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국립공원 마리포사 숲에서 2023년 10월7일 불에 타고 남은 나무 밑동(맨 앞 오른쪽) 등 화마에 그을린 흔적 사이로 탐방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2022년 7월 워시번 화재가 남긴 상처다. 지름이 사람 키보다 훨씬 큰 나무가 대형산불 예방 목적으로 베어져 쓰러져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거인나무 숲에 화마가 들이닥쳤다.
건물 30층 높이의 자이언트세쿼이아(Giant Sequoia) 500여 그루가 밀집한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국립공원 남쪽의 마리포사 숲에 2022년 7월 불길이 번졌다. ‘워시번(Washburn) 화재’라는 이 불로 약 20㎢의 숲이 탔다. 지구온난화가 불러온 폭염과 가뭄 등 이상기후가 수년 동안 캘리포니아에 이어져, 서부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인 캘리포니아는 해마다 대형산불로 곤욕을 치렀다.
다행히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나무인 ‘그리즐리 자이언트’(Grizzly Giant)는 불길을 피할 수 있었다. 요세미티에서 두 번째로 크고 세계에서 스물여섯 번째로 큰 이 나무의 키는 63.7m, 부피는 962.9㎥, 무게는 907t으로 1990년 공식 측정됐다. 살아 있는 거목을 잘라 나이테를 확인할 수는 없어 다른 나무와 지름을 비교해보니, 2천 살에서 3천 살 사이의 나이로 추정됐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그리즐리 자이언트는 셀 수 없는 고난을 버텨냈다. 번개도 여러 차례 맞았을 것이고 가뭄, 폭풍, 눈보라도 견뎠다. 실제 이 나무의 밑동에는 수백 년 전에 불탄 10여m 크기의 상처가 남아 있다. 나무의 중심도 남쪽으로 5도, 서쪽으로 1.5도가량 기울었다.
그리즐리 자이언트가 곧 걸음을 뗄 것 같은 자태로 탐방객을 맞고 있다.
5천 년 넘게 원주민이 살아온 요세미티 계곡과 마리포사 숲에 1850년대 들어 백인들의 발길이 미쳤다. 캐나다 태생의 게일런 클라크는 심각한 폐질환을 치료하러 캘리포니아 와워나 지역으로 이주해 산속을 탐험하다 이 숲을 발견했다. 그는 숲에 머물며 자이언트세쿼이아의 신비함을 사람들에게 알리려 애썼다. 그리고 숲을 보호하는 법안을 작성해 의회를 설득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1864년 요세미티 계곡과 이 숲을 ‘공공 사용 휴양지’로 보호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국립공원화를 이끌어낸 주인공 그리즐리 자이언트와 거인나무들이 화마를 피해 오늘 이 순간도 탐방객을 맞는 건, 국립공원과 소방 당국의 오랜 대비 덕분이다. 그들은 50년 전부터 산불의 연료를 제거해왔다. 감염병으로 고사한 나무, 바람에 쓰러진 나무, 가뭄에 말라붙은 나무를 미리 솎아 베어냈다. 또 숲의 낙엽을 걷어내고 바닥에 썩어가는 유기물을 파내어 제거했다. 잦아진 산불로 봄마다 큰 인명과 재산 피해를 겪는 우리가 새길 값진 교훈이다.
기후변화는 수천 살 거목에도 치명적인 위협이다. 뿌리에서 얻은 수분을 수십m 위로 충분히 끌어올려야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 한데 물은 부족하고 열기는 높아만 간다. 현재 북미 지역에는 자이언트세쿼이아가 약 8만 그루 남아 있다. 200년 전과 비교하면 단지 2%만 살아남았다.
마리포사 숲(미국 캘리포니아)=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