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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원자력 종사자 30만명 역학조사…“저선량 방사선 노출도 발암 위험”

등록 2023-08-20 18:22수정 2023-11-08 20:42

최대 규모 국제공동연구 조사 결과
전문가 “안전한 기준치 없다 입증한 것”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 있는 오염수 저장탱크들. 일본은 이렇게 저장 중인 원전 사고 오염수 133만t을 30년에 걸쳐 바다로 방류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 있는 오염수 저장탱크들. 일본은 이렇게 저장 중인 원전 사고 오염수 133만t을 30년에 걸쳐 바다로 방류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방사선 작업 종사들에게 허용되는 연간 누적 방사선량의 절반도 안되는 방사선 피폭으로도 암 발병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국제 공동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한 적은 양의 방사선 피폭으로도 발암 위험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안전한 ‘방사선 기준치’에 대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국제암연구소(IARC),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소(NIOSH), 프랑스 방사선방호 및 핵안전연구소(IRSN) 등의 연구자들로 구성된 국제 공동연구팀은 미국·프랑스·영국의 원자력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영국의학저널’(The BMJ)에 최근 발표했다. 이번 연구팀이 수행한 역학 조사는 1944년 이후 70여년 동안 미국·영국·프랑스의 원자력산업 종사자 30만9932명 가운데 사망자 10만3553명의 사망 원인을 추적한 것으로, 지금까지 이뤄진 방사능 건강 영향 역학조사 중 최대규모다.

연구 결과, 누적 방사선 흡수선량 0~20mGy(밀리그레이)에 피폭된 이들의 고형암 사망 ‘초과 상대 위험비’가 Gy당 1.30이었다. 이는 누적 흡수선량 20mGy 이하 저선량의 방사선으로도 혈액을 제외한 장기에 발생하는 고형암 초과사망위험을 Gy당 130% 증가시킨다는 뜻이다.

방사선량 20mGy은 일반인이 연 평균 3mSv(밀리시버트) 피복되는 자연 방사선을 7년쯤 축척하면 되는 양이다. X-RAY나 CT를 찍을 때 피폭되는 의료용 방사선까지 더하면 기간은 더 짧아진다. 또 이는 방사선 작업 종사자들에게 허용되는 연간 누적 선량한도 50mSv보다 낮다. 그레이(Gy)는 물질이 흡수한 방사선 에너지를 나타내는 흡수선량의 단위이고 시버트(Sv)는 방사선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인체 영향을 고려한 유효선량의 단위로, 기본적으로 크기가 같다고 간주된다.

이 연구에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암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는 누적 선량의 범위가 ‘0’까지 내려간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누적 선량과 10년 뒤 고형암 사망률 사이의 연관성이 ‘선형 모델’로 합리적으로 설명된다. 누적 선량을 0~200mGy 범위로 제한해도 선형 모델로 잘 설명된다”고 밝혔다. 선형 모델은 방사선 피폭량과 암 발생 사이의 관계를 원점(0)을 지나는 직선으로 나타낸 모델이다. 방사선은 피폭량이 아무리 적어도 유해하며, 유해 정도가 누적되는 선량에 따라 선형으로 계속 증가한다고 보는 것이다.

국제암연구소(IARC) 등이 참여한 국제원자력종사자연구(INWORKS) 연구 논문에 제시된 저선량 방사선 누적 흡수선량(Cumulative dose)과 고형암 사망률 상대 위험비(Relative rate) 관계 그래프. 방사선 노출에 따른 발암 위험이 누적선량 ‘0’에서부터 선형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출처:‘프랑스, 영국 및 미국 노동자의 전리방사선 저선량 노출 뒤 암 사망률(INWORKS):코호트 연구’
국제암연구소(IARC) 등이 참여한 국제원자력종사자연구(INWORKS) 연구 논문에 제시된 저선량 방사선 누적 흡수선량(Cumulative dose)과 고형암 사망률 상대 위험비(Relative rate) 관계 그래프. 방사선 노출에 따른 발암 위험이 누적선량 ‘0’에서부터 선형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출처:‘프랑스, 영국 및 미국 노동자의 전리방사선 저선량 노출 뒤 암 사망률(INWORKS):코호트 연구’

원전산업계와 원자력학계에서는 낮은 수준의 방사선 노출은 인체에 영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관련 노동자들과 일반인을 방사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 장치로 설정한 선량한도 기준을 절대적인 안전 기준치로 간주하고, 그 기준선만 넘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원전산업계가 굳게 믿는 선량한도 기준이 주로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기반으로 설정됐다는 점이다. 이 생존자들의 방사선 피폭은 대부분 원폭 폭발 1초 이내에 한꺼번에 이뤄진 것이어서, 저선량에 장기간 피폭되는 원전 노동자와 일반인들의 상황과는 다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사람들은 종종 저선량 피폭이 일본 원폭 생존자들이 경험한 고선량 피폭에 비해 발암 위험이 적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연구는 낮은 선량률로 방사선에 노출되는 노동자들 사이에 단위 피폭량당 고형암 위험이 감소하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낮은 선량으로 누적돼도 발암 위험이 있다는 이야기다.

원자력안전위원을 지낸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원자력계에서 ‘이 정도까지는 안전하다’고 했던 저선량에서도 암 발생 증가가 확인된 것은 ‘기준치 이하면 안전하다’는 이야기의 근거가 없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건강 영향을 다루는 역학 조사라는 것은 조사 대상이 클수록 정확한 결과가 나오는데, 이번에 연구한 모집단의 규모가 크다보니까 통계학적으로 작은 피폭량 차이가 잘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백도명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전 서울대 보건대학원장)는 “방사선 위험 영향이 선형으로 설명이 된다는 것은 방사선량이 조금이라도 높으면 영향도 높아지는 인과관계라는 얘기”라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따른 환경 방사선 문제와 관련해 ‘저선량은 상관 없다’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연구”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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