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조세훈 고신대 기후변화 매개체 감시거점센터 연구원이 부산시 강서구의 한 돼지농가에 설치된 모기트랩에서 모기를 채집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돼 부산으로 들어온 철새를 모기가 물고, 그 모기가 다시 사람을 문다면 사람도 감염될 수 있죠.”
지난 8일 오후 낙동강 하구인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 을숙도생태공원. 조세훈 고신대학교 기후변화 매개체 감시거점센터 연구원은 철새보호구역에 모기 트랩을 설치한 이유를 설명했다. 작은 모기 한 마리가 동물과 사람 사이를,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나라 사이를 감염병으로 연결할 수 있다.
철새보호구역 출입금지 표지판을 두 번 지나 닿은 풀숲에는 둥글고 하얀 플라스틱 통 하나가 놓여 있었다. 조 연구원이 연결된 전기 스위치를 끄자 통 내부의 회전날개가 멈췄다.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에 주변 모기가 빨려 들어가도록 설계된 트랩(함정)이다. 사람이나 동물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감지해 흡혈 대상을 찾는 암컷 모기를 유인하기 위해 전날 통 위에 드라이아이스를 설치해놨다. 모기가 잡힌, 통 안에 든 망을 꺼내든 조 연구원은 “흰줄숲모기는 다른 모기와 비교해 낮에 주로 활동하고 낮은 높이로 비행하기 때문에 트랩을 바닥에 설치한다. 주로 숲에서 많이 보이지만 도시나 농촌 어디서든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 연구원이 속한 고신대 보건환경학부 이동규 석좌교수 연구팀은 올해 3월부터 부산 일대에서 흰줄숲모기 등 다양한 모기를 채집해 바이러스 검출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전국을 16개 권역으로 나눠 매년 3~11월 동안 실시 중인 ‘기후변화 매개체 감시 사업’의 부산·경남(거제·밀양·울산) 권역 조사 작업이다. 연구팀은 질본에서 정한 장소(돼지농가, 상가, 철새도래지, 숲 등)에 각각의 트랩을 설치한 뒤 2주에 한 번씩 모기를 채집한다. 채집한 모기를 급속 냉동한 뒤 파쇄기로 갈아 원심분리기를 돌려 알엔에이(RNA·리보헥산)를 추출하고,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사와 같은 방식의 유전자 증폭(PCR) 검사로 바이러스 유무를 확인 후 결과를 질본에 보고한다. 생태계는 인간이 미처 깨닫지 못한 미세한 기후변화를 제일 먼저 알아채는데, 이곳이 그런 생태계의 변화를 감시하는 ‘기후변화와의 최전선’인 셈이다.
지난 8일 고신대학교 보건환경학부 이동규 교수가 학교 실험실에서 채집한 모기의 몸 속 바이러스를 확인하는 실험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8일 고신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동규 교수는 “바이러스를 가진 흰줄숲모기 성충은 알이나 유충과 달리 겨울을 나지 못하고 죽지만, 기후가 바뀌어 성충이 월동할 수 있게 되면 이들이 옮기는 감염병이 토착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흰줄숲모기는 뎅기열·황열·지카바이러스·웨스트나일바이러스 등을 옮기는 모기로 주로 아열대 지역에 서식한다. 질본 통계를 보면 지난해 제주 지역에서 채집된 흰줄숲모기 성충은 1015마리(전체 모기 중 21.4%), 부산·경남 지역은 952마리(6.4%)였다. 2014년 제주, 2017년 경남에서 채집된 모기도 약 30%가 흰줄숲모기였다.
기후변화로 우리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는 감염병은 모기나 진드기 등 매개체를 통한 감염병이다. 모기나 진드기는 몸속 체온 조절 기능이 없기 때문에 기온이 오르면 몸속 화학반응이 빨라져 성장 속도도 빨라진다. 이 경우 각 개체의 생존 기간은 짧아지지만, 전체 개체 수가 늘기 때문에 바이러스 확산 가능성도 커진다. 기후변화로 홍수, 태풍 등이 발생하면 설치류의 배설물에 포함된 바이러스가 오염된 물을 통해 장거리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바다의 온도와 염분의 변화로 비브리오균 등 독소가 증가할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7년 말 펴낸 ‘기후변화에 따라 수요증가가 예상되는 의약품 및 대응체계 조사 연구’ 보고서를 보면 매개체 감염병은 2010년 시·군·구 평균 17명에서 2030년 131명, 2050년에는 293명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수인성 및 식품매개 감염병은 2010년 시·군·구 평균 1604명에서 2030년 1838명, 2050년 4070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인구밀집도가 높은 도시지역에서 매개체 감염병의 증가율이 높았다.
기후변화가 지속되면 온대기후인 한국도 남부 지방부터 열대 감염병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흰줄숲모기 등이 옮기는 뎅기열은 이 바이러스를 가진 모기에 물릴 때 감염되는 대표적인 열대병으로, 동남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 등 아열대·열대 기후 지역에서 주로 발생한다. 근육통·관절통 등 통증과 함께 고열과 발진이 일어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은 겨울철 평균 기온이 10℃ 이상인 지역의 뎅기열 감염을 우려하는데, 올해 부산의 1월 평균 기온이 6.4℃, 제주 8.9℃였지만, 기상청 기후정보포털 미래 기후전망 분석 결과 2040년 제주 남부 해안의 겨울철 평균 기온은 10℃에 닿는다. 국내 뎅기열 환자들(지난해 274명)은 아직까지 모두 외국에서 모기에 물려 감염됐지만, 조만간 국내 발병 사례가 나올지 모른다. 지난해 7월 인천 영종도 을왕산에선 뎅기열 바이러스가 확인된 반점날개집모기 2마리가 발견됐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구보건학부의 이정석 박사(현 국제백신연구소 소속)는 지난해 한국의 부산광역시 동래·연제·부산진·수영·해운대구와 울산광역시 서부, 전라북도 군산, 전라남도 무안 남부, 제주도 북부와 남부를 뎅기열 위험 지역으로 꼽았다. 과학·의학 저널과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는 바이오메드센트럴(BMC Public Health)에 발표한 ‘뎅기열 비위험국에 대한 기후변화의 위협―기후학적, 비기후학적 데이터를 이용한 뎅기열 고위험지역 분석’ 논문에서다. 한반도보다 기온이 높고 습한 일본 도쿄에서 2014년 여름 161명이 뎅기열에 걸린 이유로 이 박사는 “따뜻하고 습한 겨울과 비가 적게 내린 봄철 날씨가 모기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분석하면서, 유사한 기후인 한국도 주의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 박사는 <한겨레>와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정확히 언제 확산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한국 역시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며 “뎅기열 같은 모기 매개체 감염병은 꾸준히 일어났던 이상기후 변동이 축적돼 폭발하는 것으로, 매개체 관리에 철저한 싱가포르 같은 국가에서도 통제가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엘니뇨(적도 부근 중앙·동태평양 해수 온도가 높은 상태로 유지되는 것)와 라니냐(중앙·동태평양의 해수 온도가 낮은 상태로 유지되는 것)가 지카바이러스와 웨스트나일열 등 모기 매개 감염병에 미치는 영향도 확인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5~2016년 슈퍼 엘니뇨 발생이 예보되자 남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지카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을 우려한 바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말라리아 환자가 밀집한 서울·경기·인천·강원 지역에서 기온이 1℃ 오르면 말라리아 발생 위험이 10~20% 증가한다고 2014년 예측했다. 또 같은 기관은 2009년 기온이 1℃ 오르면 쯔쯔가무시병(5.9%), 렙토스피로스증(4%), 말라리아(3.4%), 장염 비브리오(3.3%), 세균성 이질(1.8%) 등 진드기·모기 매개 감염병과 수인성 감염병이 증가한다고 예측했다.
지난 8일 조세훈 고신대학교 기후변화 매개체 감시거점센터 연구원이 부산 을숙도 생태공원에 설치된 흰줄숲모기 트랩에서 모기를 채집하고 있다.
국내외 보건기구가 기후변화로 인한 매개체 감염병의 폭발적 증가를 수차례 경고해왔지만, 한국 정부는 기후변화 대책보다는 백신 개발 논의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는 한 감염병으로 인한 고통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환경부·기상청이 올해 발표할 ‘2020 기후변화보고서’ 보건 부문 작성에 참여한 이근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매개체 감염병 중 황열과 일본뇌염 외에는 효과적인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 바이러스 유형이 복잡해 백신 개발이 어렵기 때문”이라며 “모기·진드기 같은 매개체 수를 줄이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는 질병이기에 결국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말라리아의 경우 살충제 등 강력한 방역작업으로 2000년대 초반보다 감염자 수가 줄어, 최근 수년째 연간 500여명 수준으로 유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