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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LG화학 인도 가스누출 피해 주민 “잠든 새벽 맨몸으로 대피…경보도 안 울렸다”

등록 2020-05-15 17:40수정 2020-05-15 22:16

15일 피해주민 등 참여한 온라인 기자회견
엘지화학의 인도폴리머스인디아 공장 가스 누출 사건 피해 주민인 나그 아더티씨가 15일 오후 한국의 환경단체인 환경보건센터가 마련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화면 제공
엘지화학의 인도폴리머스인디아 공장 가스 누출 사건 피해 주민인 나그 아더티씨가 15일 오후 한국의 환경단체인 환경보건센터가 마련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화면 제공

지난 7일 수백여명의 사상자가 나온 엘지화학 인도 공장의 가스누출 사고와 관련해, “피해 당시 알람이 울리지 않아 새벽에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인도의 시민사회단체는 엘지화학과 한국·인도 정부의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이번 사건을 1984년 보팔 참사와 닮은 산업재해이자 화학산업으로 인한 인권침해로 규정했다.

15일 오후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사건 피해주민, 인도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증언하는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고가 발생한 공장으로부터 3.5㎞떨어진 곳에 살았다는 나그 아더티씨는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아더티씨는 “(7일) 새벽 1시15분께 공장 사람들이 누설을 알아차렸다. 새벽 2시가 되자 공식적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아무런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새벽 4시부터 대피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은 잠들어 있었는데 가스 냄새를 맡고 대피했다. 눈이 타는 듯 아팠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건강한 사람들도 바닥에 쓰러졌다”고 말했다. 이어 아더티씨는 “심각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공장 반경 1~3㎞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틀이 지나 또 한차례 가스 누출이 있어서 또다시 대피를 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공장에서 가스 누출 사고가 날 경우 공장이 지방자치단체나 소방에 연락해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경고 문자를 보내게 되어있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어떤 이유로 주민 대피 알림이 없었던 건지 알려지지 않았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보팔 참사 생존자인 라크나 딩그라도 참여해 이번 사건이 보팔 참사와는 달라야 한다고 강력하게 강조했다. 딩그라씨는 “보팔이 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인명피해를 일으킨 범죄행위가 제대로 규명되어야 한다”며 “보팔에서는 범죄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충분한 증거가 수집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망자 2만명 이상의 참사가 교통사고처럼 처리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최악의 산업재해로 기록돼있는 보팔 참사는 사망자 2만여명을 포함해 약 55만여명이 피해를 입은 최악의 산업재해다. 1984년 12월3일 인도 보팔에서 미국 기업인 유니온카바이드사(다우케미칼에 인수)의 살충제 제조 공장에서 유해화학물질인 아이소사이안화메틸이 누출됐다. 그러나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하지 않아 피해자들의 고통은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이날 인도 직업환경보건네트워크(OEHNI)의 자그디쉬 파텔 코디네이터는 “아무리 경제적 보상을 한다고 해도 각 가족이 입은 손실을 만회할 수 없다”며 “엘지화학은 환경 관련 법령을 지키는 데 무관심했고, 아무런 제재없이 20년 이상 운영해왔다. 인도 정부에 ‘일하기 쉬운 산업’을 포기할 것을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또다른 환경단체 ‘아시아 직업 환경 피해자 네트워크’(ANROEV)의 람 차리트라 사씨는 ‘구호 활동 지원, 주민들의 장기적 건강보장, 사고 이유의 철저한 조사, 가스 누출 책임자 처벌, 안전시스템 강화’ 등을 촉구했다.

‘안로예프’의 람 차리트라 사씨가 15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마련한 엘지화학 인도 공장 가스 누출 사고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영상 화면 갈무리.
‘안로예프’의 람 차리트라 사씨가 15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마련한 엘지화학 인도 공장 가스 누출 사고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영상 화면 갈무리.

엘지폴리머스인디아 공장(인도 동부 안드라프라데시주의 해안 도시 비샤카파트남)의 7일 가스누출 사고로 현재까지 12명이 숨지고 최소 300여명의 주민들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받고 있는 주민들 중 11명은 호흡기에 의존해 숨을 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고로 공장 인근 3㎞ 안 주민들이 두통과 눈이 타는 듯한 고통,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보였고, 인도 정부는 이 지역 주민 3천여명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인도 정부는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인도 현지 경찰이 엘지 폴리머스를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인도 정부는 남은 원료 1만3천여톤 전량을 한국으로 가져가라고 통보했다. 또 인도환경재판소는 사고 관련해 5억루피(약 81억원)를 공탁하라고 명령하고 조사위원회를 꾸렸다. 공장 쪽이 설비 확장 승인이 나기 전에 공장을 가동해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유엔인권이사회도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하고 철저한 조사를 당부했다. 전날 유엔인권이사회는 이번 사건을 보팔 참사에 이은 산업재해이자 플라스틱 소비와 생산이 부른 인권침해 사례라고 지적했다. 바스쿠트 툰카크 특별조사관은 “살인 혐의를 포함한 인도 당국의 경찰 수사를 환영한다”며 “산업계가 인권 피해 상황을 정확히 확인하고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 보팔 참사 희생자에게 정의롭지 못했던 실수를 인도와 한국 정부, 그리고 엘지화학이 반복하지 않을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엘지화학은 지난 13일 현장지원단을 급파해 사고를 수습 중이다. 200여명 규모의 피해 지원 전담 조직을 꾸려 피해자들에 대한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약속했다. 주민 건강과 환경영향 조사를 실시하고 중장기 사회공헌활동을 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한국 쪽 전문가로 기자회견에 참여한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사람이 죽을 만큼 고농도의 유독가스가 배출됐다. 과거 독일과 일본의 석면 기업이 한국에서 기준을 안 지키고 운영을 해서 문제가 됐는데 이제는 한국이 가해자가 된 것”이라며 “피해 주민들은 큰 장애를 입고 계속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계속 피해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이 있는데 엘지화학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고 장애를 입은 사람들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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