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뺨벌새. 사진 해럴드 그리니 제공
물바람숲
최상위 포식자는 먹이를 잡아먹어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직접 잡아먹는 것 말고도 중간 포식자의 행동을 제한하는 등 간접적인 효과도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애리조나주 치리카와 산에는 참매와 새매가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한다. 어치는 중간 포식자인데 매를 끔찍하게 싫어한다. 이들 매는 높은 나무줄기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아래로 지나가는 새를 쏜살같이 덮치는 사냥술을 주로 쓴다. 어치는 매 둥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이 지역에 사는 검은뺨벌새는 다 자라야 길이가 9㎝인 작은 새이다. 이들은 나뭇잎과 거미줄을 섞어 둥지를 만들고 커피콩 크기의 알을 낳는다. 벌새가 가장 무서워하는 천적은 어치이다. 벌새의 둥지를 찾아내면 알을 모두 꿀꺽 삼켜 버리기 때문이다.
해럴드 그리니 에콰도르 야나야쿠생물학연구소장 등 국제 연구진은 온라인 과학저널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4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검은뺨벌새가 매 둥지 근처에 둥지를 틀어 어치의 위험을 피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연구자들은 벌새 둥지 342개와 매 둥지 12곳을 조사했는데, 벌새 둥지의 80%가 매 둥지 근처에 있었다.
매 둥지로부터 반지름 300m 안에 있는 벌새 둥지의 번식 성공률은 19%였는데, 반지름 170m 안에 있는 벌새는 그 비율이 52%나 됐다. 매 둥지에서 먼 벌새의 둥지는 거의 모두 어치의 공격을 받았다. 매 둥지 바로 밑에는 어치가 접근하지 못하는 원추형의 안전지대가 있는 셈이다.
물론, 매도 잡을 수 있다면 벌새도 마다하지 않는다. 들이는 노력에 견줘 벌새보다는 어치나 쥐 같은 상대적으로 큰 먹이 사냥을 선호할 뿐이다. 어쨌든 최상위 포식자인 매가 중간 포식자인 어치를 견제함으로써 벌새의 생존 공간이 넓어졌다. 연구자들은 “기후변화 등으로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진다면 그 영향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멀리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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