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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생태도시’ 꿈 영그는 울산…다만 외래종 천국

등록 2015-09-15 20:51수정 2015-11-04 13:26

13일 오전 울산 태화강변 태화강대공원에서 펼쳐진 바이오블리츠에 참가한 한 가족이 채집한 곤충들을 국립수목원 곤충분류연구실 연구원들(등을 보이고 앉은 사람들)한테 가져와 무슨 종인지 알아보고 있다.
13일 오전 울산 태화강변 태화강대공원에서 펼쳐진 바이오블리츠에 참가한 한 가족이 채집한 곤충들을 국립수목원 곤충분류연구실 연구원들(등을 보이고 앉은 사람들)한테 가져와 무슨 종인지 알아보고 있다.
[르포] 태화강대공원 ‘바이오블리츠’
“넷, 셋, 둘, 하나!”

12일 오후 2시 울산광역시 태화동 태화강대공원. 카운트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공원 안 느티마당 가운데 무대 스크린 속 디지털 타이머가 24시간에서 1초씩 줄어들었다. ‘바이오블리츠 코리아 2015-생물다양성 탐사 대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가을비가 내리는 무대 앞에서 출발 선언을 기다리는 시민·학생 등 300여명이 16개 조로 나뉘어 90여명의 생물 분류 전문가들과 함께 공원 곳곳으로 흩어졌다.

바이오블리츠는 생물 분야 권위자들과 일반인이 함께 2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특정 지역에 모여 그곳에 서식하는 생물종을 모두 찾아내 목록으로 만드는 과학 참여 활동이다. 산림청 국립수목원과 한국식물원수목원협회가 주관하는 바이오블리츠는 이번이 여섯번째다.

대관령보다 많은 식물종 확인됐지만
7할이 도입된 ‘외래종 표본실’ 방불

땅만 한국일 뿐 국적 불명 생태계에
자생종들 기 못펴고 귀퉁이서 연명

주변서 찾아온 곤충들도 낯설 환경
조사 전문가들 깊은 안타까움 토로

이번 조사에선, 지난해 6월 서울 뚝섬 서울숲에서 열린 제5회 바이오블리츠 때의 생물종 기록과의 비교에 전문가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태화강대공원과 서울숲은 둘 다 인공적으로 이뤄진 자연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지난해 6월 서울숲에서 열린 제5회 바이오블리츠에서는 모두 777종의 생물종 서식이 확인됐다.

태화강변에 자리잡은 53만1000여㎡의 태화강대공원은 태화강과 함께 공업도시를 넘어 생태도시를 꿈꾸는 울산의 자부심이기도 한 공원이다. 울산시와 시민들은 물고기 떼죽음이 일상화된 죽음의 강을, 도심하천 가운데서는 드물게 태평양에서 연어까지 찾아오는 청정하천으로 되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바이오블리츠 참가자들이 국립수목원 산림자원보존과 피정훈 연구원(맨 왼쪽)의 도움을 받아 식물상 조사 결과를 기록하는 조사야장을 작성해보고 있다.
바이오블리츠 참가자들이 국립수목원 산림자원보존과 피정훈 연구원(맨 왼쪽)의 도움을 받아 식물상 조사 결과를 기록하는 조사야장을 작성해보고 있다.
태화강대공원에 대해 울산시 홍보물들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친환경적인 생태공원’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설명과 달리 공원의 첫인상에서 생태를 고려한 흔적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강변을 따라 2㎞ 가까이 길게 이어진 대나무숲과 공원 한가운데 조성된 실개천 주변을 뺀 나머지 공간은 대부분 잘 구획된 거대한 화단이었다. 흔히 보는 분홍 계열의 코스모스뿐 아니라 이색적인 노란 코스모스가 구획별로 피어 있었고, 코스모스밭 주변에는 막 봉오리를 맺어가는 국화꽃 단지와 미국부용 단지 등이 조성돼 있었다. 철 따라 계절을 상징하는 두세가지 원예종으로 교체되는 화단이 다양한 생물종을 품어줄 수 있을까?

조사를 해보니 태화강대공원은 식물 분류 전문가 대부분이 “공원 식물종의 70%는 외래종일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 ‘외래식물 천국’이었다. 한해살이 초본류가 공원 대부분을 덮은 가운데 가시덩굴, 초피나무, 사위질빵, 둥굴레 등 자생식물들은 외래종의 위세에 눌려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었다.

국립수목원 식물분류연구실 이강협 연구원은 “이제까지 본 어느 공원보다 외래종이 많다”며 공원 조성 과정에서 생태에 대한 고려 없이 수입한 씨앗을 살포한 것이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최혁재 창원대 생물학과 교수는 “분류학자인 나도 낯설 정도로 외래종이 많아, 일반인 참가자들한테 해설하기 어려웠을 정도다. 땅은 분명 우리 땅이지만 생태는 외국 땅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식물분류학자도 낯선 이런 땅이 동물에겐들 낯설지 않을까?

곤충 조사 결과가 그 대답이었다. 이번 조사에서 발견된 곤충은 모두 195종으로 지난해 서울숲에서 발견된 250종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야간 곤충관찰 행사를 이끈 국립수목원 곤충분류연구실 임종옥 박사는 “참가한 분들께 미안할 정도로 너무 곤충이 없다”며 가을로 접어든 날씨와 함께 공원 식생이 너무 단조로워 다양한 곤충들의 먹이원이 부족한 것을 주요 원인의 하나로 꼽았다.

때마침 가을비까지 내려 버섯(균류) 관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버섯도 대나무밭을 우점하고 있는 노란대주름버섯과 말징버섯, 갈색먹물버섯 등 21종만 발견돼 지난해 서울숲에서 발견한 26종에 못미쳤다. 다만 일본에서 날아온 황새를 비롯한 조류가 40종 관찰되고, 청정하천으로만 올라오는 은어와 황어 등 24종의 어류가 발견된 것이 그나마 1급수 하천 수변공원의 체면을 지켜줬다.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남생이가 조사 종료 시점을 불과 1시간40분여 앞두고 모습을 드러내준 것이 관심을 끌 만한 생물종이 없었던 이번 조사 막판의 최대 낭보였다.

엄마 아빠와 함께 조사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조사 첫날인 12일 오후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공원 곳곳에서 벌어진 ‘생물종 보물찾기’ 재미에 흠뻑 빠진 듯했다. 저녁에 이어진 전문가들과의 대화에서 앞다퉈 손을 들고 바다에 사는 해파리의 생태를 묻는 엉뚱한 질문으로 전문가들을 당황케 하더니, 밤 11시까지 이어진 야간 곤충관찰에까지 100명 넘게 참가하는 열성을 보였다.

야간 곤충관찰 프로그램에 참여한 정재운(10·울산 무룡초4)군은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프긴 하지만, 박사님들한테 궁금한 것들을 물어서 바로 배울 수 있어서 좋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같은 학급 친구 장지훈(10)군은 “힘들지만 다음에 또 이런 행사가 있으면 참여하고 싶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13일 오후 2시. 다시 카운트다운에 이어 행사장 스크린에 최종 결과가 띄워졌다. 놀랍게도 1011종이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식물전문가들이 300종을 넘기기 어려우리라고 한 관속식물종 수가 무려 587종으로 집계된 결과다. 서울숲의 333종보다 254종이나 많은 것일 뿐 아니라, 2012년 대관령 자연휴양림에서 진행된 바이오블리츠에서 관찰된 식물종 수(542종)를 넘어서는 기록이다.

식물 전문가들마다 생물 다양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하던 공원을 몇 시간 사이에 기록상 ‘생태계의 보고’처럼 둔갑시킨 것은 울산 지역 전문가 조사 결과였다. 국립수목원 관계자는 “우리 조사에서는 300여종이 나왔는데, 지역 쪽에서 가져온 목록에 대나무 64종과 봄·여름 사이에 나왔다가 사라져 잘 안 보이는 식재종들까지 들어 있어 고민하다가 모두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이 설명은 국립수목원이 올해로 6년째 바이오블리츠를 주관하면서도 아직 공식 집계 방식조차 정립해 놓지 않았다는 안타까운 방증이다. 추가된 대나무종 가운데 59종은 울산시가 전시 목적으로 일본·중국에서 들여와 공원 안 대나무생태원에 심어놓은 것들이어서 조사 지역의 생물 다양성과 무관하다.

울산/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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