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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환경 걱정되세요? 대신 나서줄 단체 후원 어떤가요”

등록 2016-06-14 22:59수정 2016-06-15 11:27

[녹색삶] 환경단체 10년 회원들의 ‘밥상토크’
1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 녹색연합 사무실에서 활동가들이 준비한 점심 식사를 함께한 녹색연합 10년 회원들이 점심을 먹은 뒤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맨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활동가들이다.
1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 녹색연합 사무실에서 활동가들이 준비한 점심 식사를 함께한 녹색연합 10년 회원들이 점심을 먹은 뒤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맨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활동가들이다.
11일 점심때가 다가오면서 녹색연합 본부인 서울 성북구 성북동 호두나무집에서 고소한 냄새가 퍼져나갔다. 유경희 상임대표와 활동가들이 2층 주방에서 야채전을 부치면서 피워내는 냄새였다. 얼마 뒤 활동가들이 ‘태평양’이라 부르는 주방 옆 공동작업공간의 테이블들은 콩나물밥과 미역냉국, 떡, 야채전, 샐러드 등이 차려진 소박한 밥상으로 변했다.

이날 밥상은 녹색연합이 단체 활동을 후원한 지 올해로 만 10년이 된 회원들을 위해 차린 것이었다. 녹색연합 회원더하기팀 허승은 팀장은 “10년 동안 한 단체를 믿고 꾸준히 후원해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그래서 해마다 10년차 회원들에게 활동가들이 손편지와 양말 선물로 감사의 뜻을 전했는데, 올해는 여기에 더해 직접 밥을 지어 모시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세먼지 등 사회적 화두 떠올라도
환경단체 살림은 계속 위축

10년 후원 이어온 회원들 위해
녹색연합 활동가들 밥상 차렸다

평범한 우리 이웃 한우물 후원자들
“생태계 배려하는 염치 찾아야”

많은 사람들이 생태계와 조화로우면서도 안전한 환경에서 살기를 바라지만, 실제 이런 환경을 위해 행동을 나서기는 쉽지 않다. 전문지식이 부족한데다 일상에 쫓겨 따로 시간을 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자신과 지향이 맞는 환경단체를 선택해 후원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적인 선택일 수 있다. 환경단체들은 일반 기업체의 절반도 안 되는 10년차 기준 월 170만원 안팎의 저임금을 받으면서도 열정이 넘치는 활동가들과 국제적인 전문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환경에 대한 관심과 환경단체를 후원하는 것은 별개로 간주된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고농도 미세먼지, 유해화학물질 노출 등이 계속 논란이 되면서 최근 몇 년 동안 ‘환경’이 주요 사회적 화두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지만, 전국적 조직을 가진 양대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 회원 수는 최근 몇 년 사이 계속 감소해 왔다. 환경운동연합 중앙사무처 운영국이 집계한 전국 회원 수는 2011년 연말 기준 3만92명에서 2012년 2만9691명, 2013년 2만8157명, 2014년 2만7770명으로 계속 줄어 지난해 연말엔 2만4504명까지 내려갔다. 녹색연합이 누리집에 공개한 ‘살림살이 보고’ 자료를 보면, 녹색연합 본부 회원 수도 2014년 3월 현재 6015명에서 지난해 3월 5532명, 올해 3월 5250명으로 계속 줄었다.

회원 감소는 단체 운영·활동비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회비 수입 감소로 직결된다. 환경운동연합 누리집의 월별 재정상황 공개 자료를 보면, 지난 4월 한 달 이 단체 중앙사무처로 들어온 회비 5036만여원은 이 단체가 누리집에 월별 재정상황을 공개하기 시작한 2009년 이후 같은 달에 들어온 회비 수입규모 가운데 가장 적은 것이다. 녹색연합의 지난 3월 회비와 기부금 수입도 모두 6944만여원으로 2011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녹색연합 유경희 상임대표와 활동가들이 10년 회원들을 위해 직접 요리해 차려낸 점심 밥상.
녹색연합 유경희 상임대표와 활동가들이 10년 회원들을 위해 직접 요리해 차려낸 점심 밥상.

유경희 녹색연합 상임대표는 “시민운동은 사실 회원들 회비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그렇게 시민단체가 자립을 하려면 회원 수가 계속 확대돼야 하는데, 요즘 모두들 삶이 너무 어렵다 보니 단체 후원을 하는 것이 점점 쉽지 않은 일이 돼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에 아랑곳하지 않고 꼬박꼬박 회비를 보내오는 회원들은 환경단체들한테 단체를 떠받쳐주는 소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2006년 1월1일부터 12월31일 사이에 녹색연합 본부 회원으로 가입한 235명 가운데 아직까지 회원으로 남아 있는 107명도 그런 이들이다. 녹색연합 회원더하기팀의 조사 결과는 이들이 평균 나이 42.09세에, 회비로 매달 평균 1만3400원을 내왔다고 알려주고 있다. 현실 속의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녹색연합의 초대에 응해 이날 호두나무집을 찾은 이들은 인천에서 아내, 세 자녀와 함께 온 자동차 제조회사 직원, 신문사 지국장, 60대 후반의 영어 통·번역가, 어린이책 작가, 프리랜서 성우, 열차기관사, 고등학교 보건담당 교사, 가끔 봉사활동을 하는 전업주부 회원 2명, 그리고 엉겁결에 회원인 친구를 따라왔다는 공업고등학교 전기 과목 선생님 등 14명이었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이웃의 모습이지만 대다수가 외면하는 조금 특별한 선택을 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에게 비빌 언덕이 돼주는 이들을 맞는 활동가들이 표정에는 고마운 마음이 묻어났다. 10년 회원들은 그런 활동가들과 오래전부터 친구나 형제자매였던 듯 마음을 풀어놓았다.

프리랜서 성우로 일하는 신소윤(41)씨는 “지금은 일반 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과거 환경단체 활동가였던 인연으로 자동이체를 걸어놓고는 잊어버리고 살다 이번에 10년이 됐다는 연락까지 받았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활동을 계속하는 활동가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고맙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은 생각에 참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원에서 왔다는 주부 김희경(47)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직접 활동할 수 없어서 저를 대신해서 의미있게 활동해줄 단체라고 생각하고 후원을 시작했는데 10년까지 됐는지는 몰랐다”며 “열심히 일하시는 활동가분들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참석자들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이는 부인과 세 자녀까지 데리고 인천에서 온 신용남(43)씨였다.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그는 대기환경 보전에 작은 도움이 되려는 생각으로 결혼 전부터 녹색연합에 매달 1만원씩 후원금을 내왔다. 그러다 결혼하면서는 아내를 가입시키고, 자녀가 태어날 때마다 자녀를 회원으로 가입시켜 지금은 한 달에 가족 수대로 5만원씩의 후원회비를 내고 있다. 그는 “단군 이래 이렇게 살기 좋았던 적은 없을 텐데 우리는 아직까지 배고파하고, 개발하려고만 하고, 그러면서 모든 생명체 공동의 땅을 파괴하는 염치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며 “녹색은 염치”라고 말했다.

신문 지국장을 하는 친구의 권유로 이날 모임에 유일한 비회원으로 참석한 공업고교 전기 과목 교사 성낙은(59)씨는 모임이 끝나고 돌아가기 전 녹색연합 회원 가입 서류를 작성했다. 그는 “10년 회원인 친구가 함께 가자고 해 엉겁결에 쫓아왔다. 옛날에 부모님이 친구를 잘 사귀라 하셨는데, 여기 와서 보니 내가 정말 친구를 잘 사귄 것 같다”며 웃었다.

호두나무집과 같은 성북동에 사는 고등학교 보건교사 홍성아(49)씨는 회원이나 후원자로 가입한 단체가 녹색연합 말고도 8곳이 넘는다. 뇌성마비복지회, 참여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내셔널트러스트, 국경없는의사회, 유엔난민기구, 승가원, 노숙인 복지단체 등이 그가 머뭇머뭇하며 털어놓은 후원 단체들이다. 길거리에서 가입해 후원금을 보내고 있는 노숙인 복지단체는 정확한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단체들에 적게는 1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까지 다달이 자동이체하는 후원금은 한 달에 모두 20만원이 넘는다.

후원 단체가 무척 많은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여유롭지는 않지만 인연이 닿는 곳은 가능하면 도움을 드리고 싶고, 그렇다고 후원하던 곳을 중단할 수 없고 하다 보니 늘어났다. 좀 더 좋은 세상이 되게 하려면 여러 가지 세상일에 관심을 가져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런 일에 관심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과 단체를 위해 돈 일이만원 자동이체해 놓는 것이 제일 쉽고 편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날 호두나무집을 찾은 녹색연합 10년 회원들이 모두 홍씨처럼 ‘문어발’ 회원 가입과 후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녹색연합 이외에도 한두 단체 이상은 더 후원해오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유 대표는 “생각했던 만큼 많은 분들이 오시지 못한 점이 좀 아쉽지만 10년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는 활동가들이 있을 정도로 의미있는 자리가 돼서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가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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