩상하이은행·하나은행·한국산업은행과 새마을금고이고, 대부분의 은행은 5년여 전부터 점자 보안카드를 발급해 왔다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밝혔다. 이 연구소는 지난 6일 이들 은행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어겼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허주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전남지소장은 “보안카드는 텔레뱅킹을 이용하려면 꼭 필요한데, 이를 발급하지 않는 것은 시각장애인을 고객으로 보지 않는 차별적 태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 관계자는 “인터넷뱅킹에서 음성지원 서비스를 준비하느라 미처 마련하지 못했다”며 “곧 점자보안카드도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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