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 실현 당정협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기후악당’이라 비판받아온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성적은 여전히 최하위권이다. 7일 유럽 기후행동네트워크(CAN) 등이 발표한 ‘2021 기후변화대응지수’에서 한국의 대응 성적은 온실가스 다배출 61개국 가운데 53위(매우 미흡)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철강·석유화학 등 고탄소 산업구조의 저탄소 전환 등을 통해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재원 마련을 위해 기후대응기금을 조성하고 탄소세 도입 등도 검토한다.
정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의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확정했다. 국무총리와 민간 전문가가 공동위원장을 맡는 대통령 직속 민관 합동 ‘2050 탄소중립위원회’도 설치한다. “온실가스 감축 실행 계획을 다음 정부에 떠넘기지 말고 완성하라”는 문재인 대통령 지시 열흘 만에 나온 후속 조처다.
정부는 다른 선진국과 달리 고탄소 배출 제조업 비중이 큰 국내 산업구조가 탄소중립 추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산업구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한국 28.4%, 유럽연합 16.4%, 미국 11.0%였다. 특히 철강·석유화학·정유·시멘트 등 4개 탄소 다배출 업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8.4%로 경쟁국인 독일(4.6%), 일본(5.8%), 유럽연합(5.0%)보다 높다. 정부는 수소환원 제철(철강), 수소기반 소성로(시멘트), 나프타의 바이오 대체(석유화학), 이산화탄소 회수(정유) 등 신기술 적용을 통해 국가 핵심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촉진하기로 했다.
저탄소 기술 개발, 에너지 전환 등 고탄소 산업구조 혁신 등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기후대응기금도 신설한다. 유사 성격의 기존 특별회계와 기금을 통폐합해 추진될 전망이다.
탄소 배출 비용을 제대로 반영한 에너지 소비세제와 부담금 인상 등도 추진된다. 탄소가격 인상을 통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도록 유인하겠다는 것이다. 관련 세제 재검토 과정에서 탄소세 도입 방안까지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탄소세 도입 여부에 대해 “기후변화 대응, 소득분배, 물가, 산업경쟁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방침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후대응기금 재원에 대해서는 “친환경 에너지세 개편을 통해 주된 수입원이 조성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 선언에 이어 추진전략까지 내놓은 것은 탄소중립이 국제사회의 새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약한 국가의 상품을 대상으로 탄소국경세 도입을 추진한다. 이런 국제 경제질서의 대전환에 대응하지 않으면 탄소 집약적인 국내 산업의 수출, 자금 조달 등에 상당한 타격을 받으리라는 것이 정부 전망이다.
이번 정부안에는 저탄소 경제·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산업과 지역·노동자 등을 보호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석탄발전·내연기관차 산업의 대체·유망분야 전환을 지원하고, 맞춤형 직업 훈련을 강화하는 것 등이다. 다만 추진기구인 탄소중립위원회에 이를 담당할 분과위가 빠졌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기후에너지활동가는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할 창구가 있어야 하는데, 위원회 구성에 그런 관점이 빠졌다”고 했다.
한편 정부는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2018년을 정점으로 감소할 전망”이라며 처음으로 공식 문서를 통해 ‘배출 정점’을 언급했다.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가 지난 9월 밝힌 2019년 잠정배출량 추정치는 7억280만t으로 전년보다 3.4% 감소해 처음으로 배출량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수 최우리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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