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내 한 양계농장에서 산란계들이 구덩이를 파서 흙목욕을 하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조아농장 제공
흙목욕을 한 닭이 좁은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닭보다 진드기 피해를 훨씬 덜 입는다는 점이 비교 실험을 통해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닭이 흙에 몸을 비비는 자연행동을 할 수 있도록 외부에 방사해 키우는 동물복지형 산란계 사육 방식의 강점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영국왕립곤충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저널 <의료 및 수의 곤충학>(2012년)에 따르면,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곤충학부 브래들리 멀런스 교수팀은 2009~2010년 15주씩 3번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0.1㎡ 케이지에서 사는 닭 12마리와 11㎡ 사육장에 풀어두고 흙목욕을 할 수 있게 한 닭 12마리의 몸에 사는 진드기 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했다. 각 케이지에는 두마리씩 집어넣었다. 실험에 사용된 케이지는 현재 국내에서 사용 중인 케이지보다는 큰 것이다. 풀어둔 닭은 한 방에 12마리씩 두 방으로 나눠 시기를 달리해 흙목욕을 시켰다. 닭들이 흙목욕을 할 수 있는 기간은 4주로 제한했다.
연구진은 닭 한마리당 진드기 20~30마리씩을 날개 쪽에 넣어줬다. 세차례 실험을 진행하는 동안 규조토(바다나 호수 밑의 흙), 고령토, 유황 등 흙의 성분을 조금씩 달리해줬다.
실험 결과 흙목욕을 한 닭은 일주일 만에 진드기의 80~100%가 줄었다. 4주 동안 진드기 수가 급감하면서 5~6이던 수치가 0~3으로 떨어졌다. 수치가 높아질수록 진드기의 밀도가 높다는 의미다. 다른 방에 있던 또 다른 닭들을 대상으로 흙목욕을 하는 시기를 이전과 달리해도 결과는 같았다. 하지만 케이지에 있던 닭은 0~2였던 진드기 수치가 8~9주차 때부터 5~6으로 올라 꾸준히 유지됐다. 특히 유황이 들어 있는 흙이 효과가 가장 좋았다.
실제 국내에서 닭을 풀어놓고 키우는 동물복지형 양계농가들은 흙목욕의 효과를 체험하고 있다. 흙목욕 덕분에 진드기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300여평 계사에서 닭 3500여마리를 키우는 제주의 한 양계농가는 살충제는 물론 백신도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농장주는 “마당을 만들어주니 닭들이 땅을 파서 안에 들어가 흙을 끼얹고 뒹군다. 여름에는 땅 밑이 시원해서 땅을 파서 더위도 식히고 진드기가 있으면 털어낸다. 흙목욕을 할 때 보면 깃털 사이로 흙을 끼얹어 털어낸다”고 말했다.
경남 합천과 하동에서 각각 1만마리 이상의 닭을 자연방사형으로 키우는 정아무개(55)씨는 지난해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을 때 당국의 지침에 따라 닭을 실내에서 키웠다가 큰일 날 뻔한 경험을 토로했다. 정씨는 “당국에서 닭을 방사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려보내, 한달 정도 실내에 있게 했더니 없던 진드기가 생겼다”며 “진드기를 없애야 닭이 사니 방사해버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장식 밀집·속성 축산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이번과 같은 사태는 언제든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 관계자는 “아시아든 유럽이든 진드기 문제는 항상 있어왔다. 국내 기후가 아열대화하면서 이전보다 습도가 높아지면 진드기도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는 수요 충당을 위한 밀집사육 시스템이 닭에 기생해 사는 닭진드기와 닭 사이에 이뤄져온 자연적 공생 관계의 균형을 깨뜨려버렸음을 드러내준다. 살충제라는 인위적 수단으로 깨진 균형을 복원하려다 ‘살충제 달걀’이라는 ‘금기의 식품’을 탄생시킨 셈이다.
최우리 허호준 기자, 임세연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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