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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장애인

“아들이 좋아하는 음악도 하며 정규직 되니 뿌듯해요”

등록 2022-07-05 17:45수정 2022-07-06 02:05

[짬] 녹색병원 새내기 사원 된 발달장애인 셋과 엄마들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하며 정규직 일자리를 갖게 돼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서울 중랑구에 있는 민간형 공익병원인 녹색병원(원장 임상혁)은 지난달 발달장애인 3명을 예술문화직군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했다. 이 소식에 평생 이들을 뒷바라지해온 엄마들은 “삶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본 것 같다” “지치고 힘들어 다 관두고 싶었는데”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왼쪽부터 최은주씨와 아들 손은배씨, 엄마 이미영씨와 아들 박도현씨, 아들 김성준씨와 엄마 조은진씨. 이순혁 기자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하며 정규직 일자리를 갖게 돼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서울 중랑구에 있는 민간형 공익병원인 녹색병원(원장 임상혁)은 지난달 발달장애인 3명을 예술문화직군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했다. 이 소식에 평생 이들을 뒷바라지해온 엄마들은 “삶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본 것 같다” “지치고 힘들어 다 관두고 싶었는데”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왼쪽부터 최은주씨와 아들 손은배씨, 엄마 이미영씨와 아들 박도현씨, 아들 김성준씨와 엄마 조은진씨. 이순혁 기자

“장애인에게 가장 큰 복지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중략) 녹색병원은 오늘 가온클래식과 업무협약을 맺고 연주를 하는 3명의 발달장애인을 직원으로 채용했습니다. 이 세분은 녹색병원에서 급여도 받고, 녹색병원에서 받는 복지혜택도 똑같이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녹색병원 환자들과 직원들은 분기마다 이들이 들려주는 천사의 연주에 빠져들 것입니다.”

최근 임상혁 녹색병원장이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올린 ‘녹색병원에 3명의 발달장애인이 취업했습니다’란 제목의 글 일부다.

발달장애인과 병원이 ‘검사·치료 관계’가 아니라 ‘채용 관계’로 맺어졌다? 어떤 사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을까. 지난달 22일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을 찾아 새내기 직장인이 된 발달장애인 박도현(24)·손은배(23)·김성준(21)씨와 이들의 어머니인 이미영(56)·최은주(56)·조은진(49)씨를 만나 그 사연을 들어봤다.

“정말 깜짝 놀랄 일이에요. 아주 큰 병원도 아니고, 녹색병원에서 이런 일을 먼저 시작하다니…. 저희가 최초로 채용되고 나니, (주변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다들 너무 부러워해요. 이제 물꼬를 텄으니 (이런 채용이) 차츰 늘어날 것으로 믿어요.”

아들 박도현씨 손을 꼭 잡은 엄마 이미영씨가 진지하면서도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옆에 있던 김성준씨 어머니 조은진씨가 말을 이었다. “발달장애는 특수학교에 다니다 성인이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해요. 갈 곳이 없으니까요. 우리 아들은 올해 초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직업훈련센터에서 석달 동안 훈련을 받았어요. 그런데 센터에서 배운 것에는 본인이 할 역할이 없으니…. 그러다 본인이 할 줄 알고,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게 됐으니, 너무너무 좋아하는 게 눈에 보여요.”

이번엔 손은배씨 어머니인 최은주씨가 말을 받았다. “우리 아들은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정부 복지일자리에서 1년 일했고, 얼마 전까지 급식실에서 8개월 동안 보조로 일했어요.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원활한 대화가 어려우니, 정식 취업은 어려웠죠. 그런데 이번에 취업이 됐다고 하니 너무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집에 와서 자기도 이제는 직장인이라고, 직장인이라는 말을 몇번씩 반복하더라고요.”

녹색병원 입사동기인 이들 셋은 모두 음악을 한다. 손씨와 김씨는 바이올린을, 박씨는 첼로를 연주한다. 자폐성 장애, 지적장애를 가진 발달장애의 경우 사람들과 소통은 어렵고 서툴지만, 음악에는 흥미를 느끼고 재능을 보이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셋 다 음악을 오래 했어요. 시작은 조금씩 다르지만, 2019년 가을에 음악을 하는 발달장애인 7명이 모여 ‘가온클래식’이란 팀을 꾸렸죠. 이후 정기적으로 함께 연습도 하고, 재능기부 형식으로 초청 연주도 다녔어요. ‘직장내 장애인식 개선 교육’ 강사 자격으로 일반 사업체에서 공연도 했죠.”(이미영씨)

이들 연주를 들은 사업체 직원들은 직장내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이수받은 것으로 인정받았고, 연주자들은 강사비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연주는 어디까지나 과외활동이었고, 생계나 직장과는 거리가 있었다. 뭔가 돌파구가 절실했다.

“강사 자격으로 연주해도 1년에 몇 번 안 되잖아요. 그래서 직장내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주관해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경기북부지사 취업지원과 쪽에 ‘장애인 의무고용 대상인 큰 기업이나 병원 등에 음악을 전공한 발달장애인들 채용을 제안하면 어떻겠냐’고 얘기했어요. 일정 규모 이상 기관은 장애인을 일정 비율 이상 의무 고용해야 하고, 이를 못지키면 부담금을 내야 하거든요. 발달장애인을 채용하면 해당 기관이나 병원은 부담금을 면제받고, 채용된 장애 음악인들은 일자리를 얻고 서로 좋지 않겠냐는 얘기였죠.”(조은진씨)

음악재능 박도현·손은배·김성준씨
분기 1회 공연 등 약속하고 채용
급여에 일반 직원과 같은 복지혜택

엄마 이미영·최은주·조은진씨
고용 호소에 녹색병원 먼저 화답
“삶 끝자락서 희망 붙잡은 느낌
물꼬 텄으니 더 늘어야죠”

이 제안은 장애인고용공단 경기북부지사 관할 여러 기관에 전달됐고, 이에 녹색병원이 가장 먼저 손을 내밀고 나섰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 결과 만들어진 원진직업병관리재단(이사장 양길승)이 2003년 설립한 녹색병원은 산재·직업병 환자와 소외계층 돌봄에 앞장서온 민간형 공익병원이다.

이 병원 이종훈 사무처장은 “현재 시설유지와 진료예약, 검진안내 쪽에 장애인들이 고용돼 일하고 있는데, 장애인 고용을 늘리기 위해 장애인 운영 커피숍을 구상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다 지난 4월 임상혁 병원장님이 전국장애인학부모연대 단식농성 현장을 찾아 연대할 방법 등에 관해 대화를 나누게 돼 발달장애인 채용을 검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도현·손은배·김성준씨는 하루 3시간, 한달 60시간 노동을 인정받는 단시간근로자다. 경기 양주시에 있는 연습실로 출근해 악기 연습하는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받는다. 정규직으로 한달 100만원가량 월급을 받고, 주휴수당과 퇴직금 지급, 각종 복지혜택도 일반 직원들과 차별없이 받게 된다. 대신 병원에서 분기당 1회 이상 공연할 예정이다. 녹색병원에서 하는 봄과 가을 음악회, 환우와 함께하는 송년회에서 공연하고, 경기 구리시 원진녹색병원에서도 연 1회 공연한다. 이외에도 지역사회에서 하는 공연, 장애인식개선 교육 등에도 참여한다.

가족들은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연주활동이 가능해졌다는 점, 엄연한 직업인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 대우받게 된 점을 가장 뿌듯해했다. 이미영씨는 “출퇴근 개념이 적용되면서 매일 연습실을 찾아 연습하는 게 당연한 일과가 됐다. 그 결과 연습량도 늘어 음악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했다.

지난달 22일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이 병원 정규직으로 채용돼 일하게 된 발달장애인 손은배(왼쪽 두번째부터), 김성준, 박도현씨가 이날 발급받은 직원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은 이 병원 이종훈 사무처장. 이순혁 기자
지난달 22일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이 병원 정규직으로 채용돼 일하게 된 발달장애인 손은배(왼쪽 두번째부터), 김성준, 박도현씨가 이날 발급받은 직원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은 이 병원 이종훈 사무처장. 이순혁 기자

인터뷰를 마칠 무렵 이미영씨와 조은진씨의 짧게 자른 스포츠머리가 눈길을 끌었다. 지난 4월9일 청와대 인근에서 500명 가까운 다른 발달장애인부모들과 함께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하며 삭발을 했기 때문이다. 이미영씨는 “(학교 졸업 뒤인) 스무살 이후로는 집으로 데려와 집에서만 끼고 살아야 하는데,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곧 60살인데, 이 아이들 쫓아다니느라 노후 준비도 전혀 안돼 있다. 사람들은 욕심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얘들의 형제자매에게까지 이 짐을 물려줄 순 없다”고 했다. 조은진씨도 “늘 긴 생머리였는데 이번에 처음 잘랐다. 성준이 때문에 머리 깎는다고 하니 (성준이) 누나가 ‘엄마 나도 있잖아’라고 말해줘 눈물이 났다. 하지만 내가 져온 부담을 딸에게까지 물려줄 수는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최은주씨는 “사실 올 들어 모든 걸 포기한 상태였다. 아이는 (졸업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취업은 안되고, 난 갱년기라 힘들지…. 은배가 뜻하지 않게 이렇게 취업이 되니, 삶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붙잡은 느낌이다”고 했다.

아들 셋 중 기자와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했던 은배씨에게 ‘첫 월급을 받으면 뭘 할거냐’고 물었다. “저금하고, 쇼핑하러 가고, 여행도 하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어가던 그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졌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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