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있어 어둡지 않았어요”
“야, 이눔들아. 빈둥대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혀라.”
생전에 그가 나타나면 쩌렁쩌렁한 목소리부터 먼저 들렸다. 시각장애인들을 친자식처럼 대하며 알뜰살뜰 정을 줬던 홍파복지원 이사장 고 홍영기씨. ‘욕쟁이 할머니’ ‘호랑이 할머니’라는 별명은 그의 허물없는 사랑에 대한 애정 어린 찬사였다. 지난 1월27일 7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복지원 운영에 헌신했던 고 홍영기 씨를 그리며 시각장애인 500여 명이 사은탑을 세웠다.
1926년 경기도 남양주의 부잣집 딸로 태어나 경기여고·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홍씨는 당시에 보기 드문 ‘신여성’으로서 순탄한 인생이 보장된 듯 보였다. 하지만 20대에 남편을 여의고 외아들을 홀로 기르며 그는 자신의 아픔뿐 아니라 주위의 어둠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이웃의 시각장애인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던 그는 1969년 미인가 맹인 교육시설인 서울맹인대린원이 재정난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이자 사재를 털어 인수했다. 갑자기 눈을 잃어 삶의 의지마저 꺾인 시각장애인에게 안마·침술을 가르쳐 자립할 기회를 열어준 것이다.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그에겐 소명이 됐다. 1973년 사회복지법인 홍파복지원을 시작으로 1981년엔 홍파양로원을 열었고, 중증장애아동을 위한 쉼터요양원(1991년), 대림직업훈련원(2002년), 영기노인전문요양원(2005년) 등을 설립하며 정력적으로 복지사업을 이끌어나갔다. 그와 20년 동안 함께 일해 온 홍파복지원 박일남 원장은 “사업을 진행할 때는 추진력과 통솔력으로 이끌었지만 사람을 도와줄 때는 아무도 몰래 조용히 실천했다”고 말했다. 조용한 선행은 죽음 앞에서 드러났다.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이 홍 이사장으로부터 도움 받은 기억을 저마다 털어놓으며 뜻을 모은 것이다. 6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홍파복지원에 세워진 사은탑은 따뜻했던 그 사람을 증언하는 기록이 될 것이다.
이유주현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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