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독일 최북단의 질트섬에서 관광객들이 와덴해 갯벌 체험에 앞서 방문자센터의 자원봉사자(가장 오른쪽)에게 이곳 생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질트는 독일 최북단의 섬이다. 10월이면 ‘질트 장미’라고도 불리는 해당화가 새콤한 열매를 잔뜩 맺는다. 그 사이를 쐐기풀나비가 한가롭게 날아다닌다. 숲멧토끼와 노루가 겨울을 대비하고 바닷가에는 수천㎞를 날아온 붉은부리갈매기나 북극제비갈매기와 같은 철새들이 둥지를 튼다. 이들은 겨울이 닥쳐오면 다시 아프리카를 향해 수만㎞의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질트는 2500종의 동물과 150종의 식물들이 공존하는 보금자리다. 동시에 총면적 1만㎢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갯벌 지대 ‘와덴해’의 일부를 구성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10일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질트섬 중간에 자리한 방문자센터, ‘보전공동체 질트’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선 낮 12시께에는 마침 ‘카셀 코메니우스’ 고등학교 한 반의 학생 20여명이 센터를 찾아 한창 토론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카셀은 차로 8시간가량 걸리는 독일 중부에 있는 도시인데, 이곳 학생들이 자연보전에 대한 현장학습을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다. 안내를 맡아 기자와 동행한 ‘와덴해보호협회’의 라이너 보르허딩 활동가는 “매일 한 팀 이상 이런 센터를 방문하고 휴가철인 여름에는 방문 팀이 2~3배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와덴해보호협회는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정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주에 속한 갯벌을 보전·관리하고 방문자센터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시민들이 일군 과학과 관광
센터의 자원봉사자 요하네스(19)는 학생과 선생들에게 갯벌 주변의 동식물과 그들의 가치에 관해 설명했다. 학생들은 이를 바탕으로 갯벌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에 관해 토론을 이어갔다. 토론 뒤에는 센터에 갖춰진 전시관을 통해 이해를 넓혔다. 전시관에는 질트 주변 갯벌뿐 아니라 흥미로운 지형, 위기에 처하거나 질트에 고유한 중요한 동식물들, 질트를 중요한 기착지로 머무는 철새들의 이동 경로와 같은 다양한 과학적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코메니우스 고등학교의 루드로프트(15)군은 “질트에 어떤 동물들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 가는지 알게 되어 매우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인솔 교사인 라인하르트 키도스 선생은 “와덴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가치를 배우기 위한 최적의 장소로서 학교들이 즐겨 탐방한다”고 말했다. 이후 이들은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갯벌 체험을 위해 바닷가로 향했다.
북해와 유럽 대륙이 맞닿는 연안과 딸린 갯벌 등을 의미하는 와덴해는 독일뿐 아니라 네덜란드, 덴마크 등 세 나라에 걸쳐 있다. 3국 와덴해 공동위원회(CWSS) 집계를 보면, 하루 일정으로 와덴해를 찾는 방문객은 매년 7000만~9000만명이 되고, 묵고 가는 관광객도 5000만명 규모로 나타난다. 이들을 통해 창출되는 관광과 연관 산업의 경제적 효과는 최소 30억유로(약 3조7000억원)에서 최대 50억유로(약 6조2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방문자들이 와덴해와 만나는 관문 역할을 하는 것이 3국 전역에 위치한 60개의 방문자센터다. 보전공동체 질트도 이런 방문자센터 가운데 하나다.
와덴해 갯벌에서 머무르고 있는 북극 철새의 모습. 독일 세계자연기금(WWF) 제공
와덴해 방문자들의 역할은 단지 수동적으로 지식을 듣고 자연경관을 즐기는 관광객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오후에는 질트섬 북부에 자리한 ‘자연의 힘 질트’ 방문자센터를 찾았다. 단층에 한 칸의 소박한 전시관을 둔 보전공동체 질트와 달리 자연의 힘 질트 센터는 3층 건물에 기후, 환경, 생물 등 주제별 시설들을 따로 갖춘 상당한 규모의 시설이었다. 이곳 한쪽에는 돌고래를 비롯해 다양한 생물 종들의 발견 지역을 표시한 지도와 모니터 등이 설치된 한 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보르허딩 활동가는 “이곳이 시민참여과학 연구의 성과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전시물”이라고 소개했다.
이 전시관에 표시된 자료는 시민의 참여와 기여 덕에 수집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보르허딩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열어 직접 보여주면서 방법을 설명했다. 와덴해보호협회는 지난해 초 ‘해변탐험가’(
사진)라는 앱을 새롭게 선보였다. 이 앱은 해변을 탐험하면서 발견하는 동식물들이 무엇인지 방문자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약 1500종의 사진과 설명을 탑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뿐 아니라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새로운 생물을 발견했을 경우 즉석에서 사진으로 찍어서 보고할 수 있는 기능도 갖췄다. 이렇게 보고된 종들은 전문 연구자들이 이미 보고된 종인지 새로운 종인지 검토하는 작업을 거치게 된다. 보르허딩은 “이런 자료는 전시관에서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서버에 기록돼 이후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쓰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10월 현재 데이터베이스에는 총 2103개의 생물 종이 올라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앱은 갯벌에 있는 쓰레기나 유해한 물건들을 보고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오염물질들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올리면 보호협회에서 빠르게 적절한 조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보호협회는 이 앱을 지역주민들에게도 홍보해 쓰레기 보고용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촘촘한 환경 감시망을 짜는 데도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2년이 채 못 되는 시간 동안 820명의 사용자가 해변탐험가 앱을 활용해 1만4118개의 발견물을 보고했다.
세계 최대 갯벌을 지키는 건
자원봉사자 그리고 스마트폰
동식물, 환경오염 발견하면
스마트폰 앱에 기록하고
전문연구 기초 데이터 활용
생태 기록, 연구에도 활용돼
비전문가의 활약은 자원봉사자 영역에서도 두드러진다. 11일 방문한 인근 관광도시 장크트페터오르딩의 방문자센터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리아(20)는 ‘가장 좋아하는 활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방문자 안내도 좋아하지만 새와 해양동물의 관찰을 위해 밖으로 나갈 때 무척 즐겁다”고 말했다. 일부 관찰은 단순히 폰카로 사진을 찍는 것 이상의 소양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철새의 개체 수를 헤아리는 것은 이들의 생태를 기록하고 보전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에 훈련받은 인력의 체계적인 기록이 필요하다. 센터의 자원봉사자들은 임무를 맡기에 앞서 이런 관찰 훈련을 미리 받는다. 그리고 2주에 한 번꼴로 바다 수위가 가장 높아 새들이 내륙으로 가장 몰려 있는 시기마다 야외로 나가 개체 수를 기록하는 작업을 벌인다. 이 자료 역시 전문 연구자의 귀중한 연구자료로 쓰이게 된다.
요하네스나 리아와 같이 와덴해보호협회에 속한 자원봉사자는 모두 100명가량인데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앞둔 젊은이들이다. 과거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모든 젊은이가 군대에 가는 징병제를 실시했는데, 우리나라와 달리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것도 인정할 정도로 대체 복무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지금은 모병제로 바뀌었지만 젊은이들이 소외계층 지원이나 환경보전과 같은 자원봉사 활동을 벌이는 전통은 남아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데, 이런 비전문가의 활동은 와덴해 보전과 시민참여 과학 연구에 중요한 기둥 구실을 하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WF) 독일 와덴해 지부의 한스울리히 뢰스너 대표는 “이 지역은 수백 년 동안 바다에서 밀어닥치는 파도에 의해 농지가 수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갯벌을 막고 둑을 건설한 개발 역사를 지닌 곳이다.
100년 전에야 환경 보호에 대한 생각이 싹트기 시작해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데 자원봉사자를 비롯해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을 끌어낸 활동들이 그 바탕에 있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