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은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방역의 성공 모델을 만들어낸 한국에 대한 세계인의 찬사가 끊이지 않는다. 국민 모두 국격이 부쩍 높아졌다는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하지만 인류 앞에 놓인 또 다른 위협인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한국의 국격은 여전히 바닥이다. 말과 행동이 달랐던 탓이다.
한국 정부는 그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잇는 다리가 되겠다고 했다. 2009년엔 저탄소 녹색성장으로 기후변화 대응 선도국이 되겠다는 선언도 했다. 말뿐이었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그 뒤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증가율 1위를 기록하며 2010년 6억5760만t에서 2017년 7억910만t으로 늘었다. 유엔 권고를 무시한 채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탄발전소를 계속 지으면서 개도국에 석탄발전 수출을 중단하라는 요구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빠져나갔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기후 악당’으로 꼽히는 이유다. 함께 매를 맞던 일본마저 최근 석탄발전 수출을 중단할 움직임을 보여 이대로 가다간 한국은 오이시디 국가 가운데 유일한 석탄발전 수출국으로 더욱 악명을 떨치게 될 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인간 안보를 중심에 놓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국제협력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선언한 대목에 특별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런 주변 상황 때문이다. ‘인간 안보’는 군사 안보를 넘어 인간의 일상적 삶과 존엄을 위협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1994년 인간개발보고서’에서 처음 이 개념을 소개하며 식량, 건강 등과 함께 환경을 인간 안보의 7가지 하위 범주의 하나로 제시했다.
인류가 함께 해결해야 할 지구촌 최대 환경 문제가 기후변화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기후변화는 식량, 건강, 경제까지 좌우해 인간 안보의 하위 범주를 넘어 인간 안보 그 자체라고 할 만하다. 이것은 지구촌의 각계 지도자들이 해마다 모이는 다보스포럼에서 기후변화가 몇 년째 인류에게 닥친 최대 위험으로 지목돼 온 것으로도 방증된다.
문 대통령이 연설에서 인간 안보의 대상으로 기후변화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러 인간 안보 위협 요인 가운데 재난, 질병과 함께 환경 문제를 특별히 언급한 의미를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국외 언론들도 주시하는 대통령 연설문에 환경 문제가 포함된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청와대의 참모진과 관련 부처들엔 인간 안보를 위한 국제협력 선도국이 되겠다는 대통령의 선언을 실현할 로드맵을 짜는 숙제가 안겨졌다. 그 지도가 어떻게 그려지든 출발점은 죽음의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함께 파는 석탄발전 수출 중단이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 악당’과 ‘인간 안보 선도국’이 함께 갈 수는 없다. 한국전력에서 곧 있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국외 석탄발전 투자 여부 최종 결정이 주목되는 이유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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