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야저수지와 백두대간 줄기. 내성천은 이 일대에서 발원한다.
[물바람숲] 지율스님과 함께 한 낙동강 답사기 ①
대형댐 들어설 내성천 약수로, 썰매로 느끼기 “신나지만 슬퍼요”
경작 중지된 논에는 생명체 풍성…몇 년 뒤엔 수장되겠지만… 물바람숲 바로가기 눈이 많이 내렸다. 기온도 ‘영’ 아래로 쑥 내려갔다. 1월 3일. 이틀 뒤가 소한인 그야말로 엄동설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 안에서 움츠리고 있을 때, 영주역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였다. 지율스님을 필두로 한 강 답사단이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내려온 아이들과 어른들, 봉화에서 온 나와 유하, 사과농사를 짓는 농부 문종호님 등이다. 모두 모이고 나니 스무명 가량 된다. 지율스님은 수 년 전부터 강에 깃들어 살고 있다. 강의 신음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하는데 힘을 모으고 있다. 재작년부터는 내성천 강가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두고서 강을 바라보며 살고 있고, 강이 처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부단히 알리고 있다. 조계사 앞에서 1년이 넘도록 내성천의 현실을 알리는 전시공간 ‘스페이스 모래’를 운영했고, 현장에서는 ‘물빛 풀빛 별빛 내성천 텐트학교’나 다양한 답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번 답사도 내성천을 지키기 위한 활동으로, 좀 다른 것은 내성천의 상류(즉, 낙동강의 상류)에서 낙동강의 하구까지 둘러본다는 것이다. 1월 3일부터 1월 9일까지 정확히 일주일간의 일정이다.
내가 가져간 해리포터(유하와 나의 차, 기종은 포터II)에 사람들의 등짐을 모두 실었다. 사람들이 모두 타기 위한 조처다. 신기하게도 내 차엔 짐을 싣기 위한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짐에 녹물이 배지 않게 깔 수 있는 방수천이 있었고, 짐을 묶기 위한 고무밴드도 있었다. 나 답지 않게 미리미리 준비한 것처럼. 답사도 이처럼 술술 풀리면 좋겠건만! 예감이 좋다.
영주역에서 출발한 차는 소백산 자락을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내성천의 발원지로 향하는 길이다. 불과 이틀 전에 내린 눈으로 산야는 온통 흰 색이었다. 심지어 도로도 흰 색. 평소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달렸다. 도로 위로 듬뿍 뿌려진 모래 덕에 크게 무리는 없다. 뒷 좌석의 사람들은 김서린 창을 문질러 밖을 확인한다. ‘아름답다’는 표현들이 들린다. 느린 속도 덕분에 아름다운 경치를 얻은 셈이다.
부석사 입구를 지나치고 드디어 봉화의 물야면에 닿았다. 왼쪽 차창 밖으로 보이던 백두대간을 이제 정면으로 두고 달렸다. 차 안에서 그나마 그 지역을 아는 내가 설명을 했다. “정면으로 보이는 저 능선이 ‘백두대간’이에요. 저기 골짜기 곳곳에서 물이 흘러와 내성천이 되는 거에요.”
곧 오전약수라는 곳에 도착할 거라고 덧붙였다. 강은 어느 한 곳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산야 전체에서 발원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으나 차는 금세 오전약수에 도착했다.
지율스님은 앞장서 걸어가 약수 앞에서 참가자들에게 설명했다. “30년 전에도 이곳에 왔었어요. 그 땐 정말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 중에는 환자들이 많았는데, 정말로 병을 고쳐나간 사람들이 있었어요.” 조선시대 약수대회에서 1등을 했었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그야말로 ‘사람도 고치는 강’인 셈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에게 물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다. 인체를 구성하는 요소 중 물은 70%내외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지 않던가. 생명의 생성과 유지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물이 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연은 우리를 만들어 주고 또 치료도 해 주는 그야말로 ‘신’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셈.
그런 막강한 능력을 가진 약수가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거북이 입에서 많지 않지만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곳 물맛이라면 내가 판단하기로 ‘철봉 맛’이다. 병을 고치는 이유가 아니라면 보통의 맹물처럼 벌컥벌컥 들이킬 ‘맛’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스님의 설명 덕인지 아이들도 한 바가지씩 들이킨다. 처음 맛보고 잘못된 건 아닌지 의심했던 나의 반응과는 전혀 달랐다.
사람도 고치는 내성천 발원지를 조금 떠나 하류 쪽으로 조금 내려오니 넓디 넓은 호수가 나왔다. 다름아닌 물야저수지다. 얼음이 얼고 그 위로 눈이 쌓였다. 꼭 드넓은 설원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인공적인 호수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에 괜히 심술이 났다. 참가자들도 ‘멋지다’, ‘아름답다’ 같은 말들을 뱉어냈다. 그들에게 ‘4대강 사업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乃城川 三百里(내성천 삼백리) 이곳에서 시작되다’하고 새겨진 발원지 비석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참가자들의 표정은 밝다. 이른 아침 따뜻한 이불 속에서 지었던 ‘귀찮은 표정’은 어디에도 없다. 이제부터 진짜 답사의 시작이다.
내성천은 봉화를 가로지르는 백두대간 일대에서 발원해 물야면과 봉화읍내를 관통한다. 영주의 이산면과 평은면 사이사이의 크고 작은 논 밭 사이를 흘러흘러 예천군의 산야도 비껴 흘러간다. 이제는 유명해진 회룡포에서 360도 방향을 튼다. 이렇게 300리, 즉, 120㎞ 정도를 흐른 뒤 경북 예천의 삼강마을 앞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공식적(?)으로 낙동강은 태백시의 황지에서 발원한다고 하지만 강으로 흘러오는 산골짜기 곳곳이 어찌 ‘발원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내성천은 발원하자마자 물야저수지에 갇혀 강 다운 모습을 잃어버리고, 도중에 크고 작은 수많은 농업용 보들로 멈칫거린다. 봉화 읍내를 지나 이산면에 이르면 내성천은 자연적인 모습으로 회복한다. 좌우로 굽이치며 한 쪽은 가파름을 한 쪽은 완만함을 남겨둔다. 완만한 쪽엔 깨끗한 모래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다양한 생물들의 쉼터가 된다. 사람들이 느끼는 이곳의 아름다움은 크나큰 덤이다.
특히나 내성천은 우리나라에서 또 세계적으로도 드문 모래강이다. 강 표면에 드러난 곳은 물론이고 영주댐을 건설하며 드러났 듯 강 속 20m 내외까지 모래가 가득 차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는 물은 충분히 흘러가고 유기물은 걸러낼 만큼의 공간이 있다. 걸러진 유기물은 모래 알갱이에 붙어사는 다양한 미생물의 먹이가 된다.
그 덕에 모래강은 ‘정수기’ 노릇을 톡톡히 하며 맑은 물을 유지시켜주는 특별한 강인 셈이다. 더군다나 낙동강에도 엄청난 모래를 공급하여 ‘정수기’ 구실을 전해주기도 한다. 안동댐 상류의 낙동강 모습과 내성천이 합류한 다음의 낙동강 모습이 확연히 다른 것도 그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내성천에 거대한 댐이 건설되고 있다. 영주시 평은면에 공공기관(국토해양부와 수자원공사)과 여러 민간건설사(삼성물산과 동부건설 등)이 힘을 모아 강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갇혀버리면, 댐 상류는 거대한 호수가 되어 버리고, 하류는 모래가 끊겨 자갈만 드러나게 된다. 모래강의 특징을 점차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에 세워졌던 댐 계획은 1999년에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고, 10여년간 아무런 문제없이 지내왔던 걸 생각하면, 댐 건설 목적에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영주댐 홍보물에는 댐 건설의 첫번째 목적으로 ‘중하류지역의 수질개선을 위한 하천유지용수’라고 밝히고 있다.
모래강의 신비나 영주댐으로 인한 파괴에 관한 이야기도 좋지만 피부로 직접 느끼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지율스님은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첫 날의 메인 프로그램을 ‘내성천 얼음썰매 타기’로 넣었을 것이다.
봉화읍내에는 내성천 위에 모래를 조금 걷어낸 뒤 물을 가두어 만든 얼음썰매장이 있다. 게다가 썰매는 무료로 빌려주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신나서 썰매를 들고 얼음판으로 달려갔다. 며칠 전만 해도 얼지 않아 운영을 못 했다. 강추위가 고맙기도 하다.
썰매 위에 앉거나 무릎을 꿇었다. 못이 박힌 작대기를 얼음판 위에 꽂고 뒤로 밀었다. 쌓인 눈 때문에 ‘신나게’ 가지는 못했지만 아이들 웃음소리만큼은 얼음판 여기저기로 미끌어져 갔다. 서로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얼음판을 즐겼다.
이 썰매장 홍보물에는 ‘추억의 썰매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오래전에는 강 가장자리가 얼면 나무 판자에 길고 날카로운 쇳조각을 대고 썰매를 만들어 탔다. 논에 물을 대고 얼려 아이들을 위한 썰매장을 만들기도. 어른들의 ‘추억’을 지금의 아이들에게 주는 셈이다. 이젠 이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도 이날의 썰매타기는 오래동안 기억될 것이다. 다만, 아이들이 다 컸을 때, 그들의 아이들도 이와 같이 탈 수 있다면 좋겠다. 다 사라지고 지금은 이렇게 진짜 강 위에서 썰매를 탈 수 있는 곳은 몇 안되니 말이다.
썰매장의 흥분 때문이었을까 괴헌고택으로 이동한 뒤에도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았다. 강은 포클레인으로 파헤쳐져 있었고, 논은 경작금지 팻말을 앞세우고는 여러가지 들풀들이 자라나 있었다.
강 일대 새들의 생태를 설명할 요량으로 참가한 박중록 선생님(습지와 새들의 친구 운영위원)은 우리들이 도착하자 날아오르는 작은 새들이 ‘쑥새’라고 설명했다. 그는 “쑥새들이 이렇게 많이 몰려있는 건 처음 봅니다.”라며 이곳 일대의 변화가 ‘심상치’ 않음을 알렸다.
지율스님은 “댐이 건설되면서 이곳에 농사를 못 짓게 했어요. 1년 정도만 묵혔을 뿐인데 여러가지 생명들이 돌아왔어요.” 두더지나 곤충들, 그리고 새들도 기존의 논에 비해서 훨씬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이 논들은 사실, 제방이 생기기 전까지는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강 습지 였다.
곧이서 큰 새가 날아올라 우리 위를 빙~빙~ 돌았다. 말똥가리였다. 이들도 곤충이나 작은 새들, 두더지들과 함께 불어났다. “와~ 크고 멋진 새가 우리를 반기네요!” 아이같은 순수가 섞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지율스님이었다. 마치 이곳의 자연이 다소나마 살아난 것이 자신이 살아났다는 듯한 인상이다. 얼마나 기쁜 목소리인지!
아쉽게도 파헤쳐진 강은 이곳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었다. 즐겁게 놀던 아이 준일이도 ‘멋진 새’를 올려다보다 휘청하며 강 쪽으로 떨어질 뻔 했다. 그가 서 있던 곳이 포클레인으로 모래를 가파르게 쌓아놓은 작은 언덕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로 영주댐이 완공되고 담수를 하게 되면 몇 년동안은 이곳 논은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겠지만 결국엔 수장되고 말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런 일은 절대 없도록 빌었다.
숙소 봉화전원생활센터엔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동국대학교에서 생태학을 가르치는 오충현 교수님이다. 그는 답사단에게 복잡하지 않은 ‘생물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리산에 방사한 몇 마리의 곰들이 번식을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던진 뒤 생명들이 대를 잇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개체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호랑이의 경우에는 암수 각각 300마리 이상이 있어야 ‘유전자의 다양성’이 유지되어 그들이 멸종하지 않는다고 한다. 근친으로 태어난 자식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정상’ 범위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또 다른 질문으로 “‘종’보전을 위해 동물원만 있으면 될까요?”하고 던진 뒤, 그들이 살 수 있는 서식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생’의 서식지가 없으면 보전이 안 된다는 말이다. 그 범위는 어떤 동물은 좁고, 어떤 동물은 넓다. 서식범위가 넓은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충분한 서식지가 보전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이론을 강에 접목시켜 설명했다. 강이 댐이나 보들로 가로막혔을 때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기존의 환경에 적응해오던 동물들이 호수가 된 강에서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물은 수위에 따라서 온도 차이가 많이 날 뿐 아니라 흐름도 각기 다르다. 갑자기 그런 곳이 깊은 호수로 변했을 때 어떻게 될까? 강 속의 생태가 바뀌면 그 강에 적응해 있던 강 밖의 생태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내성천은 더군다나 모래강으로 모래에 적응해 살고 있던 생물들이 많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생물이 이곳에서 멸종되면 전세계에서 멸종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으로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흰수마자’가 그런 꼴일 것이다.
낮의 쾌활했던 분위기는 잠시 가라앉았다. 그럼에도 슬퍼할 수만은 없는 노릇아닌가. 우리가 내성천의, 낙동강의 슬픈 현실을 알았다면 행동하면 될 일. 희망을 갖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라 기쁜 일이다.
글·사진 김성만(필명 채색)/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생태활동가
경작 중지된 논에는 생명체 풍성…몇 년 뒤엔 수장되겠지만… 물바람숲 바로가기 눈이 많이 내렸다. 기온도 ‘영’ 아래로 쑥 내려갔다. 1월 3일. 이틀 뒤가 소한인 그야말로 엄동설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 안에서 움츠리고 있을 때, 영주역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였다. 지율스님을 필두로 한 강 답사단이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내려온 아이들과 어른들, 봉화에서 온 나와 유하, 사과농사를 짓는 농부 문종호님 등이다. 모두 모이고 나니 스무명 가량 된다. 지율스님은 수 년 전부터 강에 깃들어 살고 있다. 강의 신음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하는데 힘을 모으고 있다. 재작년부터는 내성천 강가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두고서 강을 바라보며 살고 있고, 강이 처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부단히 알리고 있다. 조계사 앞에서 1년이 넘도록 내성천의 현실을 알리는 전시공간 ‘스페이스 모래’를 운영했고, 현장에서는 ‘물빛 풀빛 별빛 내성천 텐트학교’나 다양한 답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물야저수지. 30년 전만 하더라도 이 일대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 그들은 이곳에서 물을 꾸준히 마시고 요양한 뒤 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거북이 조형물에서 ‘병도 고치는‘ 약숫물이 끊임없이 나온다.
어느 강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그토록 큰 낙동강도 처음에는 작은 개울이다.
내성천 발원 기념비 앞에서 단체사진. ‘소한‘의 혹한에도 참가자들의 표정이 밝다.
어른이 아이의 썰매를 끌어주기도 하고 어른이 어른의 썰매의 끌어주기도 했다. 썰매에 타면 일단 아이로 변신!
강은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함박 웃음을 주었다.
썰매타기의 마무리는 뜨끈뜨끈한 군고구마로.
동국대학교 오충현 교수. 그는 참가자들에게 '생물다양성'의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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