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장애인 박정혁(39)씨는 지난 10일 퇴근길에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에서 아찔한 일을 경험했다. 승강장에서 전동차에 막 오르려는데 휠체어 앞바퀴가 턱에 걸리면서 휠체어 지지대가 부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 역은 승강장보다 전동차 문턱이 5㎝ 남짓 높았다. 박씨는 “휠체어에 의지하는 아내는 1호선 신이문역에서 내리다가 승강장이 전동차보다 너무 낮아 앞으로 고꾸라진 적이 있다”며 “휠체어 무게가 200㎏에 이르는데 사람들한테 매번 부탁하기도 미안하다”고 말했다.
서울 주요 지하철 역 승강장과 전동차 문턱의 높이가 많게는 10㎝ 이상 차이가 나 휠체어 장애인들의 사고 위험이 높다. <한겨레>가 지난 21∼22일 서울 1∼8호선 지하철역 50곳을 무작위로 조사한 결과,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의 높이 차이(단차)가 ‘5㎝ 이상’인 역이 21곳으로 절반 가량인 42%에 이르렀다. ‘5㎝ 미만∼2㎝ 초과’인 곳은 11곳(22%), ‘2㎝ 이하’인 곳은 18곳(36%)으로 조사됐다. 특히 3호선 충무로역과 4호선 서울역은 각각 12.5㎝, 11㎝로 10㎝ 이상 차이가 났다. 현행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에는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 간격에 대한 규정(5㎝)은 있지만 높이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 다만, 현행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에는, 건물 등 편의시설의 단차를 ‘2㎝ 미만’으로 규정하고 있다. 편의시설 기준을 따르면 조사대상 10중 6곳 꼴로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하철 2호선과 1·3·4호선 일부를 운영하는 서울메트로 김정환 보도차장은 “1호선은 1974년, 2·3·4호선은 80년대 초·중반에 건설됐다”며 “당시 역마다 지형이 달라 높이 차이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도시철도공사 박병준 건축팀 과장은 “승객이 많으면 열차가 아래로 꺼질 수 있어 약간 높게 설계됐다”며 “1990년대 만들어진 5·8호선은 5㎝ 안팎인데 비해 2000년 이후 개통된 6·7호선은 기술 발달로 1.5㎝ 수준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일부 역은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면서 높이 차이를 교정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1호선 종로3가역과 2·4호선 동대문운동장역 등은 스크린도어 설치 때 승강장 끝부분을 약간 오르막으로 설계해 높이 차이를 2㎝ 아래로 줄였다. 그러나 스크린도어를 새로 설치한 4호선 동대문역은 여전히 5㎝ 남짓 단차가 난다. 오는 2010년까지 스크린도어 설치를 마칠 예정인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는 “스크린도어 설치 때 승강장과 열차의 높이 차이를 줄이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1·3·4호선 일부와 분당·중앙선을 운영하는 한국철도공사는 “담당 부서간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조미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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