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눈 대신하여…책 읽어줄 분 찾습니다”
시각장애인들 녹음도서 태부족
수능도 ‘막막’ 침술공부도 ‘첩첩’
자원봉사자들 애타게 기다려
수능도 ‘막막’ 침술공부도 ‘첩첩’
자원봉사자들 애타게 기다려
“다섯 번 이상 반복해서 들으면 그제서야 조금 이해가 가죠.”
1급 시각장애인 이용희(44·서울 강북구 수유동)씨가 사용하는 녹음기의 ‘되감기’와 ‘재생’ 단추는 하얗게 닳아 있다. 나이 마흔에 “살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앞이 보이지 않기에 그 한테는 목소리를 녹음한 ‘녹음 도서’가 없어선 안 될 존재다. 처음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하루에 세 시간만 잤다. 그렇게 3년을 공부해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졸업장을 딸 수 있었다.
이씨는 세 살 때 노점상 어머니가 미군 차량에 치어 세상을 떠난 뒤 영양결핍으로 시력을 잃었다. 안마사 자격증을 따려고 시각장애인 교육시설의 문을 두드렸다. “중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입학이 가능하더군요.” 초등학교 졸업인 그가 공부를 시작한 이유다.
점자조차 못 배운 이씨가 녹음도서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고, 수능시험의 수리·언어영역처럼 일정한 지식이 요구되는 분야는 더 심했다. ‘책 읽어주는 사람’을 찾아 녹음도서를 손에 쥐려면 6개월~1년을 기다려야 했다. 급한 마음에 서울 실로암시각장애복지관 등 전문기관 5군데를 뛰어다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이씨는 “다른 사람보다 공부하는데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전문직종 취업을 준비 중인 시각장애인들 역시 녹음도서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한자·외국어가 섞여있는 전문서적의 녹음도서를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침술 공부를 하는 1급 시각장애인 이정환(39·강원도 홍선군 동면)씨는 “실습이 마땅찮아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넓혀나가야 하지만, 구할 수 있는 건 10년 전에 녹음된 낡은 테이프 뿐”이라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자격증이 있어도 성공할 확률이 적은데 공부하는 과정은 그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용희씨는 ‘세상이 가장 어두울 때 희망을 접지 않는 사람이 마지막에 빛을 바라본다’는 말을 매일 아침 되새긴다고 한다. “법대에 들어가는 게 제 목표입니다. 민법·형법 등 법 공부를 하려면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겠지요. 그 분들의 도움을 받아 법조인이 된다면 나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줄 겁니다”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는 김선희(28)씨는 “복지관에 서적녹음을 부탁하는 사람은 많지만 책을 읽어줄 자원봉사자들은 외려 줄고 있다”며 “소설책 등은 사정이 낫지만 전문서적은 봉사자를 찾기가 힘들도 그나마 중간에 개인 사정으로 쉽게 그만 두는 게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지금도 수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자신의 눈이 되어줄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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