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쟁이네’ 식구들이 함께 모여 활짝 웃고 있다. 대한사회복지회 제공
재활원 나와 독립된 가정 꾸린 ‘쟁이네’
손 불편 동수·다리 못쓰는 영수
서로 손발돼 청소하고 빨래
요리사 꿈 석영이는 식사당번
“이웃 갈등도 아이들에겐 공부” 동수(13·가명)는 오른손이 없다. 왼손도 짧게 달린 손가락 네 개뿐이다. 하지만 빨래 당번, 식사 당번을 미루지 않는다. 학교 가는 날, 당번 일을 못 할 때는 신발장 청소라도 한다. 동수가 실수 없이 집안일을 척척 하는 것은 영수(14·가명) 덕분이다. 뇌성마비인 영수는 다리가 불편하고 말은 어눌하지만 손으로 하는 일은 거뜬히 해낸다. 동수가 일할 때 늘 옆에 있어 준다. 둘을 따라다니며 “깨끗이 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은철(13·가명)의 몫이다. 동수·영수·은철 ‘삼총사’는 2005년 8월부터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34평짜리 단층주택, ‘쟁이네’에서 서로 손발이 돼 가족을 이뤄 산다. 같이 사는 어른은 없다. 지난 25일 저녁, 삼총사 말고도 석영(16), 광석(18), 만수(15)까지, 식구 여섯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재활원에서 독립해 나오기 전부터 아이들을 5년째 지켜봐 온 사회복지사 이정민(26)씨는 “쟁이네라는 이름은 각자 가진 개성을 마음껏 펼치며 살라는 뜻에서 붙였다”며 “가정을 이루고 살림을 해보는 게 사소한 연습처럼 보이지만, 부모 없이 자라고 정신지체가 있는 여섯 아이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성인 복지시설로 갈 나이에 가까운 청소년기 남자 아이들로 일종의 예행연습 차원에서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식사 시간. 이날 요리는 닭튀김이다. 냉장고에 붙어 있는 11월 식사당번 표에 써 있는 당번은 사회복지사의 요리를 돕고, 나머지는 상 차리는 것부터 설거지까지 스스로 한다. 3년 동안 요리사의 꿈을 키워 온 석영이는 식사당번일 때가 가장 행복하다. 최근 시력이 떨어져 칼을 잡지 못하지만, 백색증으로 하얀 머리를 갸웃거리며 “가위도 있다”며 너스레를 떤다. 아이들의 쟁이네 생활을 돕고 있는 이씨는 “처음에는 이가 빠지지 않은 접시가 없었고, 빨래도 늘 엉망이었다”며 “3년 동안 스스로 살림을 꾸리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표현하는 법을 배웠고, 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터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영수, 은철이가 전학 간 친구를 만나고 싶다며 지하철 타기를 배우려고 나선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웃과 갈등도 있었다. 아이들만 보면 사납게 짖던 개를 ‘삼총사’가 나서서 힘껏 발로 차 혼내 주었다. 집값이 떨어진다는 반대를 무릅쓰고 가까스로 집을 얻어 들어간 동네였지만, 선생님은 아이들을 꾸짖지 않았다. 아이들의 ‘쟁이네’ 생활을 열어준 암사재활원의 정민희(53) 원장은 “이웃 갈등 자체도 아이들에겐 공부였다”며 “이웃이 찾아오고 화해하면서 구성원으로 자라가는 아이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여섯 친구들의 때이른 올 성탄절 소망은 “디카를 갖는 것”이다. 성년이 돼 떠나는 친구들을 찍어서 기억하고 싶고, ‘이쁜 엄마’(재활원 교사)도 찍어주고 싶어서다. 대한사회복지회 산하 암사재활원은 10년 동안 모은 개인들의 후원기금으로 ‘쟁이네’에 이어 내년께 사춘기 여자 아이들로 가족을 이룬 ‘작은 아씨들’의 보금자리도 꾸릴 계획이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서로 손발돼 청소하고 빨래
요리사 꿈 석영이는 식사당번
“이웃 갈등도 아이들에겐 공부” 동수(13·가명)는 오른손이 없다. 왼손도 짧게 달린 손가락 네 개뿐이다. 하지만 빨래 당번, 식사 당번을 미루지 않는다. 학교 가는 날, 당번 일을 못 할 때는 신발장 청소라도 한다. 동수가 실수 없이 집안일을 척척 하는 것은 영수(14·가명) 덕분이다. 뇌성마비인 영수는 다리가 불편하고 말은 어눌하지만 손으로 하는 일은 거뜬히 해낸다. 동수가 일할 때 늘 옆에 있어 준다. 둘을 따라다니며 “깨끗이 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은철(13·가명)의 몫이다. 동수·영수·은철 ‘삼총사’는 2005년 8월부터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34평짜리 단층주택, ‘쟁이네’에서 서로 손발이 돼 가족을 이뤄 산다. 같이 사는 어른은 없다. 지난 25일 저녁, 삼총사 말고도 석영(16), 광석(18), 만수(15)까지, 식구 여섯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재활원에서 독립해 나오기 전부터 아이들을 5년째 지켜봐 온 사회복지사 이정민(26)씨는 “쟁이네라는 이름은 각자 가진 개성을 마음껏 펼치며 살라는 뜻에서 붙였다”며 “가정을 이루고 살림을 해보는 게 사소한 연습처럼 보이지만, 부모 없이 자라고 정신지체가 있는 여섯 아이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성인 복지시설로 갈 나이에 가까운 청소년기 남자 아이들로 일종의 예행연습 차원에서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식사 시간. 이날 요리는 닭튀김이다. 냉장고에 붙어 있는 11월 식사당번 표에 써 있는 당번은 사회복지사의 요리를 돕고, 나머지는 상 차리는 것부터 설거지까지 스스로 한다. 3년 동안 요리사의 꿈을 키워 온 석영이는 식사당번일 때가 가장 행복하다. 최근 시력이 떨어져 칼을 잡지 못하지만, 백색증으로 하얀 머리를 갸웃거리며 “가위도 있다”며 너스레를 떤다. 아이들의 쟁이네 생활을 돕고 있는 이씨는 “처음에는 이가 빠지지 않은 접시가 없었고, 빨래도 늘 엉망이었다”며 “3년 동안 스스로 살림을 꾸리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표현하는 법을 배웠고, 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터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영수, 은철이가 전학 간 친구를 만나고 싶다며 지하철 타기를 배우려고 나선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웃과 갈등도 있었다. 아이들만 보면 사납게 짖던 개를 ‘삼총사’가 나서서 힘껏 발로 차 혼내 주었다. 집값이 떨어진다는 반대를 무릅쓰고 가까스로 집을 얻어 들어간 동네였지만, 선생님은 아이들을 꾸짖지 않았다. 아이들의 ‘쟁이네’ 생활을 열어준 암사재활원의 정민희(53) 원장은 “이웃 갈등 자체도 아이들에겐 공부였다”며 “이웃이 찾아오고 화해하면서 구성원으로 자라가는 아이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여섯 친구들의 때이른 올 성탄절 소망은 “디카를 갖는 것”이다. 성년이 돼 떠나는 친구들을 찍어서 기억하고 싶고, ‘이쁜 엄마’(재활원 교사)도 찍어주고 싶어서다. 대한사회복지회 산하 암사재활원은 10년 동안 모은 개인들의 후원기금으로 ‘쟁이네’에 이어 내년께 사춘기 여자 아이들로 가족을 이룬 ‘작은 아씨들’의 보금자리도 꾸릴 계획이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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