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자판기 사업 미끼 29명에 10억 모아
판매권 못 따 원금 까먹으며 1년간 ‘쉬쉬’
판매권 못 따 원금 까먹으며 1년간 ‘쉬쉬’
담배 자동판매기 위탁사업을 한다며 장애인들한테 투자금을 끌어들인 한국장애경제인협회가 담배 판매권조차 따지 못한 채 1년6개월 만에 사업을 중단해 수십 명의 장애인 투자자들이 돈을 떼일 처지에 놓였다. 한국장애경제인협회는 장애인의 경제활동 참여와 창업을 돕기 위해 2006년 장애인기업활동촉진법에 근거해 만들어진 비영리 법인이다.
2006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담배 자판기 위탁사업을 승인받은 이 협회는 지난해 1월 “5천만원을 투자하면 5년 동안 매달 225만원을 벌 수 있다”며 장애인 투자자를 모집했다. 협회는 금융권 대출까지 알선하며 투자를 홍보했고, 장애인 29명이 평균 4천만~5천만원씩 모두 10억여원을 이 사업에 투자했다.
그러나 사업은 시작부터 삐거덕댔다. 협회는 중기청의 승인 규정을 어기고 사업권을 한국장애경제인자판기주식회사(자판기주식회사)에 재위탁했고,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대부분 “케이티앤지 이외의 기업이 담배 자판기를 운영한 전례가 없다”며 소매 판매권을 내주지 않았다. 결국 협회가 지금까지 설치한 자판기는 애초 계획인 290대에 한참 못 미치는 14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협회는 매달 투자금에서 일부를 떼어 보전해 주는 식으로 투자자들한테 이런 사실을 1년여 가까이 숨겼다. 이 사업에 4천만원을 투자한 김만현(49)씨는 “수익금이 약속보다 적고 이마저 밀리는 일이 잦아진 뒤에야 자판기 사업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지난 3월 위탁업체인 자판기주식회사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지만, 이 업체는 이미 세금 체납 때문에 지난 2월 문을 닫은 뒤였다.
빚까지 내서 투자한 장애인들은 수익금은커녕 대출 이자와 생활고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2천만원을 대출받은 김만현씨는 “지난 7월 은행 대출이 만료돼 독촉장이 날아왔다”며 “고2, 고3 아이들 교육비에 보태볼까 투자를 했는데 마이너스 통장만 생겼다”고 말했다. 장애인 아버지를 둔 정연흥(34)씨는 “아버지 노후를 위해 내가 2천만원을 대출받고 위탁업체 보증으로 3천만원을 끌어댔다”며 “제발 원금만이라도 건졌으면 좋겠다”고 한탄했다.
투자자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협회는 투자금 상환을 약속했지만, 지난해 12월과 올해 7월에 이어 또다시 오는 11월 말로 상환 기일을 계속 연장하며 버티고 있다. 협회는 사업 운영비와 이자 등으로 투자금의 상당 부분을 까먹은 상태다. 이 협회 신동진 기획관리본부장은 “신규 자금을 유치하는 중이며, 조속한 시일 안에 원하는 이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주겠다”고 해명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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