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지난 8일부터 오는 8월8월까지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전시가 열린다. 1층 로비에는 고사한 경북 울진의 금강소나무가 전시돼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기후위기가 미술 전시의 주제로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고사한 침엽수가 미술관 앞마당에 쓰러진 채 전시돼 관람객을 맞이하는가 하면, 폐기물과 탄소배출을 최소화한 ‘제로웨이스트’ 전시도 호평을 받고 있다.
8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는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를 다룬 전시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가 개막했다. 미술관 앞마당에는 환경단체 녹색연합이 강원도 정선 일대의 함백산에서 옮겨온 고사한 전나무가 누워있고, 로비에는 고사목인 경북 울진의 금강소나무가 놓였다. 이밖에도 척박해진 서식지에서 목숨을 잃은 산양과 북극곰의 박제본, 사막화가 시작된 바다 속 영상, 녹아내리는 북극 빙하 소리 등을 전시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관람객은 기후위기가 휩쓸고 간 현장에 도착한 듯 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시민의 기후행동을 촉구하는 공공예술 캠페인인 ‘기후시민 3.5’의 일환으로 열렸다. 기후시민 3.5는 지난해 7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모사업으로 선정된 프로젝트로, 인구의 3.5%가 행동하면 사회변화가 가능하다는 사회학자 에리카 체노워스의 연구에서 영감을 얻었다. 예술가, 시민단체, 연구기관 등이 협업해 기후위기와 관련한 전시, 영화제,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앞마당에 고사한 전나무가 전시된 모습.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전시 기획자이자 기후시민 3.5 총괄 감독인 이혜원 대진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는 “기후위기 문제를 물리적, 감정적으로 경험할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이 교수는 “집단 고사한 침엽수와 바다사막화가 진행된 장면은 기후위기의 가장 뚜렷한 증거들이다.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기후위기의 현실을 전시를 통해서나마 물리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해결하려면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 중 예술이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은 이성적 설득보다는 현 상황을 인지할 감성적,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기후나 환경 분야에 관한 크고 작은 전시들은 있었지만, 대형 미술관에서 이러한 주제를 전면에 내세워 전시를 여는 것은 최근 나타난 변화다. 이 교수는 이와 관련해 “2000년대 초반부터 기후 문제에 관한 전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데, 지난해 코로나19 확산과 긴 장마 등을 경험하며 이 분야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관심이 급격히 늘었다”고 돌아봤다.
나아가 전시 스스로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변화를 꾀한다. 전시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과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페인트칠한 가벽과 포스터·초청장을 비롯한 인쇄물, 강렬한 조명 등을 최소화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4일부터 오는 9월22일까지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전시 모습. 흰색 페인트를 칠한 가벽 대신 나무벽에 작품을 걸었고, 전시장 한쪽엔 전시 폐기물이 산처럼 쌓여있다.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부산현대미술관에서는 지난달 4일부터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재사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페인트칠한 가벽 대신 거친 나무판에 작품을 걸었다. 작품 설명은 이면지에 손글씨로 적었고 포스터나 초청장은 따로 만들지 않았다. 또 작품의 항공 운송을 최소화해, 원거리의 작품은 생중계로 보여주거나 제작 설명서를 전송받아 현지에서 재제작 됐다. 전시장 한 편에서는 이전 전시 후 나온 쓰레기 더미를 그대로 쌓아둔 채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도 도록을 제작하지 않고 재사용 가능한 가벽을 쓰는 등 폐기물을 최소화한 제로웨이스트 전시를 시도했다.
부산현대미술관의 최상호 학예연구사는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환경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 방안을 고민하는 시도가 부족했다. 이를 인식하고 지속가능한 전시를 위한 현실적 방안을 도출하고자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시에서 나온 폐기물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부담이 있기도 했지만 미술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봤다. 많은 동료들도 이런 설득에 응하고 동참해줬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