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남부와 북아프리카의 건조지대에 사는 벨벳거미.
물바람숲
동물세계에서 동족을 먹는 행동은 드물지 않다. 짝짓기를 마친 사마귀나 거미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것은 널리 알려진 예다. 이 밖에도 새끼끼리 서로 잡아먹거나, 어미가 새끼를 죽이는 예도 있다. 드물지만 거미 가운데는 어미가 자식들에게 자기 몸을 먹이로 내주기도 한다. 보살핌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다. 이런 행동은 1950년대부터 알려졌지만 그런 행동의 세부 내용과 진화적 의미가 최근 밝혀지고 있다.
모르 살로몬 예루살렘 히브리대 곤충학자 등 이스라엘 연구자들은 유럽 남부와 북아프리카의 건조지대에 사는 주홍거미과의 벨벳거미에게 자살적 모성보호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조직학적으로 분석해 과학저널 <거미학회지> 최근호에 발표했다. 어미는 먼저 먹이를 게워 새끼에게 먹인 뒤 자신의 몸을 녹여 먹이로 주고 껍질만 남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미의 조직 변화는 새끼가 알에서 깨어나기 전 약 80개의 알이 든 알주머니를 품으면서부터 시작된다. 창자의 일부가 반액체 상태로 바뀐다. 알에서 새끼가 깨어나면 그런 변화는 더 빨라진다. 어미는 먼저 소화시킨 먹이를 게워 새끼에게 먹인다. 더는 게울 것이 없으면 몸의 분해가 일어난다. 새끼들은 어미의 배에서 2~3시간 동안 체액을 모두 흡수한다. 어미는 먹이를 게우면서 체중의 41%가 줄고 다시 새끼에게 몸을 녹여 먹이면서 54%가 준다. 몸의 거의 모두를 새끼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사막의 거친 환경에 적응하느라 이런 육아 방식이 진화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비탈거미과의 다른 거미에서도 새끼가 어미를 먹는 행동이 나타나는데, 이를 연구한 김길원 인천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어미가 새끼에게 신호를 줘 몸을 먹도록 하는 등 주도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어미는 이 과정에서 도망치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또 어미를 먹은 새끼가 그렇지 않은 새끼보다 생존율이 높았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호아킨 포르텔라,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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