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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무안 해변의 원시적 정취 다시 볼 생각에 가슴 뛰어”

등록 2017-02-16 13:45수정 2017-02-16 14:19

[짬]세번째 국토대장정 이흥기씨
2007, 2012년 전국 해안길 걷기
‘11일부터 10월말’ 7천km 또 도전중
돈 떨어지면 공사장 노동으로 충당

하루 300컷 사진 ‘환경 변화’ 증언
“삼척 용화해수욕장 모래 절반뿐
후손에게 깨끗한 국토 물려줘야”
그는 걷는 것이 무섭다고 했다. 시작하기가 겁난다고도 했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도중에 포기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게 걷는 것은 건강을 위한 몸짓이 아니다. 한번 시작하면 무려 7000㎞를 내쳐 걷는다. 200일 가까이 계속 걷는다. 30㎏짜리 무겁고 큰 배낭을 지고 걷는다. 걷는 동안 잠자리는 대부분 길거리 야영이다. 혼자 걷는다. 이번이 세번째다. 곰처럼 우직하게 걷는다. 그래서 별명이 ‘대한민국 곰’인 그는 지금 한반도 해안가를 걷고 있다. 지난 11일 강화에서 시작해 10월 말까지 서해안, 남해안을 돌아 동해안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 그는 우리 해안길을 꼼꼼히 걷는다. 제주도와 마라도, 울릉도, 독도 등 16개 섬도 그가 걷는 길에 포함된다. 왜 그런 ‘미련하고도 힘든 걷기’를 할까?

이흥기(54·사진)씨는 하루 평균 30㎞를 걷는다. 해가 뜨면 일어나 해 질 때까지, 걷다가 멈추는 곳이 고된 몸을 쉬는 잠자리이다. 식사는 대부분 길거리에서 해 먹는다. 당뇨병이 있어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걷기 시작해 20일쯤이 고비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걸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나요. 몸도 마음도 지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고비를 넘기면 쉽게 걸어요.”

걷는 동안 겪게 되는 육체적 아픔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한번은 한쪽 새끼발가락이 신발에 쓸려 뼈가 보이도록 살갗이 까졌어요.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지독한 고통으로 괴로웠어요. 그래서 ‘나는 새끼발가락이 없다’고 되뇌며 걷다 보니 아픔이 사라졌어요. 신기했어요.”

그는 2007년에 113일(4500㎞), 2012년 196일(7000㎞) 동안 도보 대장정을 펼쳤다. 올해는 250일을 예상하고 있다. 그는 5년마다 이렇게 특별한 걷기를 한다.

1만2000㎞의 중국 실크로드를 걷고 <나는 걷는다>라는 책을 써 세계적으로 걷기 선풍을 일으켰던 프랑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나처럼 특별한 재능 없고 소심한 사람도 실크로드를 걸었으니 누구나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씨가 5년마다 걷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연과 사람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찾고 싶었어요. 5년마다 똑같은 길을 걸으며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확인하고 있어요.” 걸으면서 해안가 사진을 찍는다. 하루 300컷 정도 찍는다. 그래서 달라진 국토의 모습을 생생히 기록하고 증언하려고 한다.

“지난 2012년 전남 무안군의 한 해변을 지날 때 그곳이 가장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해안가에 고목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어요. 아직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지 궁금해요.” 출발 하루 전날인 지난 10일 한강 둔치에서 만난 이씨는 그 해안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고 했다.

하지만 해안에 다다르면 자연 파괴에 대한 실망, 인간의 욕심이 주는 허탈감에 직면한다. “자연경관이 빼어났던 통영의 한 작은 마을은 주변에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아예 없어졌어요. 아름답던 해안가 도로는 아스팔트로 바뀌고, 인간은 자연을 자신들의 이기심을 위해 마구 파괴해도 된다고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는 삼척 용화해수욕장의 모래가 5년 만에 절반으로 줄어든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한다. 이 사진들을 전시하려 한다. 같은 장소가 5년을 주기로 어떻게 변했는지 한눈에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는 중학교 중퇴 학력이다. 비교적 거칠게 살았다. 그는 철근 기술자다. 평소 건설 현장에서 일당을 받고 일한다. 하지만 틈나는 대로 환경보호 활동을 한다.

1999년에는 동강 살리기 운동에 참여해 동강에서 한강 여의도까지 고무보트를 타고 오기도 했고,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걷기도 했다. 2003년부터는 해마다 초등학생들과 5대 강 발원지를 탐사하는 환경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가 모는 트럭에 딱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부화하는 모습을 본 뒤부터였다.

그의 한 친구는 그가 걷는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와 삼겹살을 사주며 영양 보충을 시켜준다. 다른 친구는 밑반찬을 공급한다. 일주일 걸으면 하루는 쉰다. 쉬는 동안 빨래를 한다. 날마다 걷는 모습을 인터넷 카페에 올린다. 그동안 모아둔 경비가 떨어지면 인근 공사장에 가서 돈을 벌어 계속 걸을 참이다.

걷기 4일 차인 지난 14일 그는 다음카페(자연을 사랑하는 곰이야기)에 인천 연안여객터미널 주변에 방치된 쓰레기 사진을 올렸다. “우리 자손에게 아름답고 깨끗한 국토를 물려주고 싶어요. 그래서 걷고 또 걸어요.”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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