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시민 한 명과 함께
피투성이 고양이를 들고
근처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눈은 떴지만 항문은 열렸다
부담할 화장 비용은 4만원
동물 찻길사고는 엄청 늘었다
2010년 2484건, 2013년 4163건
그중 70~80%가 고양이인데
뾰족한 대책도 없는 실정이다
피투성이 고양이를 들고
근처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눈은 떴지만 항문은 열렸다
부담할 화장 비용은 4만원
동물 찻길사고는 엄청 늘었다
2010년 2484건, 2013년 4163건
그중 70~80%가 고양이인데
뾰족한 대책도 없는 실정이다
순간 동공이 커졌다. 도로 위에 버려진 그것이 부디 흰 솜뭉치이길 바랐다. 바람에 흔들리듯 솜뭉치 위로 동그란 얼굴이 까딱거리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로드킬(동물이 차량에 치인 일)임을 직감했다.
4월의 첫 출근길은 ‘악몽’이었다. 1일 오전 9시30분 무렵 서울 마포구 공덕동 공덕역 6번 출구에서 한겨레신문사로 걸어오는 언덕길, 왕복 6차로 중 서부역 방향 1차로의 차량 흐름이 이상했다. 출근길의 서두름이 느껴지는 속도로 빠르게 내달리던 승용차들이 갑자기 속도를 줄인 것이다. 차량 사이로 회색 아스팔트 위에 놓인 하얀 솜뭉치 끝에 달린 세모난 귀가 눈에 들어왔다.
‘아… 고양이가 차에 치였구나! 어쩌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트라우마로 남은 어릴 적 동네 강아지의 찻길 사고사가 떠올랐다. 당황하고 고민하는 사이 차 한 대가 고양이 위를 한 번 더 지나갔고 고양이 몸이 반 바퀴쯤 돌았다. 고양이는 더이상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양손으로 머리만 쥐어뜯다 1분 거리에 있는 동물병원으로 무작정 달렸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장소에 누워 있는 고양이를 본 수의사가 말했다. “저 정도면 어렵다고 봐야죠. 구청에 신고하면 데려갈 거예요. 저 녀석 무단횡단하다 그랬나, 아이고….” 고양이가 움직인다고,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으니 상태를 봐야 하지 않느냐고, 설령 죽었다 해도 차바퀴에 사체가 뭉개져 훼손되면 사람들 보기에도 안 좋지 않으냐며 일단 데려와야 한다고 수의사에게 ‘생떼’를 썼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검색해 알게 된 구청의 대표전화는 ‘모든 상담원이 통화중’이었다.
그사이 서성현(27)씨와 동네 주민 몇 명은 ‘용감하게도’ 도로 진입에 성공했다. 한 아주머니가 차가 고양이를 더이상 치지 못하게끔 지켰고 출근중이던 서씨가 고양이를 안아들고 인도로 나왔다. 가로수 옆에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고양이를 데리고 수의사에게 가기로 했다. 축 늘어진 고양이의 벌어진 입에서 진한 빨간색 피가 흘렀다. 고양이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눈동자의 움직임은 없었고 항문이 조금 열린 상태였다.
“신고자가 필요해요. 누가 하실 거예요?”
수의사가 물었다. 자청하는 서씨와 기자를 확인한 수의사가 서둘러 병원 수술대에 고양이를 눕혔다. 수의사는 가느다랗게 숨이 붙어 있는 고양이에게 쇼크를 막고 강제로 심장을 뛰게 하는 투명한 약을 주사했다. 그러나 고양이의 항문은 더 벌어져 분비물이 계속 새나왔다. 이미 내장이 파열됐을 거라고 수의사가 말했다. 고양이의 신원을 알 만한 마이크로칩은 없었다. 죽은 길고양이는 몸길이 약 60㎝의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은 ‘코리안쇼트헤어’ 수컷이었고, 이빨 상태로 보아 1~2살로 어렸다.
찻길사고를 당한 도시의 개·고양이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치료가 가능해 병원으로 간 동물은 지방자치단체의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등록된다. 동물병원에서 사진, 신고자, 발견 장소, 동물의 특징(털 색깔, 다친 부위 등)을 올리고 보호자를 찾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안락사하는 것까지 ‘유기동물’ 관리절차와 같다. 병원에서 죽어나간 동물은 ‘의료폐기물’이기 때문에 신고자가 업체에 1㎏당 5000원~1만원 정도의 비용을 내면 수의사가 사체를 의료폐기물 처리업체에 보낸다.
거리에서 생을 마감한 개·고양이의 사체는 2009년 8월부터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동물사체 회수처리반’이 담당한다. 120다산콜센터(서울시)나 128환경신문고(환경부)로 전화하면 해당 구청으로 연결되는데, 이렇게 수거된 사체 역시 지정된 의료폐기물 처리업체가 소각한다. 2009년 8월 이전에는 환경미화원이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생활폐기물’이었다. 동물보호법상 길에서 죽은 동물 사체를 처리하는 데에는 특별한 기준이 없으니 서울시가 그나마 위생적으로 ‘화장’ 처리하는 셈이다.
무연고자가 다 그렇듯, 찻길사고로 생을 마감한 동물의 끝은 ‘화장’이다. 이름을 잃어버렸거나 이름을 불려본 적 없는 동물의 사체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거즈나 장갑 등 다른 의료폐기물과 뒤엉킨 채 1000도가 넘는 불구덩이에서 비루한 이승의 삶을 마감한다. 동물 사체를 치우는 일을 하는 구청 청소과 공무원이 말했다. “아이, 진짜 더럽죠. 사람이 할 짓이 아니죠. 밥맛이 뚝 떨어져요.”
도시의 동물 찻길사고 건수는 점점 늘고 있다. 서울시 자료를 보면 2010년 2484건, 2011년 3081건, 2012년 4163건으로 증가 추세이고, 그중 70~80%가 고양이다. 신고자가 늘었고 길고양이 마릿수가 많아져서라고 추정할 뿐 도시 내 로드킬이 왜 늘었는지 확실한 이유는 모른다. 산간지역에 사는 야생동물은 찻길사고에 대비한 생태통로라도 있지만, 도시 내 로드킬을 막는 뾰족한 대책은 없다. 구청에서 수의사에게 유기동물 한마리당 평균 10만원 정도를 보조하지만 수의사들은 그 돈으로 수술(치료)비, 보관비, 안락사 비용까지 다 해결하기란 어렵다며 찻길사고로 다친 동물을 반기지 않는다. 동물보호단체 쪽은 지자체가 찻길사고 동물의 응급구조에 나서야 하는데 사실상 사체 처리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 이후 추가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면 그리고 최대한 사체의 훼손을 막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존엄한’ 죽음이라고 찻길사고를 당한 생명의 마지막을 위로할 뿐이다.
공덕동에서 찻길사고를 당한 고양이는 동물병원 냉동실에 있다가 이튿날인 2일 충북 진천의 한 의료폐기물 처리장으로 보내졌다. 집하장에 있다가 소각처리됐을 것이라고 수의사는 말했다. 찻길사고로 죽은 고양이의 사체처리 비용은 4만원이었다.(비용은 고양이 몸무게와 지역별로 다름) 그날 처음 만난 수의사와 서씨 그리고 기자가 나눠 지불했다. 로드킬의 악몽에서 벗어난 그날 오후 서씨가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당연히 해야 했던 일이지요.^^; 그 아이도 마지막에 자신을 위해 울어준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 거예요. ㅠㅠ”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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