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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물바람숲

새가 사라지면 거미가 지배하는 세상 온다, 괌의 교훈

등록 2012-09-17 15:11수정 2012-09-17 21:11

괌의 정글은 막대기로 거미줄을 걷어내지 않으면 걷기 힘들 정도로 거미가 많다. 사진=아이작 첼만, 플로스 원
괌의 정글은 막대기로 거미줄을 걷어내지 않으면 걷기 힘들 정도로 거미가 많다. 사진=아이작 첼만, 플로스 원
거미 먹던 새 대부분 멸종, 거미 인근 섬보다 40배 폭증
괌은 대규모 생태 실험장…새 감소하는 세계적 현상에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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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철 카슨은 환경 고전 <침묵의 봄>에서 디디티 등 잔류성 화학물질을 남용했을 때 새들이 번식에 치명타를 입어 새가 울지 않는 봄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예언대로 침묵의 봄이 곳곳에서 실현됐지만 살충제보다는 서식지 파괴 때문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경고가 나왔다. 과학자들은 벌레를 잡아먹는 새들이 지금처럼 줄어들다간 거미가 지배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경고의 근거는 작은 실험실에서의 연구가 아니라 서태평양의 섬 괌에서 30여 년 동안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대규모 ‘자연 실험장’에서 새들이 생태계에서 어떤 구실을 하는지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관광지로 유명한 괌의 해안. 이들은 '생태 재앙'이 벌어지고 있는 섬 안쪽 정글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사진=아이작 첼만, 플로스 원
관광지로 유명한 괌의 해안. 이들은 '생태 재앙'이 벌어지고 있는 섬 안쪽 정글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사진=아이작 첼만, 플로스 원
미국 라이스 대학, 워싱턴 대학과 괌 대학 연구자들은 미국 공공 과학도서관이 발행하는 온라인 공개학술지 <플로스 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괌에 외래종 뱀인 갈색나무뱀이 들어온 뒤 곤충을 먹는 새가 사라지자 이 새들의 먹이인 거미가 어떻게 늘어났는지를 조사한 결과를 밝혔다.

괌에는 1940년대 중반 미군 기지 화물을 통해 파푸아뉴기니 일대에 분포하고 괌에는 없던 갈색나무뱀이 우발적으로 유입돼 ㏊당 100마리까지 발견되는 등 급속히 팽창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뱀은 1980년대에 이르러 벌레를 잡아먹는 토종 새들을 사실상 절멸시켰다.

연구진은 새들의 주요 먹이이던 거미의 분포실태를 아직 벌레잡이 새들이 살아있는 인근 섬 3곳과 비교해 봤다. 그랬더니 우기 동안 괌에는 인근 섬에서보다 거미줄의 밀도가 40배나 높았다. 괌에선 숲 속에서 10m를 갈 때 만나는 거미줄이 평균 18개였던데 비해 벌레를 먹는 새들이 많은 인근 섬에서는 0.45개였다. 생물활동이 줄어드는 건기에도 거미줄 밀도는 인근 섬보다 2.3배 높았다.

인근 섬보다 40배나 밀도가 높은 괌의 거미줄. 사진=아이작 첼만, 플로스 원
인근 섬보다 40배나 밀도가 높은 괌의 거미줄. 사진=아이작 첼만, 플로스 원
논문의 주 저자인 할더 로저 라이스 대학 박사는 “괌에선 막대기로 눈앞의 거미줄을 쳐 내지 않고는 정글을 나아갈 수 없을 정도”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새가 사라진 진 30여 년 만에 거미의 개체수가 폭발했는데, 특히 새가 있었으면 맞춤한 먹이였을 덩치 큰 거미가 많이 늘어났다.

연구진은 이처럼 거미가 늘어난 이유는 무엇보다 새로 인한 포식의 감소이지만 이 밖에도 새와 거미가 함께 잡아먹던 곤충의 증가, 새들이 날면서 거미줄을 훼손하는 일이 줄어들면서 거미줄을 다시 치던 거미의 에너지 손실이 줄어든 점, 그리고 천적이 사라지자 거미가 더욱 큰 거미줄을 쳐 먹이를 더 잘 잡게 된 점 등을 들었다.

괌의 갈색나무뱀. 사진=미국지질조사국(USGS), 위키미디어 코먼스
괌의 갈색나무뱀. 사진=미국지질조사국(USGS),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번 연구는 포식동물이 사라졌을 때 대규모 공간에서 장기간 나타나는 영향을 조사했다는 의미를 지니며, 실제로 실험실에서 했던 과거의 연구에 견줘 생태계 영향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연구진은 논문에서 밝혔다. 실험실 연구가 현실을 과소평가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연구진은 또 “곤충을 먹는 새들이 감소하는 것이 세계적인 현상이어서 이번 연구 결과는 더욱 중요하다”며 “이대로라면 우리는 거미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 것”이라고 강조했다.

괌에서 외래종 갈색나무뱀의 확산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생태 재앙’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80년대까지 이 섬에 살던 토종새 12종 가운데 10종이 멸종했고, 2종은 뱀 덫으로 보호하는 좁은 지역에서 근근이 살아남아 있다.

외래종 뱀은 생태계 교란뿐 아니라 인가에 침입해 정전사고를 일으키는 등 여러 부작용을 빚고 있다. 미국 정부는 해마다 100만 달러를 들여 이 뱀을 퇴치하느라 애쓰고 있으나 특별한 성과는 없는 형편이다(■ 관련기사: 뱀과의 전쟁, 공군까지 동원해 ‘쥐 폭탄’ 투하)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ogers H, Hille Ris Lambers J, Miller R, Tewksbury JJ (2012) ‘Natural experiment’ Demonstrates Top-Down Control of Spiders by Birds on a Landscape Level. PLoS ONE 7(9): e43446. doi:10.1371/journal.pone.004344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조홍섭 한겨레신문 환경전문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로서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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