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환경연대 ‘4대강 생명살림 100일 수행길’에 참가한 사람들이 지난달 27일 오전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금강 공주보 상류 강변을 지나고 있다. 맨 앞에 선 이가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법일 스님이다.
불교환경연대 ‘4대강 수행길’ 따라가보니
“살아있는 생명은 그 어떤 것이든,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거나, 길거나 크거나 중간이거나, 짧거나 작거나 거대하거나,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가깝거나 멀거나, 이미 있거나, 앞으로 태어날 이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달 27일 오전 10시 금강 공주보가 바라보이는 수상공연장 관람석 앞. 잔디밭에 둘러앉은 10여명의 ‘자애경’ 독경 소리가 금강변으로 퍼져나갔다.
이미 있거나 앞으로 태어날
중생들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자애경 읽고 서로 삼배하고
생명의 무덤 된 4대강을 걷는다 금강 공주보~석장리 구간엔
양식장에나 쓰는 산소공급장치
상하류 방향 표시하는 안내판
자연의 질서 붕괴된 인공 호수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비바람에도 늦추지 않는 걸음
금강 이어 낙동강, 한강까지
7월10일까지 100일의 발걸음 서로 삼배를 올린 이들은 강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법일 스님이 성큼성큼 앞장섰다. 불교환경연대가 기획한 ‘4대강 생명살림 100일 수행길’에 나선 ‘수행단’이었다.
4월3일 영산강 하굿둑을 출발한 수행단은 4월17일까지 140㎞ 남짓한 영산강 구간을 걷고, 19일부터 금강 구간 순례를 시작했다. 27일은 금강 하굿둑을 떠난 지 아흐레째 되는 날이다. 이날 수행길 참가자 가운데 스님 셋을 포함한 절반가량은 영산강 하굿둑부터 걸어왔다. 나머지 절반은 지역의 시민·환경운동가 등 하루 참가자들이다. 수상공연장에서 공주보를 건넌 뒤 쌍신공원과 하중도인 미르섬 옆을 지나 공주 석장리박물관 앞까지 약 12㎞ 구간을 걷는 것이 이날의 목표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이젠 여름철 녹조가 기승을 부릴 때 반짝할 뿐이다. 그것이 불교환경연대가 다시 4대강을 찾아나선 이유였다.
불교환경연대 유정길 운영위원장은 이날 출발에 앞서 참석자들에게 “앞으로 정권이 바뀌어 4대강 문제가 다시 언급될 수밖에 없을 상황에 대비해 현장을 살펴보고, 또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기여했던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수행단 단장인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법일 스님은 “자연의 질서를 파괴한 자본의 욕망을 욕하며 걸어오면서 결국 우리도 그에 편승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이번 순례길은 참회의 길이고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4대강 사업으로 자연의 질서가 파괴된 징표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날 순례를 시작한 수상공연장 앞 강물 위에는 연못이나 저수지 등에 주로 자라는 마름 잎이 곳곳에 떠 있었다. 귀퉁이에는 물고기 양식장에서나 쓰는 ‘마이크로버블기’가 돌아갔다. 물속에 미세한 기포를 공급해 용존산소를 늘리는 장치는 자연의 강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일행과 떨어져 따로 돌아본 백제큰다리 근처 전망대 위에는 공주시가 금강철교 방향이 상류임을 표시한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코앞의 강물을 내려다보면서도 어느 쪽이 상류이고 어느 쪽이 하류인지 옥신각신할 관광객들을 위한 이 ‘친절’은 금강이 더이상 강이 아니라는 인증인 셈이다.
수행단에 참여해 걷는 사람들에게 소감을 물었을 때 빠지지 않고 돌아온 대답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강의 원형을 잃어버린 것이 안타깝다”, “인간이 자신만 생각하고 너무 욕심을 많이 냈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고교 교사직에서 명예퇴직한 박병억(60)씨는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볼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 가보니 물은 흐르지 않고 생명이 죽어가는 강이 돼 있었다. 자라는 아이들이 강은 그런 것으로 인식하게 될 것 같은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하던 건축업을 잠시 접고 수행단에 참여한 전재하(58)씨는 “진짜 사람들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공간만 공원으로 꾸미고 나머지 공간은 그대로 두면서 주변 생물들과 어울려 살아야 되는데, 모든 강과 강변에 일괄적으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공주보를 건너 연미산 자락을 돌아 올라가면서 보이는 건너편은 금강8경의 하나로 꼽히는 고마나루솔밭이다. 국가명승지 제21호이기도 한 고마나루솔밭 앞의 너른 모래사장은 다 파헤쳐지고 물에 잠겨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됐다. 자전거길을 따라 걸어가다 잠깐씩 강가로 다가가 살펴볼 때마다 죽은 물고기 두세 마리는 금세 눈에 띄었다. 쌍신공원 앞 강가에서는 등딱지 길이만 25㎝가 넘는 대형 자라도 죽은 채 발견됐다. 구정물 색깔의 강물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나는 듯했다.
“엊그제 비가 많이 와서 좀 수질이 좋아진 상태인데도 그래요. 금강에서 모든 면에서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여기 공주보에서 상류 세종보까지의 구간인데, 여기서는 강바닥을 퍼올려 보면 수생태 4등급 오염지표종인 실지렁이, 깔따구 등이 사는 뻘만 올라오고 있어요.” 이번 수행 구간의 길잡이로 나선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얘기다. 2014년 6월 금강에서 큰빗이끼벌레를 처음 발견해 세상에 알린 그는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추적하고 기록하기 위해 1년에 300일을 금강에서 산다고 한다.
무성한 풀에 가려져 곧 보이지 않을 듯한 벤치, 깨어져 구멍이 난 보행자 데크, 흘러내린 토사와 풀에 뒤덮여 발을 들여놓을 엄두가 안 나는 계단, 강변 쪽 지반이 쓸려나가 붕괴될 위험이 있는 자전거도로. 수행단이 영산강 하굿둑부터 걸어오면서 익숙해진 풍경은 이날 수행 구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구간인데도 그랬다.
공주대교와 신공주대교 사이 자전거도로 구간에서는 보수를 했는데도 또 유실이 시작된 곳도 볼 수 있었다. 자전거도로를 보강하기 위해 새로 타설한 콘크리트에 다시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토공으로 마무리한 부분은 빗물에 깎여 낭떠러지가 돼 있었다. 수행단 부단장인 중현 스님은 “영산강 하굿둑에서부터 자전거도로를 지나오며 만나는 자전거를 일부러 세어봤는데, 도심에서 먼 구간을 걸을 때는 하루에 만나는 자전거가 10대 미만이었다. 이런 도로를 설치하고 유지·보수를 해나가는 것은 예산 낭비일 뿐”이라고 말했다.
수행단은 아침 9시에서 오후 4시까지 강변을 걷고, 인근 절로 이동해 숙박하고,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예불과 참선을 한 뒤 다시 전날 걸음을 멈췄던 곳으로 되돌아가 걷는 일정을 이어왔다. 출발할 때부터 시작된 비가 종일 이어진 27일에도 4시까지 걷는 계획은 어김없이 진행됐다. 강행군이지만 올해 일흔한살의 비구니인 행법 스님 때문에 누구도 감히 피곤하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4대강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 하고 해서 직접 눈으로 보려고” 수행단에 나섰다는 스님은 “어떻게 이처럼 온 강과 국토를 망가뜨리는 발상을 할 수 있었는지 걸어오는 내내 궁금했다. 사람들이 빨리 깨어나 강을 다시 자연으로 되돌리는 여론이 형성되면 좋겠다”고 했다.
오후 4시 마침내 목적지인 공주 석장리박물관 앞에 도착했다. 박물관 옆 정자에 올라 가부좌를 튼 수행단은 중현 스님이 내리치는 죽비 소리에 맞춰 눈을 감았다. 잠시 뒤 다시 ‘자애경’ 독송이 이어진다.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수행단은 1일 대청댐에 도착해 4대강 사업으로 죽었거나 죽어가는 생명들의 명복을 비는 천도재를 올리는 것으로 금강 구간 순례를 끝냈다. 순례는 낙동강 하굿둑~안동댐 구간, 한강 충주댐~팔당대교 구간까지 7월10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공주/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중생들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자애경 읽고 서로 삼배하고
생명의 무덤 된 4대강을 걷는다 금강 공주보~석장리 구간엔
양식장에나 쓰는 산소공급장치
상하류 방향 표시하는 안내판
자연의 질서 붕괴된 인공 호수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비바람에도 늦추지 않는 걸음
금강 이어 낙동강, 한강까지
7월10일까지 100일의 발걸음 서로 삼배를 올린 이들은 강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법일 스님이 성큼성큼 앞장섰다. 불교환경연대가 기획한 ‘4대강 생명살림 100일 수행길’에 나선 ‘수행단’이었다.
‘4대강 생명살림 100일 수행길’ 참가자들이 지난달 27일 오전 금강 공주보~석장리박물관 구간 도보 수행에 나서기 전 공주보 인근 수상공연장 앞 잔디밭에서 잠시 참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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