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은 빠지는 데야. 조심해!” 앞장 서 걷던 부인 조성옥(오른쪽)씨가 배수로를 발견하고 뒤쪽의 남편 임종관씨에게 말한다. 이내 두 사람은 흰지팡이로 배수로를 확인하며 무사히 그 구간을 벗어난다.
용산에 살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운동삼아 남산을 찾는 시각장애인 임씨 부부는 4일 오후 서울 남산 산책길에서 서로 손을 꼭 잡고 조심스레 길을 건너 갈림길로 들어섰다. 왕복 7∼8㎞를 걷는 데 비장애인에 비해 갑절 넘게 시간이 걸리지만 부부가 함께 걷는 길은 즐겁기만 하다. 산책이 힘들지 않으냐는 물음에 임씨는 “남산 산책로만 같으면 다닐 만하다”며 웃었다.
서울맹학교에서 만나 28년 전 결혼한 임씨는 중학생 때, 조씨는 초등학생 때 사고로 두 눈의 시력을 잃었다. 서로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함께 공부하며 쌓인 정으로 결혼한 부부는 안마시술을 하며 두 아이를 키웠다. 아들은 군 제대 뒤 유학을 준비 중이고 딸은 지금 대학교 새내기다.
서로 눈이 되어주는 두 개의 흰지팡이와 꼭 잡은 손이 있기에 이날도 무사히 산책을 마칠 수 있었다. 4일 오후 남산 산책길은 터져오르는 꽃망울로 임씨 부부를 인도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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