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 딸 둔 한지공예 강사 윤은희씨
“장애아들과 함께해야 하는 운명인가 봐요. 그런데도 참 행복하니 이상하죠?” 한지공예 강사 윤은희(53·사진 왼쪽)씨는 25살 먹은 정신지체 딸(김임정)을 두고 있다. 딸 지능이 5~6살 정도에 머물러 있어, 그가 돌봐주지 않으면 제대로 생활할 수 없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보디가드처럼 붙어 다녔다. 고교를 마치고 복지관에 간 뒤에도 집에 올 시간에 맞춰 어김없이 태우러 간다. 24시간 딸을 돌보기에도 정신이 없지만, 윤씨는 몇년 전부터 복지관에서 장애아들을 가르치고 있다. 1주일에 두번 부천과 원주로 원정 강의를 나간다. 틀을 만든 뒤 한지 색지를 붙여 쟁반, 예단함, 필통, 바느질꽂이 등 일상 생활용품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친다. 딸이 복지관에 간 뒤부터였으니까 올해로 벌써 4년째다. 한지공예는 비장애아들에게도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 한데 윤씨는 장애아들을 대하면서도 결코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열 번을 설명해도 또다시 반복해야 하는 게 이 일이지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도한다는 게 복지관 쪽의 전언. 윤씨에겐 아이들의 순박함이 너무 좋다. 이들에겐 “2~3살 아이의 맑은 정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정에, 사람들에 굶주려 있는 아이들이라 조금만 관심을 보이면 기뻐하던 모습도 그의 의욕을 살려준다. “말을 안하던 아이가 갑자기 ‘예!’ 하고 크게 대답하고, 풀칠도 열심히하고 뭔가 배워보려고 할 때 ‘가르치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들에겐 큰 행복이 아닐까요?” 마침 딸도 지난 3월부터 복지관에서 한지공예를 배우면서 윤씨는 강의에 더욱 열의를 보이고 있다. 큰 딸이 한지공예에 재미를 붙여가는 모습이 자극제가 되기 때문이다. “손에 뭘 묻히는 걸 아주 싫어했는데 이제는 종이죽도 아무렇지 않게 만져요. 게다가 가끔씩 휴지상자나 그릇을 만들어 가져오니 대견스럽죠.” 윤씨는 자신이 열심히 가르치는 만큼, 딸도 그곳에서 더 열심히 배울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곧 시골에 내려가 작은 공방을 하나 차려 딸과 함께 운영하겠다는 구상을 마음 속에 그려가고 있다. 딸과 함께 여러 한지공예 작품도 만들고, 전시도 하고, 시골 아이들도 가르치는 꿈을 꾸며, 윤씨는 오늘도 장애아들을 만나러 복지관으로 달려간다.
글·사진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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