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북한강 자전거길을 달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 이 전 대통령 페이스북 갈무리
4대강 사업의 공공연한 비밀이 벗겨졌다. 낙동강이 최소수심 6m로 준설되고, 활용할 계획도 없이 4대강에 8억t의 물을 가둔 대형 보 16개가 건설된 것이 결국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였음이 감사원 감사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이 전 대통령을 직접 지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감사원은 2013년 7월 ‘4대강 살리기 사업 설계·시공 일괄입찰 등 주요계약 집행실태’ 감사 결과 발표 때 4대강 사업이 “추후 운하 추진을 염두에 두고”, “대통령실 요청 등에 따라” 결정된 것이라고만 밝혔다.
감사원이 4일 공개한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실태 점검 및 성과분석’ 감사 보고서에는 이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시작부터 진두지휘한 상황이 잘 드러난다. 4대강 사업은, 여론에 밀려 2008년 6월 대운하 사업 중단을 선언한 이 전 대통령이 두달 뒤 정종환 당시 국토해양부 장관에게 하천정비사업 추진을 지시하면서 시작됐다. 감사원은 이에 따라 국토부로부터 제방 보강과 준설로 홍수를 방지하는 사업계획을 보고받은 이 전 대통령이 보 설치와 인수위 당시 한반도대운하 티에프(TF)에서 나온 자료를 계획에 반영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국토부가 2009년 2월 중순 최소수심 2.5~3m면 홍수예방이나 물 부족 대처에 충분하다고 보고하자 수심을 4~5m로 하라고 직접 지시했으며, 4월 중순께에는 낙동강의 최소수심을 6m로 하라는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고 밝혔다. 최소수심 6m는 한반도대운하 티에프에서 만든 ‘대운하안’의 운하 수심 6.1m와 거의 같다. 이런 지시에 따라 국토부의 기술적 분석도 없이 6월 4대강 사업 계획이 최종 발표됐다.
국토부가 애초 2010년 1월 착공해 2012년 완공하려던 계획을 바꿔 완공을 1년 앞당긴 것과, 환경부가 통상 5~10개월 걸리는 사전환경성검토와 환경영향평가 기간을 2~3개월로 단축한 것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게 감사원의 결론이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에서 이 전 대통령이 왜 그런 지시를 했는지 직접 듣고자 했으나, 방문이나 질문서 수령 등 협조를 하지 않아 사유나 근거를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 전 대통령의 이런 지시가 위법하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어 법적 책임 추궁까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남궁기정 국토해양감사국장은 이날 결과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직무행위는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고, 대통령의 위법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감사에) 협조 안 했다는 이유로 고발 조치를 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적 책임 추궁과 별도로 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게 됐다.
‘4대강 재자연화 시민위원회’는 논평에서 “4대강 사업은 대통령, 청와대, 국토부, 환경부, 한국수자원공사, 기획재정부 등 국가가 총동원해서 국토를 유린한 사변”이라며 “4대강 사업의 궁극적 책임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을 즉각 조사해 법에 따라 처벌하고, 당시 직무를 유기하거나 잘못을 방조한 공무원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비서실은 입장문을 내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맛에 따라 반복되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치적 감사는 중지되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노지원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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