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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장애인

장애인 도우미 서비스 ‘엎드려 절받기’

등록 2007-11-18 21:23수정 2007-11-18 21:26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 수요 공급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 수요 공급
비현실적 임금탓 허위·분식고용 요구 판쳐
2시간 일했다 써줘야 1시간 해줄까 말까
이아무개(57)씨 부부는 모두 1급 시각장애인이다. 칠흑 같은 어둠과 가난에 짓눌린 생활은 고달팠다. 늦둥이로 태어난 둘째 아이를 보육원에 보내기도 했다. 안마 시술로 먹고살기에 바빠 집안 살림과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었던 탓이다.

그러던 지난 5월 이씨 부부에게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가 시작돼, 월 2만원에 80시간씩 가사·양육 도우미를 쓰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서울시가 자체 예산으로 이용 시간도 늘려주었다. 덕분에 부부는 월 6만원이면 도우미를 180시간 불러 쓸 수 있는 ‘사회서비스 바우처’를 살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180시간짜리 바우처로 도우미를 쓸 수 있는 시간은 180시간이 아니다. 지난 반년 동안 도우미를 네 사람 고용했지만, 하나같이 “‘허위 근무 장부’를 써달라”고 요구했다. 실제 10시간을 일하고도 20시간을 일한 것처럼 근무 일지를 쓰는 ‘이면 계약’을 맺자는 것이다. 이씨는 “장부에는 일주일 6일 근무로 기록하고 실제론 5일만 오겠다고 한다”며 “거절하면 ‘20시간 이용하고 바우처를 40시간씩 결제해주는 사람도 있는데 빡빡하게 군다’며 짜증을 낸다”고 말했다.

현재 도우미의 서비스 단가는 시간당 7천원이지만, 중개기관 수수료를 떼고 나면 도우미들이 받는 돈은 최하 5250원까지 내려간다. 야간·휴일 수당이나 4대 보험 혜택은 사실상 없다. 또 이동 시간은 근무로 인정되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까 저녁·주말에 도우미를 쓰려 하거나, 월 20∼60시간의 짧은 시간을 책정받은 장애인들은 도우미를 구하기 어렵다. 도우미로서는 단시간 이용자를 여럿 맡아봐야 이동 시간만 더 들고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목회 활동을 하는 장애인 김아무개(58)씨는 “한달에 60시간이 배정됐지만, 지난달엔 도우미들이 모두 요청을 거절해 한 시간도 쓰지 못했다”며 “이용 시간이 짧고 교회에 가야 해서 주말 근무를 원하니까, 도우미들이 모두 거절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들은 ‘허위·분식 장부’를 써주고 서비스를 받는 것 말고는 선택권이 없다. ‘사회서비스 바우처’는 암달러 거래처럼 정부가 정한 7천원 단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장애인 활동보조 등에 바우처 거래를 실시하며 “복지에 시장을 도입한다”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구호를 내세웠다. 하지만 어설픈 시장 시스템이 복지의 질을 옥죄고, 저질의 일자리만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7월 조사를 보면, 활동보조 도우미는 월 평균 92시간 근무에 48만3천원의 임금으로 아르바이트 수준의 일자리에 불과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화원 한나라당 의원실은 “비현실적인 단가를 주고 민간기관에 경쟁을 요구한다고 해서 ‘사회서비스 시장’이 뚝딱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며 “복지서비스와 사회적 일자리를 모두 확충하겠다고 했지만, 정부가 제 몫을 못해 사회적 약자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 사회서비스 바우처 시스템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전자 바우처’를 활용해 ‘장애인 활동보조’ 같은 사회서비스를 거래하는 제도다. 필요한 재정은 정부 지원금과 본인 부담을 합쳐 마련한다. 정부는 이런 시장 시스템 도입으로 사회서비스의 경쟁을 유도하고, 사회적 일자리를 늘린다는 정책 목표를 설정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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