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장수, 짚신장수 두 아들을 둔 어머니는 쨍쨍하게 해가 뜬 날이 싫다고 했다. 비가 내리는 날도 싫다고 했다. 그래도 그런 날들이 적당해서 우산장수도, 짚신장수도 살아갈 수 있었다.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극한의 폭우, 극한의 가뭄, 극한의 한파가 장기간 몰아친다. 누구의 일자리도 안전하지 않다.
<한겨레>는 기후변화와 이상기후가 불러온 산업구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만났다. 평생 배우고 익힌 것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고, 미래를 준비하고 싶어도 혼자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이들은 불안해했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 이들과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1. 기간산업에서 공공의 적으로…석탄발전소 노동자
이진길(48)씨는 2010년부터 한국중부발전 보령발전본부 화력5·6호기에서 일한다. 화석연료가 연소될 때 나오는 황산화물을 제거하는 운전을 5년 했다. 지금은 부산물인 석탄회를 처리한다. 정부는 지난 12월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해 가동 30년이 된 석탄발전설비 24기를 폐쇄하기로 했다. 1993년과 94년에 준공한 보령5·6호기도 여기 포함됐다. 두 시설은 2025년 12월 유연탄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연료로 전환한다.
이씨는 한전산업개발 직원이다. 한국중부발전은 원청업체다. 정규직이지만 원청업체가 석탄발전을 중단하면 그 역시 직장이던 발전소로 더는 출근할 수 없다. 한전산업개발에서 다시 하청을 받는 하역업체, 부두노동자, 경비노동자, 청소·환경미화 노동자 등도 탈석탄이 완료되면 일터가 사라진다.
이씨는 한국발전산업노조 한전산업개발 발전본부 보령지부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미 고용불안을 서서히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원청에서는 근무시간을 줄여서 고용을 유지해준다고도 하는데 그럴 경우 급여가 줄어들어요. 현재는 발전소가 없어진다는 말만 있지 명확한 게 없어요.”
지난 12월8일 자신이 일하는 보령석탄화력발전소 앞에 선 이진길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한전산업개발발전본부 보령지부장. 보령/최우리 기자
<한겨레>는 지난 12월9~15일 한전산업개발 보령·신보령발전본부 노동조합을 통해 직원 217명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에 참여한 절반 이상(119명)이 4인 이상 가족을 꾸리고 있었다. 20대 21명, 30대 71명, 40대 83명, 50대 42명이었다.
석탄발전소 운영이 중단돼 직장을 잃게 될 경우 다른 일자리가 준비돼 있는지를 물었다. 그렇다는 응답은 14명에 그쳤다. 기후위기·미세먼지 때문에 석탄발전 운영을 중단하는 것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는 174명이 반대했다. 반면 탈석탄 과정에서 정부의 재교육·재취업 프로그램 참여 의사를 묻는 질문에는 170명이 긍정적으로 답했다.
구준모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자들이 발전소 운영 중단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는 이유는 그만큼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환경문제에서 석탄발전의 책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노동자들의 실직에 대한 불안감,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그로 인한 자존감 하락 문제 등을 잘 풀지 못하면 탈핵 추진 과정에서 겪어온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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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60기 석탄발전소는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28%, 국내 발생 미세먼지의 10%를 차지한다. 현세대한테는 대기오염, 미래세대한테는 기후위기를 심화시켜온 산업화 시대의 낡은 상징이 됐다. 정부와 환경단체는 석탄발전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퇴출 1순위로 꼽고 있다. 문재인 정부 역시 2050년 탄소중립을 약속하며 이르면 2040년대 탈석탄을 공언했지만, 관련 노동자들을 위한 고용대책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지난해 12월8일 충남 보령에서 한전산업개발 노동조합 이진길(48) 보령지부장, 남상무(53) 신보령지부장을 만났다. 지난해 연말 조기 폐쇄된 보령1·2호기 노동자 10여명은 같은 원청이 운영하는 충남 서천화력발전소로 이동했다. 남은 200명가량은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근무지를 변경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강원 고성(2021년), 강릉(2022~23년), 삼척(2023년)에 새로 들어서는 석탄발전소로 이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줄줄이 폐쇄되거나 다른 발전방식으로 전환될 보령5·6호기(2025년 LNG 전환), 당진1~4호기(2029년 LNG 전환), 태안1~4호기(2025~29년 LNG 전환) 노동자 등은 살던 지역을 떠나거나 이 업종을 아예 떠나야 한다. 이진길 지부장은 처가가 있는 보령에 살고 싶지만 “이 일을 계속하려면 기러기 생활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기후위기가 두려운 것은 과거에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미래에는 틀린 것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남상무 지부장은 26년째 이 분야에서 일했다. “입사 당시에는 미래 에너지가 석탄과 원자력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어요.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일이었지만 기간산업이고 공기업이니 튼튼하고 안정적이라 믿고 버텼는데 몇년 전부터 미세먼지나 온실가스로 석탄발전소가 공공의 적이 됐네요.” 50대인 그는 발전소가 문을 닫으면 택시 운전을 할까 고민해봤다고 했다.
지난 12월8일 자신이 일하는 신보령석탄화력발전소 앞에 선 남상무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한전산업개발발전본부 신보령지부장. 보령/최우리 기자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관리·운영 인력은 석탄발전보다 적다.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이 기존 석탄발전 노동자들을 완전히 흡수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분간은 액화천연가스(LNG) 등을 연료로 하는 복합화력발전소에서 이들의 고용이 유지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복합화력발전 역시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에 석탄발전소처럼 언젠가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공공부문만으로는 수요를 맞추기 어려울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민간 복합화력발전소로의 이동이 대안일 수밖에 없지만 이 역시 청정에너지는 아니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발전 관련 재교육이 필수”라고 했다.
<한겨레> 설문조사 결과 새 일자리의 기준은 급여 53.4%(116명), 업무환경 등 복지 34.1%(74명). 거주지역 17.9%(39명), 경력과 자기계발 8.8% (19명) 순서였다. (217명 중 19명이 복수 항목을 선택했다) 노조가 밝힌 급여 수준은 초임 3천만원, 10년차 4천500만원으로 박하지 않다. 불규칙한 야간·새벽 근무와 위험한 업무의 특성이 반영됐기 때문인데, 이는 정부가 재취업을 제안할 때 적어도 이만큼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해야한다는 의미기도 했다.
<한겨레>는 지난해 12월 충남 보령 석탄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한 노동자는 “석탄발전소가 사라진다면 대체할 에너지 사업이 생겨야 하고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2. 전기차 세상에서 휘발유차 공부하는 학생들
휘발유·경유로 움직이는 내연기관차도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노르웨이(2025년), 네덜란드(2030년), 영국(2035년), 스페인·프랑스(2040년) 등이 내연기관차 퇴출 시기를 선언했다. 한국도 2035년을 목표로 퇴출 계획이 논의되고 있다. 그 자리를 전기차·수소차가 대신한다.
지난해 12월11일 서울 용산 서울자동차고 실습실에서 만난 김민석(19)군은 졸업반이다. 인하공전 자동차과 진학 예정이다. “전기차는 기관이 사라져요. 정비사들은 의사들처럼 발전하는 기술을 따라 배우죠. 솔직히 여기서 배운 게 쓸모없어지는 부분이 많아요.”
한국폴리텍대학에 진학하는 김원탁(19)·이중빈(19)군은 자동차산업이 빠르게 바뀌고 있어 다소 혼란스럽다. 그래서 이들이 택한 주 전공은 “자동차 자체가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테스트(중빈), 튜닝(원탁) 분야다.
2학년 배정원(18)군은 “전기차에 대해 배운 것은 없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하이브리드차까지만 가르쳐준다. 그래도 테슬라나 현대·기아에서 나오는 전기차 신모델에 관심이 많다. 전기차를 정비할 수 있는 그린전동자동차기사 자격증이 있지만 “학교교육과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배군은 유튜브를 보며 혼자 전기차를 공부한다.
이 학교 자동차교육부 조준호 교사는 전기차 관련 유튜브 영상이나 외부 연구보고서 등을 찾아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교육 인프라가 형성 안 된 것이 사실이죠. 교육청 등에서 나온 그린전동자동차기사 자격시험 교육 매뉴얼도 없어요.” 그는 “우리나라 전기차 신차 비율이 선진국 중에서 최하위다. 인프라가 커지지 않으면 교육기관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미국은 고등학생들이 정규교육 외에도 전기·자율주행차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현장실습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전기차 생태계를 만들어 수백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물간 교육”을 걱정한다. “전기차 생산 증가와 상관없이 생산라인 자동화로 생산직 고용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 전기차·자율주행차 시대가 되면 생산직보다 소프트웨어 개발 등 연구 인력이 더 필요해진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교육과정에 반영이 안 되고 있다. 전기차를 가르칠 사람은 없고, 완성차 회사에서도 앞장서 대응하지 않고 있다. 변화가 필요하다.”
지난해 12월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자동차고등학교 실습실에서 조준호 선생님(맨 왼쪽)과 2, 3학년 학생들이 인터뷰를 하기 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3. 이런 한파에는 일을 못 한다…옥외노동자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14.1%(332만명)는 덥거나 추워도 밖에서 일하는 옥외작업자다. 2014~18년 한랭질환 산재 38건 중 15.8%, 온열질환 산재 146건 중 47.9%를 건설업 종사자가 차지했다.
지난해 12월9일 만난 건설노동자 이상범(31)씨는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날씨에 야외노동이 갈수록 버겁다고 했다. 형틀 목수인 그는 인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건물 뼈대를 만든다. 지붕도 없는 야외에서 새벽 5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하루 11시간 동안 머문다. 그는 올겨울 한파가 거세다는 예보가 두렵다고 했다. “손이 얼어서 망치질하다 많이 다치고요. 콘크리트가 안 굳어서 일을 못 해요. 올겨울이 역대급으로 추울 거라고 하니 걱정이 크죠. 지금도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다 미뤄두고 업무가 중단된 상태입니다.” 그의 걱정은 현실이 됐다. 인천지역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내려간 지난 7일부터 나흘간 작업은 중단됐다.
현장에서 견디는 폭염도 아찔한 수준이 됐다. “햇볕이 그대로 내리쬐는 현장은 다른 곳보다 기온이 2~3도 높아요. 2018년 여름엔 정신을 잃은 적도 있어요. 스위치를 껐다 켠 것처럼 5~10분간 기억이 없더라고요.”
극한의 날씨는 야외노동자의 일할 기회를 차단해버리기도 한다. 건설노동자의 경우 장마가 길어지면 일을 못 해 수입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54일간 장마가 이어진 지난해 여름 이씨의 월급은 반토막 났다.
지난 12월14일 자신이 일하는 인천 서구 아파트 건설 현장을 배경으로 선 건설노동자 이상범씨. 김민제 기자
김영애(54)씨는 서울 광진구 중곡동 일대를 돌며 가스를 검침한다. 17년 간 한 달에 8일씩, 하루 800~1000가구의 가스 검침기를 확인해왔다. 야외근무에 도가 텄지만 한파는 갈수록 그를 긴장시킨다. 추운 날씨에 근육이 굳은 채 일하다 보면 몸에 무리가 온다. “삼한사온이라고 하잖아요. 그게 통할 때는 3일 후면 따뜻해지니까 쉬엄쉬엄하자며 스케줄을 조정했는데, 지금은 그런 예상이 안 돼요.”
여름철 업무 강도도 다르게 다가온다. 하루 8시간 언덕을 오르내리는 그는 짐을 최소화하기 위해 물병을 챙기지 않는다. “제 구역은 산동네라 더울 때 높은 곳에 올라가면 시원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요. 높은 곳이든 아니든 덥고 현기증이 나요.”
지난해 12월 국가인권위원회에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 진정을 낸 지현영 변호사(법무법인 두루)는 “한국 사회는 노동의 권리를 노사관계나 결사의 자유 측면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부나 회사의 책임이라고 보기 어려운 기후 문제에 노동권을 주장하는 것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사용자가 초래한 위험이 아니더라도 사용자는 노동자가 적절한 환경에서 노동할 수 있도록 보호할 의무가 있다. 정부 역시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보령/최우리 김민제 기자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