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을 흘러내리던 용암은 지류를 거슬러 올라 용암호를 이뤘다. 두껍게 쌓인 용암은 서서히 굳어 주상절리를 이뤘고 이후 침식이 진행되면서 폭포가 탄생했다.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의 재인폭포에는 이때 생긴 여러 층의 주상절리가 장관을 이룬다.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⑤연천권-현무암 협곡
심해저 화산에선 용암이 직접 물속으로 흘러든다. 시뻘건 용암은 울컥 쏟아져 나오자마자 찬 바닷물에 거죽이 식어 검은 현무암이 된다. 하지만 용암이 계속 밀려들면 어느 순간 검은 껍질이 파열되면서 붉은 용암이 쏟아져 나와 새로운 현무암 덩어리를 만든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단면이 둥글고 기다란 베개 모양의 현무암 덩어리가 줄줄이 쌓인다. 이런 베개용암은 하와이나 대서양 심해저의 해저화산에서 생긴다. 그러나 우리나라 하천에서 과거의 베개용암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경기도 포천시 장수면 신흥리의 한탄강 아우라지가 그곳이다.
북한 680고지·오리산 화산 2번 분출
철원 70m, 전곡 30m, 문산 3m 깊이로 강줄기 따라 110㎞ 느릿느릿 흘러
물길 메우고 지류로 역류 고문리엔 용암호가 만든 재인폭포 절경
차탄천엔 25m 높이 웅장한 절벽 포천 영평천 합류 아우라지엔
치약을 꾸역꾸역 짜낸 듯
돌베개 모양 용암이 차곡차곡 연천은 신생대 용암 분출뿐 아니라
한반도 형성기 지각변동 중심지 심해저 화산에서 생긴 것처럼 최근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한탄·임진강 지질공원의 지질명소인 아우라지 베개용암을 3일 찾았다. 한탄강과 영평천이 합류하는 강변에 주상절리 협곡이 병풍처럼 서 있는데, 목재를 쌓아 놓은 것 같은 밑부분이 특이하다. 배를 타고 가까이 접근해 보았다. 지름 50㎝가량에 단면이 어금니처럼 생기고 길이가 80~100㎝인 원통형 현무암 덩어리가 빼꼭하게 쌓여 있다. 동행한 신승원 강원대 지질유산환경연구소 부소장은 “표면이 급격히 식어 유리처럼 바뀌었고, 치약을 짠 것 같은 형태와 방사상으로 금이 가는 등 베개용암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고 설명했다. 바위가 녹은 액체인 용암의 온도는 900도에 이른다. 고온의 용암이 찬물과 만나 급격히 식으면 미처 암석의 결정이 만들어지지 않아 유리가 형성된다. 아우라지의 베개용암 곳곳에는 검은 유리 조각이 들어 있었다. 한탄강의 현무암 협곡을 만든 것은 아우라지의 베개용암을 만든 대규모 용암 분출이었다.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든 중생대 백악기의 화산활동 이후 한동안 잠잠하더니 신생대 제4기에 들어 다시 화산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백두산, 제주도, 울릉도와 함께 한탄강 상류에서 화산이 분화했다. 각각 50만년 전, 15만년 전 분출
위성지도로 북한 땅인 강원도 평강 근처를 보면, 지름 150m, 깊이 20m인 작은 분화구가 보인다. 이곳이 약 15만년 전 다량의 용암을 옛 한탄강으로 흘려보낸 오리산(해발 452m)이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21㎞ 떨어진 ‘680고지’는 또다른 용암 기원지로 약 50만년 전 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두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은 철원에 큰 용암대지를 형성했고 이어 한탄강을 따라 전곡을 지나 분화구에서 110㎞ 떨어진 임진강 문산 부근에 이르렀다.
최근 한탄강의 현무암층을 연구한 안웅산 제주도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 학예연구사는 “그동안 한탄강 용암의 유출 시기와 범위를 놓고 논란이 많았지만 약 50만년 전 680고지 분화와 이보다 규모가 큰 약 15만년 전 오리산 분화 등 2번의 용암 분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분화 기원지가 북한이어서 직접 연구가 불가능해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한탄강의 용암은 백두산이나 한라산의 것보다 점도가 낮아 느릿느릿 먼 거리를 흘렀다. 그 깊이는 분화구에서 가까운 철원이 70m, 전곡 20~30m, 문산 2~3m에 이른다. 옛 한탄강의 물길을 메우고 지류로 역류하는가 하면 커다란 용암호를 이루기도 했다. 연천읍 고문리에 있는 재인폭포는 그 과정에서 생겼다. 주상절리와 동굴, 돌개구멍 등이 절경을 빚는 이 폭포는 한탄강의 용암이 지류로 흘러넘쳐 용암호를 형성한 것이 시초였다. 주상절리 돌기둥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 절벽이 생겼고 폭포는 침식을 가속했다. 지난 15만년 동안 폭포는 한탄강에서 350m나 안쪽으로 후퇴했다. 앞으로 5만년쯤 지나면 폭포는 아예 사라질 것이다.
종잇장처럼 구겨져 주름진 바위
전곡에서 한탄강에 합류하는 차탄천에는 용암의 역류로 인한 현무암 협곡의 절경이 10㎞나 이어진다. 차탄천의 은대리 왕림교 아래에는 높이가 25m에 이르는 웅장한 현무암 절벽이 펼쳐져 있다. 아파트 10층 높이의 주상절리 위와 아래엔 각각 덩어리 상태와 판을 쌓아놓은 모양의 현무암층이 놓여 있어 적어도 3개의 용암층이 쌓였음을 보여준다. 이곳은 옛 한탄강이 굽이치는 곳이어서 용암층이 깊게 쌓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에서 500m쯤 하류로 내려가면 옛 한탄강의 강바닥과 함께 판상절리가 장관을 이루는 모습이 펼쳐진다. 현무암 절벽 밑부분에 강바닥에서 볼 수 있는 모서리가 둥근 자갈이 층을 이루고 있다. 동행한 정대교 강원대 지질학과 교수는 “용암이 흐르기 전 옛 한탄강에서 쌓인 미처 굳지 않은 퇴적층”이라며 “자갈이 기울어진 방향을 보면 당시 강물이 어느 쪽으로 흘렀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은대리에는 지층이 종잇장처럼 구겨진 습곡을 간직한 바위가 눈길을 끈다. 정 교수는 “지하 10㎞에서 무르고 연해진 고생대 퇴적암이 2억~3억년 전 한반도가 대규모 지각변동을 받았을 때 이리저리 굽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천은 신생대 용암 분출뿐 아니라 한반도 형성기인 중생대 지각변동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중·한 지괴와 남중국 지괴의 충돌대 가운데 북쪽 끄트머리에 해당한다. 대륙충돌 때나 생기는 고온·고압 환경에서 생성된 남정석, 석류석 같은 광물이 곳곳에서 나온다.
연천/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공동기획: 한겨레, 대한지질학회, 국립공원관리공단 국가지질공원사무국, 한국지구과학교사협회
철원 70m, 전곡 30m, 문산 3m 깊이로 강줄기 따라 110㎞ 느릿느릿 흘러
물길 메우고 지류로 역류 고문리엔 용암호가 만든 재인폭포 절경
차탄천엔 25m 높이 웅장한 절벽 포천 영평천 합류 아우라지엔
치약을 꾸역꾸역 짜낸 듯
돌베개 모양 용암이 차곡차곡 연천은 신생대 용암 분출뿐 아니라
한반도 형성기 지각변동 중심지 심해저 화산에서 생긴 것처럼 최근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한탄·임진강 지질공원의 지질명소인 아우라지 베개용암을 3일 찾았다. 한탄강과 영평천이 합류하는 강변에 주상절리 협곡이 병풍처럼 서 있는데, 목재를 쌓아 놓은 것 같은 밑부분이 특이하다. 배를 타고 가까이 접근해 보았다. 지름 50㎝가량에 단면이 어금니처럼 생기고 길이가 80~100㎝인 원통형 현무암 덩어리가 빼꼭하게 쌓여 있다. 동행한 신승원 강원대 지질유산환경연구소 부소장은 “표면이 급격히 식어 유리처럼 바뀌었고, 치약을 짠 것 같은 형태와 방사상으로 금이 가는 등 베개용암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고 설명했다. 바위가 녹은 액체인 용암의 온도는 900도에 이른다. 고온의 용암이 찬물과 만나 급격히 식으면 미처 암석의 결정이 만들어지지 않아 유리가 형성된다. 아우라지의 베개용암 곳곳에는 검은 유리 조각이 들어 있었다. 한탄강의 현무암 협곡을 만든 것은 아우라지의 베개용암을 만든 대규모 용암 분출이었다.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든 중생대 백악기의 화산활동 이후 한동안 잠잠하더니 신생대 제4기에 들어 다시 화산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백두산, 제주도, 울릉도와 함께 한탄강 상류에서 화산이 분화했다. 각각 50만년 전, 15만년 전 분출
(사진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은대리 차탄천 왕림교 부근에는 25m 높이의 아찔한 현무암 절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용암이 굳으면서 안쪽의 가스가 표면으로 빠져나가면서 튜브 모양의 관을 이뤘다. 용암이 물속으로 흘러들어 급속히 굳어 생긴 아우라지 베개용암.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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