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용산 미군기지 유류오염 관측정 둘러보기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서울시 용산구 남영동 캠프 킴 17번 게이트 근처를 돌아보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녹사평역·캠프킴 실태조사 결과
‘발암’ 벤젠, 석유계총탄화수소 등
기준치의 수십~수천배 검출돼
“기지내 오염원 제거 안된 증거”
한-미각서 탓 내부조사 어려워
내년 오염정화 없이 반환 우려
‘발암’ 벤젠, 석유계총탄화수소 등
기준치의 수십~수천배 검출돼
“기지내 오염원 제거 안된 증거”
한-미각서 탓 내부조사 어려워
내년 오염정화 없이 반환 우려
“내년에 반환한다죠.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궁금해서 나왔어요. 주민 입장에서 발암물질이 나오는 지하수 오염 문제를 걱정 안 할 수 없어요.”
서울 용산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창호(47)씨는 지난 22일 오후 문화예술인 모임인 ‘게이트22’가 주최한 ‘용산 미군기지 담벼락 따라 걷기’ 행사에 참여했다. 내년 말 일부 반환이 예정된 용산 미군기지의 게이트(출입구)는 21개다. ‘게이트22’라는 명칭은 용산 미군기지의 미래를 상상하자며 지은 이름이다.
이씨 등 9명은 13번 게이트(지하철 4호선 이촌역 부근)부터 17번 게이트(삼각지역~숙대입구역 중간 지점)까지 걸었다. 안내자 홍서희(45)씨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써서 유명해진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라는 글귀가 적힌 스티커와 기름탱크 그림이 있는 스티커를 담벼락에 붙였다.
미군 시설 ‘캠프 킴’이 있는 17번 게이트에 도착하자 신수연 녹색연합 활동가가 바닥에 설치된 ‘관측정’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울시가 매년 기지 내 유류에 의한 지하수 오염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조사할 때마다 오염 농도가 불규칙하게 나온다.”
용산 미군기지 유류 오염은 1998년 이후 알려진 것만 14건이다. 2001년에는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주변에서 휘발유와 등유 성분이 검출됐다. 기지에서 나온 기름이 지하수를 따라 흘러든 것이다. 2006년에는 캠프 킴 앞 지하전력구 배수구에도 유류가 유입됐다. 미군이 사용하는 제트유(JP-8)였다. 서울시는 해마다 녹사평역 주변과 캠프 킴 주변에서 오염된 물을 퍼내고 있지만 지하수 오염은 그치지 않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 경기지역본부는 서울시의 용역을 받아 지난해 3~11월 두 지역의 오염 실태를 조사했다. 지난달 나온 용역보고서를 보면, 녹사평역 근처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이 기준치(0.015㎎/ℓ)의 578.5배가 검출됐다. 유해물질인 톨루엔·에틸벤젠·크실렌도 최고 농도가 기준을 초과했다. 캠프 킴 터에서 나온 석유계총탄화수소는 기준치(1.5㎎/ℓ)의 4434배에 달했다.
이동수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유해화학물질 관리 전공)는 “발암물질인 벤젠, 유해화학물질인 석유계총탄화수소가 기준을 초과해 계속 검출되는 것은 미군기지 내 오염원이 여전히 제거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역보고서 역시 “유류 오염원이 캠프 킴 내부에 있음이 명백하다. 기지 내부 정보 없이 주변부(기지 외곽)만 정화하는 것은 효율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염 사실이 드러나도 우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지 내부를 조사하기는 쉽지 않다. 2001년 한-미가 체결한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 양해각서’에는 ‘인간 건강에 대한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오염의 치유를 신속하게 수행한다’고 돼 있다. 채영근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급박하고 위험하다’고 판단해야만 기지 내부 조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최근 미군기지인 경기 동두천 캠프 캐슬과 부산 당감동 미군 폐품재활용사업소(DRMO) 두 곳이 오염 정화 없이 우리 정부에 반환됐다. 용산기지도 이런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박정경수 평택평화센터 운영위원은 “대표적인 오염 기지였던 부산 하야리아기지 정화비용 143억원을 우리 정부가 냈다. 용산기지는 1000억원 넘는 정화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우려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지 내부 조사 필요성이 많은 만큼 2013년부터 미국과 용산기지 내부 조사를 어떻게 할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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