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기후위기 해결을 촉구하는
‘923 기후정의행진’이 열린다. 기후단체 등은 올해 행진에서 △기후재난으로부터 죽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보장 △에너지와 노동의 정의로운 전환 △철도 민영화 중단, 공공교통 확충 △신공항 건설과 국립공원 개발 사업 반대 △기후불평등 해소 등 5대 요구안을 내걸었다. 주최 측 추산 3만명 가까운 시민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거대한 행진에 앞서,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어봤다.
거대한 탄소 저장고 역할을 하는 지리산국립공원 일대.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해마다 산사태가 나고, 해마다 복구공사를 하죠. 2~3년 전부터는 시멘트로 바르고 있어요.”
지리산 자락 내기마을 주민 이윤성(50)씨는 지리산 남원 방향 입구인 육모정에서 해발 1172m의 정령치까지 이어진 도로를 지날 때마다 한숨이 난다. “산을 찢어서 시멘트를 바르고, 시멘트 바르지 않은 부분엔 또 산사태가 납니다. 이런 걸 보면 제가 환경보호주의자가 아닌데도 답답한 마음이 들죠. 기후 위기라는데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으니….”
서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이씨는 2009년 전북 남원으로 귀촌했다. 이씨는 마을에서 남원시로 내려갈 때마다 “해마다 산사태 공사 중”이라는 그 길을 지난다. 안 그래도 위태로운 그 길이 최근 몇 년 새 다른 이유로 들썩이고 있다. 남원시가 60번 지방도와 737번 지방도에 걸쳐진, 육모정 인근부터 정령치까지 약 13km 도로에 ‘지리산 친환경 전기 열차’를 개설하려고 해서다. 해당 도로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리산 국립공원을 지난다.
15년째 지리산 자락에 기대 살면서 이씨는 기후위기로 산이 변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정령치까지 올라가는 길이 절경으로 이름나 있고, 산악열차를 타면 그런 경치, 특히 차로 못 보는 설경을 기차를 타고 즐길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말이 안돼요. 제가 지리산에 처음 온 14~15년 전에 비하면 지리산에서 설경을 구경할 수 있는 날들도 적어지고 있거든요. (온난화로) 눈이 금세 녹아 없어지는 구간의 높이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처음 지리산에 왔을 땐, 겨울에 눈이 오면 (해발 500m 가량인) 우리집에서도 고립이 되어 나갈 수가 없었는데, 요즘엔 그런 일이 없죠.”
지리산 친환경 전기 열차 노선도. 그래픽 영상소셜팀 전가영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육모정에서 정령치까지 이르는 길은 산을 깎아 만든 구불구불한 2차선 도로로, 겨울철에는 때때로 통행이 제한되는 고갯길이다. 남원시와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해당 구간 중 지리산 국립공원에 해당하지 않는 고기삼거리~고기댐 사이 1km 구간을 시범 노선으로 설정해 설계를 진행 중이다. 이 길에 열차가 잘 다닐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1㎞ 시범 노선에서의 ‘실험’이 성공하면, 열차는 상용화 단계를 밟게 된다. 남원시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하며 “해당 도로에서 1개 차선을 연장해 시범 사업을 해보고, 이상없이 된다고 판단하면 환경단체들을 이해시켜 가면서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이 사업은 ‘기후대응기금’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립공원이 있는 지리산에 배기 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자동차 대신 전기 열차를 다니게 할 수 있으니 기후위기 대응이란 취지다. 2024년에는 ‘산악 벽지용 친환경 전기 열차기술개발(R&D)’이라는 사업명으로 기후대응기금 가운데 23억2800만원이 예산으로 책정돼 있다.
환경단체 등은 이 사업이 ‘친환경’으로 포장해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정책이라고 꼬집는다. 윤주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국시모) 공동대표는 “처음에는 나무 한 그루 안 벤다고 하더니, 남원시의회가 (지난해 10월25일) 본회의에서 산악열차 시범사업 구간 벌목 허가해달라는 내용의 동의안에 의결을 해줬다”며 “시범사업도 이런데, 이 사업이 실제 지리산 안에서 이뤄질 때는 숲 파괴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탄소 배출량의 절반 가까이 흡수하는 국립공원 탄소저장량. 자료 국립공원연구원, 그래픽 영상소셜팀 전가영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숲이 파괴된다는 건 거대한 ‘탄소저장고’에 구멍이 생긴다는 뜻이다. 다양한 수종으로 숲이 풍부한 국립공원은 실제 우리나라 탄소배출량의 절반 가까이 흡수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21년 국립공원연구원이 발표한 ‘국립공원 생태계 부문 탄소 저장량 평가’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22개 국립공원 육상생태계의 탄소저장량은 3억47백만tCO₂(이산화탄소톤)이다. 국립공원연구원은 5~6년에 한번씩 국립공원 탄소 저장량을 평가·분석해 발표하는데, 2023년 현재도 총 저장량이 2021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가장 최근 집계된 2020년 국내 온실가스 총배출량이 6억5천6백만tCO₂eq(톤이산화탄소환산량,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가 한해 내뿜는 탄소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국립공원이 흡수하고 있는 셈이다.
국립공원은 단위면적당 탄소저장량 또한 많아 효율성 측면에서도 이른바 ‘가성비’가 좋다. 국립공원연구원에 따르면, 국립공원의 단위면적당 탄소저장량은 우리나라 산림 평균보다 1.7배, 아시아 산림 평균보다 1.8배, 세계 산림 평균보다 1.5배 많다.
국립공원의 기능을 강화해야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립공원연구원은 2022년에 낸 ‘국립공원 육상생태계 탄소저장·흡수량 평가 체계구축’ 보고서를 보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 NbS)이 세계적으로 새로운 해법으로 떠오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자연기반해법은 “특히 국립공원과 같은 보호지역 자연·생태계의 탄소 저장·흡수 기능에 주목하고 있으며, 보호지역의 확대 및 정책 개선, 재원 증대 자체가 결과적으로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 기능을 강화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리산 산악열차 개발은 거대한 탄소저장고인 국립공원을 훼손하는 많은 사업 중 하나다. 지리산국립공원만해도 안팎에서 케이블카, 골프장 건립 등이 이뤄지며 몸살을 앓고 있다. 지리산 자락 전남 구례 일원에 계획 중인 양수댐도 거대한 탄소저장고에 구멍을 낼 수 있다.
23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리는 ‘923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는 이들이 ‘국립공원 개발 사업 반대’ 구호를 외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날 지리산 자락에서도 지리산 산악열차와 케이블카, 골프장, 양수댐 등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대규모 개발 계획에 반대하는 행진이 예정돼 있다. 참여자들은 이날 오전 9시30분 성삼재 주차장에 모여 노고단대피소까지 천천히 걸어 각자 싸온 점심을 먹고, 각자 준비해온 손팻말 등을 가지고 퍼포먼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