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대청봉에서 중청대피소로 넘어오는 무박 산행 등산객의 행렬. 케이블카로 쉽게 오르기보다 산을 오르며 애쓴 몸과 마음을 대견해하며 자연 앞에 겸손해질 수는 없을까. 박그림 제공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올해 겨울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이 학교에 내놓는 체험학습 과제 가운데는 아마도 얼음판에서 놀았던 내용이 많을 것이다. 산천어, 송어, 빙어를 앞세운 ‘축제’가 강과 호수, 저수지 수십곳에서 열려 아이와 어른 수백만명을 족히 그러모았다. 얼음판에 구멍을 뚫어 낚시를 드리우고 코앞에서 물고기를 잡아내던 기억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가족과 함께 얼음이나 눈에서 썰매를 타고 모처럼 싸한 겨울바람을 콧속에 들이는 기회도 도시민에겐 흔치 않다. 그래서인지 겨울 축제장은 재방문율이 높아 지자체마다 앞다퉈 개장에 나서고 있다.
이런 겨울축제가 생기기 전 호수에서 빙어 낚시를 하곤 했다. 얼음이 깨질까 봐 조심조심 호수 가운데로 다가간다. 물속 지형을 아는 토박이 낚시꾼에게 명당을 탐문하는 것도 필수다. 자리를 잡고 구멍을 뚫노라면 땀이 났다. 살얼음을 건져내면서 낚시에 몰두하지만 튀겨 먹고 끓여 먹겠다는 기대는 대개 기대에 그쳤다. 무료한 다른 낚시꾼과 이야기를 나누며 “바다에 살던 빙어가 왜 민물에 왔을까?” 따위의 궁금증을 풀곤 했다.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 자연과 접하는 것 자체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사람은 자연에 본능적으로 이끌린다.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바이오필리아>에서 사람이 다른 생명체를 좋아하는 욕구는 우리의 생물학적 본성에 뿌리박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변 동식물의 습성과 생태에 관해 호기심을 갖고 배우고 잡고 기르는 행동은 생존에 보탬이 되고 진화의 선택을 받았을 것이다. 현대인은 생활의 90% 이상을 실내에서 보낸다지만 인류는 진화 역사의 99% 동안 수렵·채취로 먹고살았다.
겨울축제는 자연에 목마른 현대인의 갈증을 풀어준다. 자연은 우리 방식대로 소비된다. 대부분의 낚시 체험장에선 인공으로 조성한 터에 양식장에 기른 물고기를 사 풀어놓는다. 이 분야의 원조인 화천 산천어 축제에선 하루 60~80t의 양식한 산천어를 활어 차로 날라 쏟아붓는다.
방생하는 송어나 산천어는 고급어종이어서 주최 쪽은 가능하면 적게 풀어놓으려 한다. “고기가 안 잡힌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사실, 아이들에게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부모로서는 절박한 문제다. 다행이라면, 양식어는 사료를 경쟁적으로 먹는 데 익숙하고 운반하느라 오래 굶어, 주는 미끼를 잘 문다.
자연은 불편하고 거칠고 위험하다. 그러나 축제장에는 길들인 자연만 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어 커피를 뽑듯, 입장료를 냈으니 고기가 나와야 한다. 안 잡히면 당연히 화가 난다. 낚시로 성이 차지 않으면 돈을 더 내고 맨손으로 잡기 체험을 하면 된다. 참을성 없는 어린이를 위해서는 뜰채로 빙어를 건지도록 하고, 찬바람을 막기 위해 텐트 안에서 고기를 잡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잡은 물고기의 내장을 가르면서 불편한 감정을 느낄 필요도 없다. 회부터 튀김, 매운탕까지 돈만 내면 다 해준다.
얼음판 축제만 그런 건 아니다. 지리산 벽소령 대피소에는 종주를 하는 산악인이 손을 씻을 물은 없지만 수세식 변기는 여러 개 설치돼 있다. 탐방객의 최대 민원이 화장실이었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어느덧 자연을 이런 방식으로 대하는 데 익숙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깊은 관심 속에 케이블카 사업이 추진 중인 설악산도 그렇다. 한해 50만명, 단풍철 주말이면 4만명이 대청봉을 밟는다. 상당수는 ‘무박 산행’으로 새벽부터 캄캄한 밤길을 불을 밝히며 ‘행군’한다.
자연은 이렇게 정복하고 소비하는 대상일까. 그렇게 얻는 만족감이 얼마나 오래가며 우리에게 진정한 치유가 될까. 설악산 지킴이 박그림씨의 말처럼 “대청봉에 올라 말없이 서서 힘은 들었지만 올라올 수 있도록 애쓴 내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스스로 대견해하며 자연 앞에 겸손해”질 수는 없을까.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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