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성공회에서 만든 정신지체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우리마을’의 친환경콩나물 작업장에서 허용구 신부가 콩나물팀에서 일하는 정신지체장애인들과 함께 콩나물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느림과 자유]성공회 복지법인 ‘우리마을’ 정신지체인들의 직업재활
김성수 주교, 강화에 3천평 땅 내 재활터 일궈
우리 콩 무농약 재배…입소문 타고 거래처 80여 곳
김성수 주교, 강화에 3천평 땅 내 재활터 일궈
우리 콩 무농약 재배…입소문 타고 거래처 80여 곳
강화콩나물은 몇 해전부터 주부들 사이에 맛있다고 입소문이 돌아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상품이다. 친환경 인증까지 받은 강화콩나물은 성공회에서 만든 사회복지법인 우리마을에서 정신지체장애인의 직업재활을 위해 길러 팔고 있다.
우리 콩만을 쓰고 강화도의 좋은 물을 먹고 자라서만일까. 하지만 키워파는 이들도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자신들의 콩나물을 맛있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단다. 동작이 굼뜨고 표정도 어눌한 장애인들이 키운 콩나물에는 어떤 신비한 마력이 들어있는 것 같다.
예수님은 장애를 입고 태어난 사람에 대해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강화콩나물에서 어떤 일을 드러내고자 하시는 것일까.
성공회에서 만든 정신지체장애인 직업재활작업장 ‘우리마을’에서 가장 활기찬 곳이 강화콩나물을 생산하는 작업장이다.
9일 오후 2시 작업장에 들어서니 모두들 분주하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정신지체 1·2급의 장애인으로 모두 특수학교 등을 졸업한 성인이다.
김희영, 이주공, 조광수씨가 콩나물을 봉지에 담으면 박훈주씨와 이나경씨는 이를 저울에 단다. 이날 일하는 이들 가운데 유일한 비장애인인 유갑종 팀장은 “모두들 인심이 넉넉해서 300g을 넘게 담는다”며 “330g까지 담으면 조금 덜어낸다”고 말했다.
그 옆에서는 최규식씨가 결속기라는 기계를 써서 콩나물 봉지 입구를 묶고 있고, 송영범씨는 10봉지씩 들어가는 종이상자를 만들고 있다.
이들보다 작업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이들은 그 옆의 대기실에서 쉬고 있다. 이들은 작업이 끝나면 바닥이나 화장실을 물청소하고 그조차 힘든 이는 장화를 챙기는 일이라도 한다. 원장인 허용구 신부는 “모두 자신의 능력에 맞게 어떤 일이라고 하도록 한다”고 했다. 쉰다고 타박을 주거나 일머리가 서툴다고 나무라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모두 자신이 맡은 일에 열심이다. 동작은 느리지만 몸과 마음을 다해 콩나물을 만진다.
이렇게 한 해에 길러 파는 콩나물 판매액은 2억5천만원. 여느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 비해 매출액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재활시설에서 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제도에 따라 안정된 구매처를 확보하고 제품을 생산하는 것과 달리 우리마을의 강화콩나물은 시장에서 당당하게 경쟁해서 번 돈이어서 가치가 다르다.
우리마을이 우선구매제도 대신 콩나물을 길러 팔게 된 것은 이곳을 만든 김성수 주교의 뜻이 많이 작용했다. 우리마을은 김 주교의 ‘기도’로 생겨났다. 주교가 되기 전 정신지체장애인 특수학교 성베드로 학교 교장으로 10년간 일한 김 주교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제자들이 졸업 뒤에도 일할 데가 없는 현실을 가슴 아파해 기도를 시작했다.
이를 위해 김 주교는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강화도 길상면 온수리의 땅 3천평을 내놓았고, 손학규 경기지사는 그의 뜻을 알고 20억원을 지원했다. 허 신부는 “재미난 일화”를 소개했다. “강화도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이 장애인 시설이 들어선다는 얘기를 듣고 주민들에게 반대운동을 하자고 제안하다 혼쭐이 났습니다. 주교님이 마을에 도움을 주신 게 얼마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며…”
김 주교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마을’을 나무로 지었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향긋한 나무 향기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장애인들이 사는 곳은 왜 모두 빨간벽돌집이어야하는가, 장애인들도 펜션같은 집에서 살지 말라는 법이 어디있냐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김 주교는 허 신부에게 재활사업도 농산물을 길러 팔아보자고 했다. 공산품을 생산해 우선구매제도를 활용하면 쉬운데 왜 모험을 하냐며 모두 반대했다. 하지만 김 주교는 왜 장애인들은 늘 여느 사람들이 피하는 험한 일을 해야하냐고 반문했다. 쾌적한 일터를 만들어보자. 김 주교의 제안이었다.
‘명령’을 받은 허 신부는 고민을 거듭하다 기르기 쉽고 도시인들이 많이 먹는 콩나물을 선택했다. 2001년 1월 콩나물 다섯 통을 생산했다. 허 신부와 우리마을 식구들은 이를 들고 강화도 길상면 일대의 식당을 찾아다녔다. 4㎏들이 한 통에 8천원. 여느 콩나물보다 2천원은 비쌌다. “우리 콩으로 농약 주지 않고 기른 것이니 한번 먹어보세요. 맛없으면 안 팔아줘도 됩니다.” 반응은 좋았다. 먹어본 손님이 강화콩나물을 찾기 시작하니 식당 주인들로부터 주문전화가 이어졌다.
초기에 한 식당에서 장애인들이 기른 콩나물이라고 반품한 것을 빼면 1년 반만에 거래처가 80여개로 늘었다. 연간 매출액도 1억원을 넘어섰다.
2004년 봄부터는 생협에도 거래를 시작해 지금 하루에 700봉지를 납품한다. 농협 하나로마트와 갤러리아 백화점에도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철저히 품질을 관리했다.
“하루는 작업장에서 품질이 떨어지는 콩나물을 담고 있어서 담당자에게 직원들 모두 불러모아 놓고 콩나물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이런 콩나물을 팔기 시작하면 장애우 이름 팔아서 먹고 사는 시설이 될 수밖에 없다고, 품질로 승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 엄격한 품질 관리로 강화콩나물은 맛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이 있다. 수원 갤러리아가 내부 수리로 두 달 가량 문을 닫을 때 그곳에서 강화콩나물을 사먹던 주부는 주위 사람들로 팀을 짜 콩나물을 택배로 사먹을 정도였다. 콩나물이 이렇게 맛있는 건 첨가물을 넣었기 때문 아니냐는 항의전화도 있었다고 한다.
소비자들의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우리마을’은 여전히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도 전국 규모의 대형 할인매장을 찾아갔으나 납품을 거절당했다.
“장애우들이 만든 제품을 우선 구매하는 것도 꼭 필요한 제도지만 장애우들이 만든 제품으로 시장에서 당당하게 경쟁해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허 신부는 그것이 ‘우리마을’의 장애인들을 통해 하느님이 보여주시려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032)937-8691
강화/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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