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겪으며 한국 보건당국의 진단검사와 위기 대응 능력이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또 다른 신종감염병의 ‘범람’을 예방할 근력을 키운 것은 아니었다. 보건·의료·수의·환경 분야 전문가들은 그동안 보건 분야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고, 그 결과 감염병의 연관성을 확인하는 연구도, 관련 정책도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2017년 2월 박근혜 정부가 보건의료기본법을 일부 개정해 도입한 ‘기후보건영향평가’가 체계적으로 추진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인다. 기후변화가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5년마다 조사하고 평가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됐으나, 시범사업만 한 차례 실시했을 뿐이다. 채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질병대응연구센터장은 “보건복지부엔 기후변화 담당 부서가 없고 기후변화 관련 질병 분야에 관심이 적다. 자연히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정책화되기는 더 어렵다”며 “국가가 장기 연구를 주도해 자료를 축적해야 하는데 연구의 연속성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의 세출 예산에서 ‘기후변화대응역량강화’ 예산은 전체의 0.6%가량인 10억500만원에 불과하다.
기후변화 문제를 직접 관리하는 환경부도 감염병 문제를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기후변화와 신종감염병의 관계가 부각된 올해 4~5월 국립환경과학원을 중심으로 자체 조사에 나섰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올해 말까지 관련 연구를 의뢰한 상태다. 환경과학원 요청으로 자문을 시작한 이근화 한양대 의대 교수는 “감염병 영역에서 환경부가 생태계 교란 문제를 더 집중해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부 주도로 범부처가 참여한 ‘제2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2016~2020)’에서도 감염병 대책은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폭염과 한파 등 기온 변화에 따른 보건 문제가 주된 내용이었다. 올해 연말 발표 예정인 3차 대책에는 코로나19 사태로 감염병 대책을 다뤄야 하는 상황이지만, 기존 연구가 부족한 터라 대책 수립이 쉽지 않다. 장훈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 센터장은 “기후변화와 관련한 감염병 발병 우려가 제기되는 만큼 대책을 수립 중”이라며 “생태계 파괴 관련 부분을 언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수공통감염병이 신종감염병의 75%라는 점에서 사람·동물·생태계의 건강을 하나로 연결해 판단해야 한다는 ‘원헬스’(One Health) 정책이 줄곧 강조됐지만, 국내에서는 최근에서야 주목받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농림축산식품부·환경부 등이 협업해 인수공통감염병에 대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그나마 긍정적 변화로 꼽힌다. 미국이나 캐나다 보건당국의 경우 사람뿐 아니라 동물과 곤충에 대한 감시결과 자료를 누리집에서 제공할 만큼 인간 중심의 의료 정책에서 탈피한 지 오래다. 한국의 경우 수의역학을 포함한 공중보건분야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1999년 신종이자 인수공통감염병이었던 ‘웨스트나일열’을 발견하지 못한 과오를 돌아보며 센터 안에 신종·인수공통감염병센터(National Center for Emerging and Zoonotic Infectious Diseases, NCEZID)를 신설한 바 있다.
<한겨레>가 지난 7~13일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한국기후변화학회 회원 70명 중 57명(81%)은 ‘기후변화와 감염병의 상관관계를 확인하는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가 필요한 주제로는, 매개체 감염병, 대기 오염물질 농도 변화와 감염병의 상관관계, 야생동물 병원체 정보 수집과 위험도 관리, 기후변화 취약지역에 대한 감염병 대응과 예방 교육 등 다양했다. 환경공학을 전공한 한 회원은 “기후변화와 감염병 관계는 기초적 연구부터 잘 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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