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위해 오래된 숲을 베어 내고 어린 나무를 심겠다는 산림청의
‘산림부문 탄소중립 추진전략안’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산림 탄소흡수량을 늘리려고 30년 이상 된 기존 산림을 대대적으로 베어낼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면서 환경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선 것입니다. “산림의 생태적 기능은 안 보고 30년 넘은 숲을 쓰레기 취급한다” “산림청이 아니라 산림파괴청”이라는 비난까지 쏟아집니다.
산림청은 지난 1월 발표한 이 전략안에서 산림의 탄소 흡수능력 강화를 위한 핵심과제 하나로 ‘영급구조 개선’을 제시했습니다. 영급은 나무의 나이를 10년 단위로 구분하는 산림용어입니다. 1~10살은 1영급, 11~20살은 2영급, 21~30살은 3영급 등으로 부릅니다. 산림청은 30년생 이상 산림이 전국 산림면적의 72%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불균형한 영급구조’로 규정했습니다. 4영급 이상 산림이 구조 개선의 대상임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산림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6.3% 제거해주는 고마운 존재
숲을 베어내고 어린 나무를 심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2020년 임업통계연보를 보면, 산림청은 2019년 전국 산림의 0.37%인 2만3413㏊에 약 5천만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이런 조림 규모는 2015년 이후 거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2050년까지 30억그루를 심으려면 매년 1억그루를 심어야 하니까 지금껏 해 온 조림사업 규모만 배로 늘려도 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산림청의 탄소중립 전략 추진 과정에 기존 숲의 72%가 잘려나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기우일 수 있다는 얘깁니다.
전략안 수립 실무자인 황성태 산림청 산림자원과장은 “30억그루 조림은 도시지역, 유휴토지 등의 조림과 북한 지역에 하려는 조림 계획까지 포함한 것이고, 영급구조 개선도 산림청이 150만㏊의 경제림육성단지에서 펼쳐온 숲가꾸기, 간벌, 조림사업 등을 좀더 추진력 있게 하겠다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의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를 보면, 산림은 2018년 온실가스 4560만t을 흡수한 것으로 집계돼 있습니다. 같은 해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7억2760만t의 6.3%, 수송부문 배출량 9810만t의 절반 가까운 양을 제거해준 셈입니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면서 불가피하게 배출된 것을 제거해 대기 중 순배출량 0에 도달하려는 것입니다. 바다와 더불어 이산화탄소 최대 흡수원인 산림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산림의 탄소 흡수량이 빠르게 감소하는 것은 쉽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국내 산림의 연간 온실가스 흡수량은 2008년 6150만t으로 최대치를 기록한 이후 2018년까지 10년 동안 무려 25.9%나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 산림면적은 637만4875㏊에서 630만5962㏊ 약 1.1% 줄었을 뿐입니다. 산림면적 감소가 온실가스 흡수량 감소의 주원인은 아니란 걸 말해주는 통계입니다. 실제 산림의 온실가스 흡수량은 2008년까지는 산림면적이 줄어드는데도 증가해 왔습니다.
국유림에서 이뤄지는 산림청의 숲가꾸기 작업 모습. 연합뉴스
20살 전후 산림 흡수량 가장 좋지만…오래된 나무 능력 증명한 연구도 많아
산림청이 추진하려는 영급구조 개선은 흡수량 감소 주원인으로 산림 노령화를 지목한 조사 결과에 근거한 것입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주요 산림수종의 표준 탄소흡수량’ 자료를 보면 1970~80년대 많이 심어진 잣나무의 1㏊ 당 연간 온실가스 흡수량은 20살이 됐을 때 11.8t으로 최고치를 기록합니다. 그 뒤로는 서서히 줄어 70살이 되면 최고치의 절반으로 떨어집니다. 활엽수인 상수리나무와 신갈나무림도 마찬가지로 20살때까지 흡수량이 늘고 이후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하지만 이 흡수량 조사 결과는 주요 수종 나무의 흡수량만 집계한 것이라는 점에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가령 잣나무 숲이라고 잣나무만 자라는 것이 아닌데도 잣나무 흡수량만 따진 것입니다. 옆에서 자라는 다른 나무나 토양 등에 흡수되고 저장되는 탄소는 고려하지 않은 것이죠. 이것은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부분까지 고려하는 것은 아직 준비 단계입니다.
산림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숲은 150년 정도 노령화되면 결국 이산화탄소 흡수량과 배출량이 같아지는 탄소중립 상태에 들어간다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더 넓은 범위와 다양한 환경의 숲에서 진행된 연구를 통해 상반된 연구 결과가 쌓이면서 이런 믿음은 허물어져 가고 있습니다.
2008년 유명과학저널 <네이처>에는
숲은 800살이 될 때까지도 이산화탄소 순흡수원으로 기능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2014년에는 대부분의 나무는 노령화돼도 연간 온실가스 흡수량이 둔화되지 않는다는 16개국 과학자들의 공동연구 결과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6개 대륙의 열대·아열대·온대 기후대에서 자라는 400여종의 나무를 장기간 조사해 얻은 결론입니다. 산림과학원 자료에도 유사한 대목이 보입니다. 수령 70년까지 조사한 ‘표준 탄소흡수량’ 자료에는 한국 숲의 대표 활엽수인 상수리나무와 신갈나무의 연간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계속 증가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산림청의 벌목과 조림 효과가 극대화되려면 숲에서 베어진 크고 작은 나무들이 모두 수거돼야 합니다. 그래서 목재 제품으로 만들어져 탄소를 계속 저장하거나 바이오에너지 등으로 활용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벌목에 수반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새로 심어진 어린 나무들이 활발하게 흡수하고 저장하는 양을 상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무뿐 아니라 숲 전체 탄소 저장 능력 따져봐야
주요 수종만이 아니라 숲에 있는 모든 식물과 토양까지 고려한 연구 결과는 이런 우려를 뒷받침합니다.
2015년 한국임학회지에 발표된 고려대와 산림과학원 공동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40% 수준으로 간벌한 숲에서 줄어든 탄소 저장량이 간벌하지 않은 대조구 숲과 같은 정도로 회복되는 데 무려 77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벌목한 숲에서 실제 거두는 것은 벌목량의 30% 정도인 통목재일 뿐이고, 벌목한 나무의 뿌리와 가지는 물론 작은 나무들까지 베어진 뒤 산에 버려져 탄소 배출로 이어진다. 산림청의 탄소순환림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현실은 불가능한 얘기”라고 잘라 말합니다.
산림청 제공 ‘산림 탄소 흡수원 확충 공간 개념도’
홍 교수는 “중요한 것은 산림의 흡수량이 아니고 저장량이다. 탄소 흡수가 목적이라면 스스로 자연림으로 대체돼 가는 인공림을 다시 인공림으로 바꾸지 말고 자연림으로 바꾸면 훨씬 많이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산림청은 이런 우려에도 30억그루 조림 사업을 수정할 뜻은 없어 보입니다. 이를 통해 현재 추세대로면 2050년에 1400만t까지 줄어들 국내 산림의 연간 탄소흡수량을 2070만t선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목재 이용에 따른 탄소 저장과 화석에너지 대체 등을 통한 배출량 감축 등을 더해 2050년 탄소중립에 3400만t을 기여한다는 것이 산림청의 목표입니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중 산림 몫은 2210만t
산림청에게 더 급한 것은 정부가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라 유엔에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약속인 국가결정기여(NDC) 이행입니다. 기존 감축 약속을 지키려면 한국은 2030년에 온실가스를 2017년 배출량보다 24.4% 적은 5억3600만t 이내로 배출해야 합니다. 여기엔 온실가스 배출을 상쇄할 산림 부문 흡수량 목표 2210만t이 포함돼 있습니다. 에너지, 산업 등 다른 부문들이 그만큼 온실가스를 더 배출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반면 산림 부문은 목표를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정부는 올해 안으로 기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하기로 국제사회에 약속했습니다.
산림청은 2030년 산림 부문 온실가스 흡수량이 감축 로드맵에 상쇄할 몫으로 잡혀 있는 양보다 약간 많은 2400만t에 이를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흡수량이 모두 그대로 국가결정기여 이행 실적에 포함되면 좋겠지만 그것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파리기후협정에 따른 산림부문 온실가스 흡수량 평가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인위적 노력이 들어가 이뤄진 부분만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2030년 산림부문 이산화탄소 흡수량 2400만t 가운데 2210만t을 실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2018년 기준 53.4%인 우리 산림경영률을 90%까지 높여야 가능합니다.” 산림 부문 기후변화협상에 참여해온 배재수 산림과학원 산림산업연구과장의 설명은 이것이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임을 말해줍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