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는 2021년 기후변화를 넘어선 기후위기 관점에서 건강과 생명을 위협받고 삶의 변화를 강요받는 사람들을 찾아나선다. 기후위기는 주거와 건강, 직업과 노동을 가장 먼저 위협한다. 흔들리는 것은 나와 우리의 인권이다. 200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기후위기를 일상으로 안고 살아야 하는 기후세대이다. 기후위기를 불러온 부모 세대, 이런 세상을 물려받은 자식 세대의 현실과 고민을 우선 살펴봤다.
“어느 젊은 분이 ‘어른들이 지구환경 망쳐놓고 우리에게 책임지라고 하느냐’고 말하는데 순간 와닿더라고요. 미안하죠. 우리는 좀 더 살았지만 아이들은 얼마 안 살았는데 이런 일이 닥쳐서. 아이들이 화내는 게 당연해요.”
서울 강동구에 사는 주명희씨가 기후변화 문제를 처음 접한 것은 15~20년 전쯤이다. 당시 사람들은 “북극곰이 살기 힘들다” “지구종말을 가리키는 시곗바늘이 12시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다”고들 했다.
삶의 태도는 쉽게 바꾸기 어려웠다. 부족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내 집과 내 차 마련”에 집중하게 했다. 경제성장을 부르짖었고, 그만큼 소비를 많이 했다. 공장은 쉬지 않고 돌았다. 육식하는 인구가 늘었다. 요즘 유행하는 패스트의류 산업도 빨리 쓰고 빨리 버린 어른들의 태도에서 출발한 것 같다. 주씨가 미래세대에게 느끼는 미안함의 정도는 10점 기준 7~8점으로 꽤 높다.
“젊은 사람들이 잘 헤쳐나가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하지만 지구가 금방 회복되는 건 아닐 테니 걱정되죠. 이렇게 먹고살기 바쁜데 언제 기후변화 신경 쓰면서 살까 싶기도 하고요.”
화학을 전공한 딸(26)이 그의 ‘환경 교사’다. 딸은 “플라스틱 페트병이 많이 나오니까 물을 끓여먹자고” 했다. 제대로 재활용하기 위해 분리수거 잘 하는 법도 가르쳐줬다.
그는 기후위기 문제에서 “선진국과 기업의 책임”이 크다고 느낀다.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의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정부가 구체적인 미래상을 보여줬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탄소중립을 한다면) 앞으로 국민 대다수가 불편을 감수해야 할텐데 그런 사실은 잘 전해지지 않았어요. 정부와 기업이 우선 변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도 달라질 텐데요.”
지난해 9월2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아즈사 북쪽 앤젤레스 국립공원에서 일어난 산불. 기후변화로 전지구적으로 산불 발생이 늘었고, 땅이 건조해져 진화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도 춘천에 사는 홍주리씨는 2014년 4월 첫아이를 낳았다. 출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자녀 있는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작은 생명이 눈을 뜨고 말을 배우며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힘들기는 하지만 기쁨도 많았다.” 다만 엄마가 된 뒤 그는 “세상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고 했다. 만삭일 때 경험한 세월호 참사가 재난 상황에서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불신을 남겨서였을까. 미세먼지와 미세플라스틱, 방사능 등 엄마가 막아줄 수 없는 지구적 환경오염 문제가 아이에게 혹여 상처를 남길지 불안했다. 직접 방사능 측정을 하는 엄마들의 모임인 ‘차일드 세이브’를 통해 1인시위도 나갔다.
그는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은 “좋은 집과 차로 안전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물과 공기가 오염되면 결국 누구도 재앙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평등하다’는 위험사회의 교훈이다.
그는 새해를 앞두고 둘째를 낳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세상이 위험해질수록 “아이에게 잘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 느낀 우울감”을 둘째를 키우며 다시 경험할 용기가 없어서다. 물론 기후위기만이 출산을 주저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임신·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 육아에 들어가는 경제적 비용도 부담으로 느끼고 있다. 다만 무엇이 둘째 출산을 결정할 때 더 큰 부담인지를 묻는 질문에 “분리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기후위기를 설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아이와 함께 보는데 아이가 ‘왜 어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냐’고 물었어요. ‘어른들이 이런 세상을 만들어서 미안해. 너가 컸을 때는 많이 바뀔 거야’라고 말해주었는데, 사실 저도 자신이 없어요.”
홍씨가 말하듯 기후위기는 현재와 미래를 모두 잠식한다. 폭염, 한파, 홍수와 가뭄 등 이상기후로 인한 재앙은 그 자체로 생명을 위협한다. 영국에서 출산파업(Birth Strike)운동을 이끌고 있는 사회운동가 블라이스 페피노는 “살기 힘든 환경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기후위기로 재앙 직전의 세계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절기상 소한을 이틀 앞둔 1월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제천 인공폭포가 얼어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안산 송호고등학교 2학년 김민주양은 2020년을 다소 우울하게 마감했다. 봉사 동아리 회장을 맡았지만 코로나19로 제대로 활동 한번 못했다.
친환경교실 시범학교라 수업에서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에 대해 배웠는데, 툰베리의 우울과 분노는 그에게도 전해졌다.
기후위기가 심해지면 전염병이 창궐하고 재난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김양은 “응급구조사가 꿈인데 기후위기로 일할 환경이 더 안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기후환경으로부터 안전할 미래세대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는 듯하다. 더 강력한 기후변화 대책이 나와줬으면 싶은데 어른들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또 “내 자녀가 기후위기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란다”며 출산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자라는 중이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분노와 서러움이다.
“어른들이 미래 세대를 기후환경으로부터 안전할 미래세대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더 강력한 기후변화 대책이 나와줬으면 싶은데 어른들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아요.”
광주 전남공업고 졸업을 앞두고 있는 김정빈군은 기후변화 문제를 일부러 회피하려는 어른들을 생각하면 “안타깝다”고 했다. “왜 그럴까 싶어요. 불편하니까 깊게 안 들여다보려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모든 어른이 싫은 것은 아니다. “어른들이 우리를 이만큼 키워줬잖아요.”
<한겨레>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자식 세대와 부모 세대의 기후변화 인식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10월16~22일 공동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전국의 청소년(14~18살) 500명, 성인(19~59살) 500명이 조사에 응했다.
10명 중 6명(청소년 63.6%, 성인 58.2%) 정도는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은 이미 나타났다’며 기후변화를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청소년의 경우 최근 3년 이내라고 답한 비율이 76.1%에 달했다. 성인은 47%가 3년 이내라고 답했다.
기후변화를 체감하게 된 계기는 갈렸다. 성인들은 ‘극지방 이상고온 및 빙하 붕괴’(30.8%)를 많이 꼽은 반면, 청소년들은 코로나19 팬데믹(42.4%)을 기후변화와 연결지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후변화 현상을 두고도 성인은 폭염·태풍·호우·가뭄 등 이상기후(34%), 평균기온 상승(20.4%), 대기오염(9.8%) 순으로, 청소년은 평균기온 상승(22.6%), 이상기후(19%), 해수면 상승(14%) 순으로 꼽았다.
이필영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장은 “과거 여러 기후변화 뉴스를 접했던 성인과 달리 청소년에게는 2018년 폭염, 2019년 태풍, 2020년 역대급 장마와 코로나19 등이 일생일대 강렬하고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차이는 기후변화 교육 유무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 75.6%는 기후변화 대응 교육을 받았다고 답했지만, 성인의 비율은 32.6%에 그쳤다.
기후변화는 누구 책임인지를 물었다. 청소년은 자원을 독점하고 고갈시킨 선진국(28.8%), 기후·환경에 무관심한 어른 세대(26.6%), 이윤에 몰두하는 기업(17.6%), 에너지 과다사용을 허용한 정부(14.4%) 순으로 책임을 돌렸다. 반면 성인은 자신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응답(38.2%)이 가장 많았다. 기후변화로 인해 청소년에게 느끼는 미안한 감정의 정도(0~10점)를 물었더니, 10명 중 8명 가까운 성인(76.6%)이 미안하다, 매우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기후변화를 일으킨 어른 세대에 대해 느끼는 청소년들의 감정은 분노(18.4%)보다 안타까움(31.6%)이 훨씬 컸다. 서러움(8.4%), 좌절(8.2%), 불쌍함(7%)이 그 뒤를 이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인권침해 가능성에는 청소년 57.2%, 성인 54.6%가 동의했다. 침해받는 권리로는 청소년(47.2%), 성인(39.2%) 모두 생명권을 가장 많이 꼽았다. 그 다음으로는 건강권(청소년 15.7%, 성인 26.4%) 침해를 우려하는 의견이 많았다. 노동권(청소년 2.1%, 성인 2.9%)에 대한 인식은 낮았다.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회원인 백하(31)씨는 2019년 9월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9·21 기후위기비상행동’에서 “짧아진 미래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요?”라는 피켓을 들었다. 그는 “3남매라 가족이 많을 때 느끼는 행복이 좋다”면서도 “기후위기로 인해 인간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구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상태에 계속 놓여야 한다는 생각에 닿으면 우울해졌다. 가급적 결혼은 하려하지만 출산은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7일 제10호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리면서 울산 태화강이 범람해 둔치와 주변 도로가 물에 잠겨 있다. 태화강에는 홍수주의보가 발령됐다. 연합뉴스
기후변화로 출산을 고민해 본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성인 500명 중 140명(28%)이 그렇다고 답했다. 아이출산 계획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55명(11%)이나 있었다.
기후변화가 자녀 계획에 영향을 미친다는 답변은 청소년을 포함할 경우 그 비율이 더 올라갔다. 조사 대상 1000명 중 433명(43.3%)가 그렇다고 답했다. 1명만 낳겠다(248명), 낳지 않겠다(185명)는 응답이 많았다. 이런 답변을 한 이들의 절반 가량은 그 이유로 ‘자녀가 안전하고 건강하고 풍요롭게 살아갈 환경이 아닐 것 같아서’라고 했다.
다행인 것은 청소년과 성인 모두 ‘노력하면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다’는 긍정 답변자가 많았다는 점이다. 망가진 지구를 물려받을 청소년의 78.4%, 그런 세상을 만든 성인 84.6%가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가 가장 떠받치는 경제성장을 일정 부분 포기할 수 있다는 응답이 청소년(70.4%), 성인(70.2%) 고루 높게 나왔다.
기후변화 대응 세금을 낼 수 있다는 응답도 민감한 돈 문제임을 감안하면 비교적 높은 비율(청소년 44%, 성인 47.6%)로 나타났다. 기후변화에서 누구를 우선 지원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취약계층’이라고 답한 비율이 청소년은 68.4%, 성인은 62.4%였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는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성난 표정을 보면서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해지면 가해자인 어른 세대와 피해자인 미래세대와의 갈등이 언젠가는 폭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설문조사 결과는 이런 생각과 달랐다”고 했다. 다만 어른 세대의 기후위기 대응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세대 갈등은 기후변화보다 더 빠르게 난폭해질 수 있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기후변화는 현재세대와 미래세대가 생명권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장 시급하고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이미 지적했다”고 했다. 미래세대는 물론 어른 세대 역시 이미 당면한 현실의 문제로 기후위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전체 조사내용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홈페이지(childfund.or.kr)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