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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삶도 일도 같이 또 따로, 자연과 더불어 ‘행복한 불편’

등록 2016-01-19 20:09수정 2016-01-20 10:39

1. 충북 보은군 마로면 기대리 생태공동체 선애빌 주민들이 지난 12일 저녁 마을 명상센터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바닥에 놓인 노트북 컴퓨터 앞에 앉은 사람이 이종민 대표다.
1. 충북 보은군 마로면 기대리 생태공동체 선애빌 주민들이 지난 12일 저녁 마을 명상센터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바닥에 놓인 노트북 컴퓨터 앞에 앉은 사람이 이종민 대표다.
보은 생태공동체 선애빌 마을
변소를 집 안까지 끌어들일 수 있게 한 수세식 변기는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최고 발명품의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환경과 자원순환 관점에서 보면 좋은 발명품은 아니다. 한 번 물을 내릴 때마다 소중한 자원인 물을 10리터 안팎이나 소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삭혀서 땅에 뿌리면 먹거리가 돼 돌아올 양분을 하천을 더럽히는 오염물질로 바꿔버린다. 이런 문제점을 잘 아는 사람들도 수세식 변기의 편리함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충북 보은군 마로면 기대리에 있는 생태공동체 선애빌에는 자연을 위해 이런 편리함들을 기꺼이 포기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간다. 약사, 은행원, 회사원, 정보기술전문가, 농민, 자영업자, 교사, 환경단체 활동가, 만화가, 목수 등 다채로운 전직에 종교적 배경까지 다양한 22가구 40명이 그들이다. 이들이 이용하는 마을 한가운데 공동화장실은 재래식으로 분뇨를 처리하는 생태화장실이다. 모아진 분뇨는 근처 퇴비장에서 왕겨와 화목을 태운 재와 섞여 발효돼 이들의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를 키운다.

직업도 종교도 다 다른 22가구 40명
명상동호회 인연으로 마음 모아

형편대로 수백만원에서 수억원까지
돈 내 법인 만들고 땅 2만평 사

돈 액수 관계없이 동등한 권리
똑같은 형태·크기로 집 지어

1인당 월 19만원 내 공동 생활비로
주식 100%, 부식 30% 이상 자급

재래식 공동변소 쓰고 자연농법
화석연료 안 쓰고 식사도 공동

울력·마을회의 참여도 느슨한 의무
애초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꿔

지식과 재능 주변마을 주민과 나눠

 2. 난방용 화목을 태우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선애빌의 모습.
2. 난방용 화목을 태우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선애빌의 모습.
이들은 수세식 변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 외에도 방 안에서 스위치만 켜면 태울 수 있는 석유나 가스 등 화석연료 대신 버려지는 나무와 같이 재생가능 바이오 에너지를 태우는 화목 보일러로 방을 덥힌다. 텔레비전과 전자레인지같이 많은 가정에서 필수품이 된 가전제품을 포기하고, 세탁기는 세 집이 한 대꼴로 공동 사용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전기 없는 날을 마치 축제처럼 즐긴다. 공동 식사를 통해 취사용 에너지 소비와 음식물 쓰레기 발생을 줄이고,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을 모아 사용하고, 친환경 비누를 만들어 쓰고,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 자연농법을 시도하는 것도 생태적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의 일부다.

그렇다고 세상에서 자신들을 고립시키는 것은 아니다. 집집마다 텔레비전은 없어도 컴퓨터는 갖춰 놓고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흐름을 살피며 소통하고 있다. 외부에서 강사나 문화단체를 초청해 강연회나 문화행사 열고지식과 재능을 주변 마을 주민들과 나눈다.

금강의 지류인 보청천이 휘어 돌아가는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선애마을이 들어선 것은 2011년이다. ‘선을 사랑한다’는 마을 이름이 말해주듯 수선재라는 명상단체를 통해 인연을 맺은 명상동호회가 기초가 됐다.

영암과 고흥에도 동시에 같은 마을

3. 선애빌 주민들이 집단노동인 ‘울력’에 참여해 난방용 화목 나르고 있다.
3. 선애빌 주민들이 집단노동인 ‘울력’에 참여해 난방용 화목 나르고 있다.
선애마을이 설립될 때까지의 이야기는 몇년 전 <생태공동체 뚝딱 만들기>라는 책에 일부 소개됐다. 하지만 책 제목대로 마을이 ‘뚝딱’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땅을 사고 집을 지어 입주하기까지 1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공동체 설립 제안에서부터 따지면 5년의 짧지 않은 준비가 있었다. 돈을 모으면서 이미 설립된 공동체 마을들을 견학하고, 전문가들을 만나 조언을 들으며 공부한 기간이다. 12일 마을을 안내하던 이종민(48) 선애빌 대표는 “책 제목 때문에 공동체운동 어른들께 꾸지람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환경 관련 엔지오에서 주로 활동해온 그는 2006년 생태명상마을 동호회를 창립하고 기대리와 전남 영암과 고흥 등 세곳에서 동시에 진행된 선애빌 설립을 주도했다.

기대리 선애빌 사람들은 2010년 각자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씩 낸 돈을 자본금으로 마을 이름을 딴 한 유한회사를 설립하고, 법인 명의로 임야와 농지 등 2만평의 땅을 구입했다. 그 땅 한가운데 똑같은 형태의 주택용 건물 15동과 창고, 식당, 명상센터, 대안학교 등의 부대 건물을 지었다. 실평수 18평에 방 4개와 욕실, 주방 겸 거실 등을 갖춘 주택은 가족에게는 독채, 미혼이거나 가족과 떨어져 혼자 온 사람에게는 두 명에 한 채씩 배정됐다.

선애빌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1인당 월 19만원씩의 생활비 납부다. 마을 영농팀이 가끔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짓는 농사로 주식은 100%, 부식은 최소 30% 이상 자급하고 있어 이 돈으로 세끼 식사와 개인 통신료를 제외한 전기요금 등의 공과금까지 모두 해결된다. 매주 한 번씩 하는 공동 노동인 ‘울력’과 마을회의 참여,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돌아오는 공동식당 도우미 봉사도 의무 사항이다. 하지만 이행하지 않는다고 제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엄격한 규율이나 명문화된 규칙 없어

 4. 선애빌에 있는 재래식 공동 화장실인 ‘생생화장실’.
4. 선애빌에 있는 재래식 공동 화장실인 ‘생생화장실’.
12일 마을 입구에서 벌어진 난방용 화목 운반 울력에 참여한 주민 성철경(43)씨는 “처음에는 뭐든 함께해야 한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공동으로 일할 때도 사정이 있으면 안 나오고 나중에 시간이 되면 하는 식으로 한다”며 “키부츠(이스라엘의 공동소유 형태 집단농장) 같았던 공동체가 지금은 개인의 특성을 많이 인정해주는 형태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아이티 전문가로 일하다 3년 전 아내와 딸과 함께 기대리 선애빌로 들어와 마을 사회적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생태마을 체험 프로그램 운영, 천연비누 만들기, 야영장 운영,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사업을 펼치거나 준비 중인 사회적기업 ‘선애마을보은’에는 이 대표를 포함해 이 마을 주민 12명이 평균 120만원의 급여를 받으며 일한다.

기대리 선애빌에는 공동체 운영의 필수조건처럼 여겨지는 엄격한 규율이나 명문화된 규칙이 없다. 이 대표는 “계속 이것저것 실험을 해나가는 상황이어서 너무 틀에 박아 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가치지향적인 공동체를 떠올리면 으레 상상할 수 있는 비타협적인 완고함도 찾아보기 어렵다.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면서 개인의식을 성장시킨다는 지향점과 마을 설립에 내놓은 돈의 액수와 무관하게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원칙을 제외하고는 어떤 변화도 논의할 수 있다는 유연한 태도다. 이는 3년 전 마을의 혁명적 변화로 이어졌다.

인디언식 원탁회의와 만장일치제

기대리 선애빌은 애초 주민들이 집단농장식으로 농사를 지어 마을 운영비를 충당하고 수익을 나누는 형태로 출발했다. 하지만 2년 만에 주민들이 마을 내외부에서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해 수입을 얻고 그 가운데 일정액을 걷어 운영비로 충당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뀐 것과 같은 이 체제 전환은 마을의 의사결정 방식인 인디언식 원탁회의와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는 화백회의를 거치며 큰 충격 없이 이뤄질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가치지향적인 사람들이 다양한 갈등을 조율해가며 6년간 공동체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명상을 통해 늘 욕심을 비우고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마을 공동식당 ‘낙생’에서 만난 주민 정래홍(42)씨도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 맞춰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해 이제는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은 상태”라고 말했다. 서울 인사동에서 명상센터를 운영하다 2012년 선애빌로 온 그는 “여기서 내가 필요한 돈은 한 달에 50만원 정도여서 가끔 외부 강의로 생활비를 벌고, 나머지 시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자연농법과 토종종자 보급 활동을 하며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며 “도시를 벗어나 조금만 욕심을 줄이면 적은 비용으로 높은 삶의 질을 누리며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보은/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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