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농학교 야구부 선수들이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학교 운동장에서 창단식을 마친 뒤 첫 훈련으로 배팅 연습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서울농학교 야구단 ‘서울 드래곤즈’ 창단
야구복·장비 등 주변도움 받아
공친 순간 짜릿 ‘조용한 함성’
WBC 계기로 지원 늘었으면
야구복·장비 등 주변도움 받아
공친 순간 짜릿 ‘조용한 함성’
WBC 계기로 지원 늘었으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교동 국립서울농학교 운동장. 중1년생인 승지(13·여)의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9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학교 사상 처음으로 야구단이 창단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야구단 막내인 승지도 자주색 운동복을 멋지게 차려입었다. 창단식 행사장 천막 아래 자리잡은 승지는 야구복을 연방 매만졌다. 승지가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수화로 “야구복 바지의 선이 멋있죠”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흥분한 건 중·고생 오빠들도 마찬가지였다. 키가 187㎝인 고3 경호(18)는 제법 야구선수 태가 났다. 경호는 “나중에 커서 경찰 특공대가 되고 싶은데, 야구도 해보고 잘되면 선수도 되고 싶다”고 역시 손으로 말했다. 이 학교 서기홍 체육교사는 “아침에 야구복을 나눠줬는데, 아이들이 옷을 ‘눈 본 듯, 꽃 본 듯’ 하더라”며 즐거워했다.
국내 최초 농학교 야구단인 충주 성심학교 야구단 친구들이 축하차 이른 아침부터 찾아왔다. 하얀색 야구복을 입은 성심학교 학생들은 금방 자주색 야구복의 새 친구들과 섞였다. 운동장에서 성심학교 선수들이 공을 주고받는 시범을 보이자, 구경하던 서울농학교 선수들의 입은 금방 벌어졌다. 고2 대흥(17)이는 “성심학교 친구들은 야구를 잘해 부럽다”고 했고, 성심학교 코치가 던져준 공을 받아 친 고3 경호(18)는 “공을 치는 순간 손에 짜릿한 느낌이 들어서 행복했다”고 했다. 서울농학교 야구단 감독을 맡은 심형보 서울시 주택국 공무원은 “아이들이 기대보다 볼 감각이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서울농학교 야구단의 이름은 ‘서울 드래곤즈’로 결정됐다. 창단식에서 박건실 서울농학교 교감은 “용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피부의 진동으로 감지한다고 해서, 청각장애를 뜻하는 한자인 ‘농’(聾)도 용(龍)과 귀(耳)가 합해져서 만들어졌다”며 야구단 이름의 유래를 설명했다. 성심학교의 서문은경 교사는 “두 학교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함께 실업팀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 드래곤즈’의 용틀임에는 서울시청 야구동호회 회원들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회원들은 지난해 ‘농학교에 야구단이 있으면 청각장애 청소년들이 더욱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야구단 창단을 도와주기로 결의했다. 회원들은 특히 다른 아마추어팀과 친선경기를 벌일 때 ‘승리투수 1만원, 구원 성공 5000원, 홈런 1만원’이란 나름의 ‘기부 공식’까지 만들어 창단 작업을 도왔다. 소식을 들은 서울시도 야구복 제작에 돈을 지원했고, 대한야구연맹은 말랑말랑한 연식공과 야구 물품을 제공했다. 시청 동호회원들은 매주 토요일 농학교를 찾아 야구를 지도할 계획이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박영길 한국실업야구연맹 회장(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팀의 선전으로 야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장애인이나 어린이들을 위한 기반 조성에도 많은 지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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