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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악마의 대변자’로 미리 ‘살균’했다면

등록 2016-05-24 20:20

쉼과 깸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근래까지 어떤 사람을 성인으로 시성하기 전 그 사람이 과연 성인의 반열에 오를 만한지 엄밀히 조사했다. 성인 후보자들은 빈자들의 대부인 프란치스코나 교황 요한 23세처럼 평소 존경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조사자들이 우호적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 교황청은 이른바 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을 두었다.

데블스 애드버킷은 검증 과정에서 나쁜 의도를 가진 게 아닌가 할 정도로 후보자의 작은 결함이나 실수까지 들춰내다 보니 이름 그대로 악마의 대변자처럼 보이게 된다. 하지만 그 관문을 통과하게 되면 당사자는 만인의 존경을 받는 성인이 된다. 가톨릭교회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2천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데블스 애드버킷은 ‘남의 약점을 잡는 사람’, ‘고의적으로 반대를 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부정적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많은 국가나 조직에서 내부모순이나 사업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반대의견을 제시하거나 깐깐하게 따지는 역할을 맡기고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수직적 위계문화나 권위적 통치가 남아 있는 사회에서는 주류에 반대되는 의견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고 그런 제도를 두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공식적인 사망자만 239명, 심각한 폐질환 형태로 드러난 것이 최대 1528명에 이르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화학 참사다. 문제는 가습기 살균제라는 형태의 제품이 허가받고 출시된 것은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는 점이다. 가습기 살균제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은 외국에선 수영장이나 물탱크, 정화조를 청소하는 데 주로 쓰인다.

화학약품의 경우 용도가 바뀌면 인체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매우 까다롭게 검증받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기업 내부는 물론 정부 관계자조차 눈을 감았다. 게다가 검증을 담당한 국립대학의 교수는 거액의 돈을 받고 보고서를 제출한 혐의로 구속됐다. 치명적인 살균제 출시 과정에서 데블스 애드버킷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의미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유사한 것이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 침몰사건은 청와대를 비롯한 국가재난구조체계의 부재와 청해진해운이 조작한 계약서를 그대로 받아들여 세월호 개조를 인가한 ‘해피아’들의 부정비리, 해경의 늑장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특히 사건 당일 구조보다는 청와대 보고에만 매달린 해경의 모습을 보면 한국 사회의 절망적인 단면을 보게 한다.

백찬홍(씨알재단 운영위원)
백찬홍(씨알재단 운영위원)
아마도 대부분 구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노’(No)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4·13 총선에서 국민들이 일방적으로 국정운영을 했던 박근혜 정부를 심판했다는 것이다. 국민이 위대한 반대자 역할을 한 것인데, 그만큼 정치는 물론이고 모범을 보여야 할 종교 영역까지 부패한 한국 사회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악마의 대변자인지도 모른다.

백찬홍(씨알재단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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