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석대의 바위기둥이 눈속에 더욱 웅장해 보인다. 기둥 너비가 7m에 이르러 세계 최고 수준이다.
눈보라가 잠시 멈춘 4일 오전 무등산은 포근했다. 굴곡 없는 둥근 산체에 눈이 덮여 ‘어머니 산’이란 말이 실감났다. 바위강을 이룬 수많은 너덜도 윤곽을 감췄다. 대신 거대한 바위기둥인 주상절리가 도드라졌다.
무등산은 흙산이지만 불의 산이기도 하다. 주상절리는 뚜렷한 그 증거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결과 무등산은 용암이 잠시 흐르다 굳은 흔한 화산지대가 아니란 사실이 분명해졌다. 대폭발을 동반한 대규모 화산활동이 장기간 계속됐다. 무등산은 백두산이나 한라산처럼 화산이었다. 광주와 화순, 담양에 걸친 거대한 규모의 화산지대가 격렬하게 화산재와 용암을 뿜어냈다. 그 화산활동이 남긴 흔적의 고갱이가 주상절리로 서 있다.
입석·서석·광석대 등 주상절리
육각 바위기둥이 병풍처럼
대폭발 동반한 대규모 화산활동
장기간 지속된 흔적의 고갱이
최고 7m 폭 바위기둥 11㎢ 이어져
드물게 해안이 아닌 고산지대에
수㎞ 깊이 화산재가 굳어
신생대 현무암 아닌 중생대 응회암
공원 면적 3%에 이르는 너덜
빙하기 주상절리서 떨어진 암석
미끄러져 흘려내려 긴 행렬
최대 길이 600m 폭 250m
덕산너덜 등 10여개 화석 지형
30~40m 돌기둥 100여개 줄줄이
2. 규봉암이 광석대에 제비둥지처럼 들어선 모습. 광주광역시가 항공촬영했다.
광주광역시와 전남 화순·담양 일대에 걸쳐 있는 무등산(해발 1187m)은 대도시에 있는 1000m가 넘는 유일한 고산으로 201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지난해에는 국가지질공원 인증을 받기도 했다. 북한산 다음으로 탐방객이 많은 사랑받는 산이지만 산의 비경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는 지질공원 인증을 위한 최근의 연구로 비로소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규봉암은 무등산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800m쯤 떨어진 해발 850m 높이에 위치한 암자이다. 들머리에 들어서자 거대한 돌기둥이 압도한다. 무등산에서 가장 커다란 주상절리대가 있는 광석대다. 공중에서 보면, 너비 2~5m, 높이 30~40m인 돌기둥 100여개가 늘어서 있는 한가운데 규봉암이 제비둥지처럼 매달려 있다. 절 건물 바로 옆에는 밑동이 1m만 남은 돌기둥의 잔해가 있는데, 너비가 7m에 이른다.
무등산에서 널리 알려진 주상절리는 입석대와 서석대, 그리고 최근 공군기지를 이전하기로 확정한 정상 3봉에 펼쳐져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주상절리대의 면적은 11㎢에 이르는데, 점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연결돼 있다. 그 분포는 신선대~누에봉~천왕봉~지왕봉~인왕봉~서석대~입석대~광석대~동화사 터~중봉~장불재~낙타봉~촛대봉~안양산 정상부로 이어진다.
허민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고생물학)는 “무등산의 주상절리대는 규모가 세계적일뿐더러, 국내 다른 주상절리대가 대부분 신생대에 형성된 현무암인 데 비해 중생대 응회암이며, 해안이 아닌 고산지대에 위치한다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당시 세계적인 화산지대의 하나
그렇다면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어떻게 생겨 현재의 모습이 됐을까. 최근 무등산의 지질과 지형의 형성사를 집중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그 과정을 짚어보자.
먼저, 중생대 백악기 초부터 신생대 제3기 초까지 한반도 남부에는 격렬한 화산활동이 벌어졌다. 이창열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지구조학)는 “현재는 일본 근처에 태평양판이 유라시아판 밑으로 파고들어가는 섭입대가 위치해 근처에서 화산활동이 활발하지만 중생대 말에는 섭입대가 한반도에 더 가까웠다”며 “섭입대에서 기원한 물질이 검출되는 것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
무등산 주상절리를 이루는 암석은 화산재가 굳어 생긴 응회암이다. 화산재가 압축돼 생긴 응회암의 두께는 드러난 것만 400m이고 전체는 600m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암석으로 굳기 전 화산재 깊이는 수㎞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있다. 무등산 일대는 당시 세계적인 화산지대의 하나였다.
무등산 일대에는 큰 화산이 재와 용암을 뿜어냈다. 지하 깊숙한 곳에는 이 용암의 원천인 마그마 방이 있었다. 맨틀로부터 다량의 마그마가 흘러들어와 마그마 방은 팽창했다. 그러나 분출이 계속되면서 차츰 마그마 방이 비어갔고, 어느 시점에 이르자 거대한 화산체의 꼭대기는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빈 공간으로 무너져 내렸다. 백두산에 칼데라 호수가 생성된 것도 이런 화산의 함몰 과정을 통해서였다.
무등산 화산에서는 함몰 이후 화구 안에 화산재가 쌓였다. 두껍게 쌓인 화산재는 높은 압력과 온도에서 녹은 뒤 차츰 식어 암석이 됐다. 이 과정에서 5~7각기둥 모양의 암석이 생겼는데, 바로 주상절리다. 안건상 조선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의 연구를 보면, 용암이나 화산재는 표면부터 식으면서 수축되는데 이때 가장 안정한 형태인 육각형으로 굳는다. 말라 갈라진 논이나 식은 풀이 육각형으로 갈라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독립적인 3번의 화산폭발로 생겨
3. 무등산에서 가장 큰 덕산너덜. 주상절리에서 떨어져 나온 바위가 빙하기 때 풍화와 침식을 받아 형성됐다.
임충완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박사(화산학) 등은 국제학술지 <지구, 행성 및 우주>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무등산 주상절리가 서석대·입석대·광석대는 중생대 백악기인 8500만년 전, 촛대봉은 8700만년 전, 정상의 천왕봉과 지왕봉의 주상절리는 그 후에 생겼으며, 이들은 모두 화학성분이 동일해 같은 마그마 방에서 기원했다고 밝혔다. 임 박사는 또 “같은 시기라고는 하지만 독립적인 세 번의 화산폭발로 서석대·입석대·광석대가 생겼으며 깊은(해발고도가 낮은) 곳의 주상절리일수록 천천히 식어 기둥의 너비가 크게 자랐다”고 설명했다.
공룡시대에 절정을 맞았던 무등산의 화산활동은 멈췄지만 돌의 윤회는 계속됐다. 8500만년 전 형성된 주상절리대는 깊숙한 땅속에 묻혀 있었다. 이 거대한 바위기둥이 햇빛을 처음 본 것은 11만5000년 전이다. 눈에 보이는 형태의 주상절리가 나타난 시기는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인 셈이다. 입석대 암석에 우주 기원 원소가 얼마나 생성됐는지를 측정해 이런 값을 계산했다.
얼고 녹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4. 입석대 주상절리. 너비 1.5m 높이 20m의 거대한 바위기둥 40여개가 120m 폭으로 펼쳐 서 장관을 이룬다.
빙하기는 주상절리대가 너덜로 변신하게 했다. 무등산에는 공원 면적의 3%를 차지할 정도로 너덜이 많다. 길이 600m, 최대 폭 250m인 덕산너덜 등 10여개의 너덜이 주상절리로부터 사면을 향해 ‘흐른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너덜이 많은 산도 보기 힘들다.
지상에 나와 풍화와 침식을 받던 주상절리는 5만년 전 빙하기 때 기둥에서 떨어져 나와 너덜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빙하기에 우리나라는 빙하에 덮이지는 않았지만 한랭한 기후였다. 여름에 녹은 토양이 겨울엔 얼어붙었다. 주상절리에서 떨어져 나온 암석은 얼고 녹으면서 사면을 조금씩 미끄러져 내렸고, 그 행렬이 너덜을 이뤘다. 북사면보다 남쪽과 서쪽 사면에 너덜이 발달한 것도 이곳에 동결과 용해가 활발했기 때문이다. 빙하기가 끝난 현재 너덜의 암석은 움직임을 멈춘 ‘화석 지형’이 됐다.
결국, 무등산 주상절리대는 거대한 화산폭발의 불덩어리와 빙하의 찬 기운이 8500만년 동안 빚어낸 조각품인 셈이다.
지질공원이란?
경관이 뛰어날 뿐 아니라 지구과학적 보전가치가 높고 교육과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만한 곳으로 환경부의 인증을 받은 곳을 가리킨다. 유네스코는 제주도, 중국 태산, 말레이시아 랑카위 등 32개국 111곳을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했다. 우리나라에선 제주도를 비롯해 청송, 울릉도·독도, 부산, 강원 비무장지대 일원, 무등산권 등 6곳이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됐으며 임진·한탄강, 무주·진안, 동해안권 등이 신청을 추진 중이다. 이 가운데 제주도만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고 청송은 신청 중이다. 지질공원은 보전, 교육, 관광을 모두 이룰 수 있어 기존 자연공원보다 융통성이 있고 유네스코 인증이 지역의 지명도와 관광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 지자체들이 인증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광주/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공동기획: '한겨레', 대한지질학회, 국립공원관리공단
국가지질공원사무국, 한국지구과학교사협의회
“알고 보니 보통 산 아니었지만, 아는 게 거의 없어”
이창열 교수가 말하는 무등산
전국의 명산에 수많은 탐방객이 찾지만 기암괴석의 비경을 놓고 “어떻게 이런 모양이 생겼느냐”고 물을 때 답변이 준비된 곳은 거의 없다. 무등산도 마찬가지다. 화산활동으로 주상절리가 산꼭대기에 병풍처럼, 기둥처럼 서 있다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이다.
이창열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도 국가지질공원으로 등재하기 위한 기초연구 과정에서 비로소 무등산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무등산은 보통 산이 아니더군요. 광주, 화순, 담양에 걸친 거대한 화산지대의 중심이었습니다. 사실 전라도 전체가 화산과 관련된 땅입니다.”
입석대·서석대·광석대 등 주상절리가 화산의 정상이 무너져 내린 화산재 속에서 생겼다면, 화산의 몸체(화산체)는 어디에 있었을까. 이 교수는 “지진파와 중력파를 이용한 탐사를 하면 8000만~9000만년 전 지금의 일본 이상으로 격렬한 화산활동을 하던 화산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며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화산에 마그마를 공급한 뒤 비어 버린 마그마 방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용암이 굳어 생긴 것으로 알려진 무등산의 주상절리대가 사실은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이란 것도 최근의 연구 성과 가운데 하나다. 이 교수는 “입자가 아주 작아 용암이 굳은 것처럼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암석의 조직을 자세히 조사하니 재가 엉겨붙었음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사실 무등산에 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거대한 화산으로서 이 산은 무궁무진한 연구가치를 지닌 곳입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공룡시대 실제 보듯 생생…지구비밀 찾는 재미 쏠쏠”
현장 동참한 고교생 김영진군
지질공원은 교육장이기도 하다. 유네스코는 지질공원의 보전과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지질 명소를 교육적으로 활용하라고 권고한다. <한겨레>의 지질공원 기획에 한국지구과학교사협의회가 공동기획에 참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등산권 지질공원 답사에 참가한 화순고 학생 6명 가운데 김영진(18·화순고 3년)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8300만년 전 우리 고향이 이런 모습이었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현장에 와보니 교과서나 사진으로 본 것보다 웅장하고 멋있습니다.”
김군은 지질 명소 가운데 특히 중생대 호숫가에 화산재 등이 쌓여 형성된 퇴적층인 적벽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공룡시대에 이곳에 큰 호수가 있었고 커다란 육식공룡과 작은 공룡이 돌아다니고 멀리 보이는 산에서는 화산분화가 일어났던 모습이 마치 눈에 보이듯 생생해요.”
김군 등은 적벽 퇴적층과 같은 시기에 퇴적된 서유리 공룡발자국 화석지도 둘러봤다. 그곳에서 다수의 육식공룡이 남긴 발자국 화석 등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지질학을 공부하는 것은 남들이 모르는 지구의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이어서 더욱 재미가 쏠쏠하다”는 김군은 “지구의 과거가 어땠는지 과학적인 단서를 통해 상상하던 것을 증명해 나가는 접근 방식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또 그는 “대학에 가서 교육학을 전공할 생각이지만 지질답사를 해보니 지구과학을 복수전공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