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엔젤레스 슈라이너병원에서 막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온 윤장호(침대에 누운 이)군을 어머니(장호군 오른쪽 뒷편)와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다른 한국 청소년들이 격려하고 있다.
충남도 - 미 슈라이너 병원 화상 보듬고 기형 다듬어 잃어버린 꿈 ‘새살’ 돋게 “다시 운동장에 나가 축구공을 찰 수 있는 희망이 보여요.” 미국 로스엔젤레스 남부의 슈라이너 어린이 전용병원 3층에 입원 중인 윤장호(13·충남 천안중 2)군은 통증을 느끼는 가슴을 부여잡고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축구 국가대표’가 될 꿈을 다시 키우고 있다. 장호는 2003년 3월 26일 밤 11시께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 난 불로 얼굴, 배, 발 등에 심한 화상을 입고 축구선수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4월 슈라이너병원에서 받은 9시간에 걸친 얼굴 성형수술 등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뭉퉁거려진 발 부위 수술도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축구선수 희망 다시 보여” 장호가 수술을 받고 입원실로 돌아오자, 이 병원에서 수술받고 입원치료 중인 이가영(6·공주), 신은경(9·천안), 석미경(17·공주)양 등이 찾아와 그를 격려했다. 가영이는 3살 때 자동차 불로, 미경이는 5살 때 집에 불이나 얼굴 등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은경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끓는 물을 뒤짚어 써 등과 엉덩이, 다리 부위가 온통 거북이 껍질 모양처럼 변했다. 이들은 모두 화상 흉터 등으로 인해 외출을 삼가거나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 못하는 등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여러 차례 받아야 하는 성형수술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들의 삶에 희망이 보인 것은 1997년 3월 충남도와 미국 슈라이너병원 사이에 장애인 무료시술 협정을 맺으면서부터다. 18살 이하의 정형 및 화상 장애 어린이들에 대해 예비검진과 항공료, 체제비만 충남도가 부담하면 나머지 수술과 치료비는 슈라이너병원이 맡기로 했다. ‘사랑의 인술사업’이라는 이 장애아동 무료시술은 98년 4월 척추만곡증을 가진 이미애(당시 15살·공주)씨가 첫 대상자가 된 이후 현재까지 모두 51명이 치료를 받았고, 24명이 대기 중이다. 이미 51명 ‘제2의인생’ 시작 이미애씨는 수술 뒤 성격이 밝아지고 매사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게 됨으로써 기술습득을 한 뒤 한 전자회사에 취업해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200만불의 사나이’로 불리는 안상현(18·아산)군은 발목의 관절이 없어 좌·우 다리가 15㎝가 차이가 나는 선천성 기형을 가졌다. 관절을 새로 만들어 넣는 수술을 받은 뒤 그는 키가 7㎝나 커지고 걷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다. 이는 미국에서도 전혀 새로운 의료시술 사례가 됐다. 슈라이너병원의 외과전문의 존 로렌스(45)박사는 “‘풍선요법’이라는 새로운 수술법을 사용해서 성공했으며, 이를 미국 의학계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충남도와 슈라이너병원 간의 사랑의 인술사업에는 숨은 공로자들이 있다. 캘리포니아 충청향우회(회장 김춘식)의 고국사랑, 고향사랑에 기초한 헌신적인 봉사정신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다. 충청향우회는 두 기관의 무료 시술협정을 주선했다. 또 수술을 받으러 오는 어린이들을 공항에서 마중하는 것부터 병원 입원수속, 거처 마련, 놀아주기 등 귀국할 때까지 든든한 후견인 노릇을 하고 있다. 완치돼 귀국한 청소년들에게는 해마다 2000달러의 장학금을 주며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다. 전경구 향우회 사무총장은 “이런 일로 구심점이 생겨 교포끼리 서로 뭉치고 있다”며 “고국의 장애청소년들이 교포들의 단합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사랑의 인술사업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슈라이너병원은 2002년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인 점을 들어 무료 치료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슈라이너병원은 52년 미국의 성공한 사업가와 주민들이 성금을 내어 만든 ‘슈라인재단’이 운영하며 제3세계 장애어린이를 무료로 치료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세계 무역강국 한국을 제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포들도 ‘내 일처럼’ 도와 당시 충남도는 부지사를 병원에 보내 어려운 도내 장애아동의 실태를 담은 비디오를 틀어주면서 호소해 무료 치료인원을 오히려 늘려 받았다. 그 뒤 슈라이너병원 쪽은 한국 어린이를 위해 한국인 간호사 6명을 채용했고, 한국어 서적과 인터넷을 갖췄다. 또 한국 어린이의 날도 선포했다. 프랭크 라봉테(58)병원장은 “미국도 기부금이 줄고 있어 슈라이너병원도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충청지역 장애아동의 무료 치료는 계속할 것”이라며 “충남도도 아이들의 사후관리에 각별히 신경 써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로스엔젤레스/글·사진 손규성 기자 sks2191@hani.co.kr
전액 기부금으로 ‘자선’…미국등에 22곳 ■ 슈라이너 병원은 %%990002%%
슈라이너병원은 1872년 미국의 성공한 사업가 등이 ‘인류 자선’을 목표로 만든 ‘슈라인(Shrine)재단’에서 1922년부터 세우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에 20개, 캐나다와 멕시코에 각각 1개씩 같은 이름의 병원이 22개 있다. 슈라이너병원은 18살 이하의 화상 및 선천성 기형환자를 국적에 관계 없이 전액 무료로 치료해주고 있다. 슈라이너병원은 설립한 뒤 첫 40년 동안 의사들이 무보수로 일을 했다. 그 뒤 1980년까지는 시간제로 보수를 받는 의사들이 일했다. 80년 이후에야 비로소 의사들과 간호사들에게 제대로 보수를 주기 시작했다. 전액 기탁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슈라이너병원은 일반 기탁자를 7개 등급으로 구분해 증서와 증표를 준다. 25만달러 이상의 고액 기탁자에게는 액수에 따라 동, 은, 금메달을 증정하고, 동메달 이상은 메달을 병원 현관 입구 벽에 부착해 영구히 기념하고 있다. %%990003%%엘에이 슈라이너병원은 1952에 설립돼 현재까지 3만6천여명을 치료했으며, 4900여명이 대기 중에 있다. 전문의 43명과 간호사 80명 등 모두 260명의 직원이 있으며, 2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병원 일을 돕고 있다. 51명의 한국 장애아동을 치료한 프랭크 라봉테(58·사진) 병원장은 “수줍음이 많은 한국 어린이들의 치료 성과를 높이기 위해 낯선 문화와 환경에 빨리 적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인 간호사 6명을 추가 배치한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치료를 마친 아이들이 자신감, 믿음, 세상에 대한 확신을 갖고 퇴원하는 모습을 볼 때 이 병원의 설립 취지에 긍지를 가진다”며 “정부 지원 없이 순수 민간인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로스엔젤레스/손규성 기자 sks219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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