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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생물 번개’ 쳐 937종 +1 찾았다

등록 2010-06-15 23:07수정 2010-06-17 00:18

[하니스페셜] 제1회 생물번개
1박2일 24시간, 동·식물 샅샅이 뒤져라
 ● 경북 봉화군 서벽리의 ‘생물번개’ 행사장에 참가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준비물인 포충망과 채집통을 든 가족단위 참가자도 여럿 눈에 띄었지요. 전문가들도 차량에서 채집장비를 꺼냈습니다. 과학자들은 무슨 장비로 채집을 할까요? 어린아이도 들어갈 만큼 큰 포충망, 뱀 잡는 집게, 식물채집용 신문지 뭉치…. 일반 참가자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 봤습니다.

 ● 현정오 서울대 수목원장이 휘파람으로 꾀꼬리 소리를 흉내내는 개인기를 선보이자 참가자들은 환호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우리도 모르는 게 많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이유미 박사가 “지금 설악산 어느 자락에 피어 있을 바람꽃 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는 말에 식물애호가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삼, 이, 일 , 시작!”
24:00:00, 초침 째깍째깍
생물다양성 보전탐사작전 큐!
전문가 21명과 일반인 151명
문수산 일대 어떤 생물들이 살까
찾고 분류하고 실습까지
드디어 00:00:00
생물종 목록 만들어졌다


“삼, 이, 일, 시작!”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참가자들의 함성과 함께 생물다양성 보전 탐사작전(바이오블리츠, 일명 ‘생물번개’)이 시작됐습니다. 경북 봉화군 서벽리의 행사장에 설치된 전광판이 24:00:00에서 1초씩 줄어들었습니다. 앞으로 24시간 동안 문수산 일대의 생물다양성을 조사하는 전문가와 일반인의 ‘생물축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동물과 식물의 부문별 전문가 21명과 일반 참가자 151명은 하룻 동안 이 지역에 사는 생물종이 몇 종인지 밝혀내는 동시에 생물조사의 지식을 나누고 생물다양성 위기를 공유했습니다.

답하랴 채집하랴 실습하랴…

국립수목원과 한국식물원수목원협회가 주관하고 <한겨레>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후원한 이번 행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것이지요.

행사 장소는 백두대간 국립수목원이 들어설 예정지로서 태백산과 소백산을 잇는 백두대간 마룻금이 지나는 곳입니다.

보통 때와 달리 전문가들은 조사장비를 들고 몸피 붉은 금강소나무가 들어찬 산으로 뿔뿔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금강송숲 탐방, 나무이름 알기, 초본 이름 알기, 곤충 이름 알기 등 8개 그룹으로 나뉜 일반인과 함께 현장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가장 인기를 끈 것은 곤충이름 알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봉우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연구실 박사는 쏟아지는 질문에 답하랴 채집과 표본 만들기 실습을 하랴 진땀을 뺐습니다.

참가자들은 곤충이 몸부림치지 않고 죽도록 하는 암모니아 독병, 채집한 나비를 보관하는 삼각통, 포충망 등을 챙긴 뒤 방금 배운 쓸어잡기, 털어잡기, 채어잡기를 시도하느라 신이 났습니다.

제1회 생물번개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곳곳 탄성

참가자 백남호(경북 울진·41)씨는 “인천 사는 조카에게 자연공부를 시켜주러 왔는데 전문가의 설명을 직접 들으니 더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말했습니다.

풀밭에 훌라후프를 던져놓고 그 안에 들어있는 모든 식물을 조사하는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에게 전문가의 조사를 체험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식물종별로 다른 색깔의 스티커를 붙여 위치를 표시하고, 식물의 잎모양, 잎차례, 잎맥으로 서로를 구분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행사본부에는 전문가들의 분야별 텐트가 마련돼 도감과 조사장비는 물론이고 곤충이나 식물표본을 만드는 과정을 일반인에게 보여주고 설명해 줬습니다. 곤충을 고정할 때 파리는 등의 형태차이가 중요해 침을 옆으로 꼽고, 메뚜기 종류는 마취하기 전에 굶겨 내장을 비워야 나중에 표본이 썩지 않는다는 설명을 참가자들은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어류텐트에는 채집해 온 참갈겨니, 수수미꾸리, 자가사리 등의 물고기를 수조에 전시했고, 양서·파충류 텐트에서는 채집한 쇠살모사와 유혈목이 같은 파충류를 보여줬습니다.

현장조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본부 텐트에 모여 전문가들과 만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김인호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교수의 진행으로 평소 멀게만 느껴졌던 ‘박사님’들에게 질문을 하고 의견을 말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대화가 진행되면서 전문가와 일반인의 벽은 점점 허물어져 갔습니다.

이어 전문가들은 오후 내 조사한 생물종을 화면에 사진을 비춰 가면서 참가자들에게 설명했습니다. 정옥식 충남발전연구원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남의 둥지에 알을 맡기는 습성이 있는 새 5종 가운데 이곳에서 뻐꾸기, 매사촌, 벙어리뻐꾸기, 검은등뻐꾸기 등 4종을 발견했다”며 “이것은 알을 맡길 대상인 솔새나 산솔새가 많다는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처럼 긴 이름의 곤충도 발견됐고, 버섯 가운데는 비린내가 나는 큰낭상체버섯과 나무에 페인트 칠을 한 모습의 아교버섯도 채집됐습니다. 전문가들의 친절한 보고를 참가자들은 메모를 하며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예년보다 봄이 두 주일은 늦었다는 올해, 백두대간의 밤은 쌀쌀했습니다. 이 때문에 곤충의 활동이 둔해져 조명등과 스크린으로 나방 등 곤충을 유인해 채집하려는 계획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둘째날 조류탐사는 아침 6시30분에 시작했지만 30여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습니다. 참가인원이 많아 직접 새를 관찰하기보다 소리를 듣고 의미를 해석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여름새는 곤충을 먹으러 오고 겨울새는 열매와 씨앗을 먹으러 온다는 당연하지만 중요한 사실에도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20분마다 한 종씩 사라져

탐사에 참가한 이현정 숲연구소 경주지부장은 “전문가와의 만남이 평소 자연해설을 하고 생태연구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참가한 서정국(39)씨는 “전문가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고 현장에서 관찰을 하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고 이번 행사를 평가했습니다.

전광판의 시계는 어느덧 ‘0’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하룻동안 조사한 데이터를 모으느라 바빴습니다. 30일 오후 2시 김용하 국립수목원장은 24시간 동안 이 지역에서 조사한 곤충 398종, 관속식물 397종, 조류 39종 등 모두 937종의 생물종 목록을 발표했습니다. 김 원장은 “생물다양성이 왜 중요하고 보전해야 하는지 깨닫는 소중한 기회가 됐을 것”이라며 “내년부터 더 다양한 지역에서 생물다양성 번개를 벌이겠다”고 밝혔습니다.

20분마다 한 종씩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생물종의 다급한 처지를 마음 깊이 되새길 수 있었던 24시간 동안의 생물축제는 이렇게 첫번째 막을 내렸습니다.

생물번개란

생물다양성보전탐사작전 또는 ‘생물 번개’는 1996년 미국에서 처음 시도된 생물종 조사 행사입니다. 전문가와 일반인이 24시간 동안 특정 장소의 생물목록을 만드는 이 행사를 ‘바이오 블리츠’(Bioblitz)라고 불렀습니다. 블리츠란 미식축구의 수비전략으로 상대방 쿼터백이 패스하지 못하도록 수비진이 일제히 덤벼드는 전략입니다. 전문가와 일반인이 함께 달려들어 생물을 조사한다는 뜻입니다. 24시간이란 짧은 조사기간은 생물다양성 보전의 긴급성을 상징합니다. 미국뿐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스페인, 대만 등에서 국립공원 또는 대도시 공원에서 해마다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생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 과학자들은 생물다양성의 변화를 밀도 있게 감시할 수 있게 됩니다.

봉화/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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