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드 앨리슨 옥스퍼드대 명예교수가 15일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원자력학회 주최로 서울 세종대로 HJ비지니스센터 광화문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후쿠시마 오염수 1리터를 바로 마실 수 있다.”
웨이드 앨리슨(82)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가 지난 15일 기자들을 만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적극 옹호해 논란이다. 앨리슨 교수는 40년 이상 방사선 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쳐온 실험 입자물리학자로, <공포가 과학을 집어 삼켰다>, <핵은 생명을 위한 것이다: 문화혁명> 등의 책을 통해 원자력 이용 확대를 역설해온 학자다. 그는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해 강연을 하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지역의 지도자, 주민들과 만나기도 했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원자력학회 초청으로 열렸다.
앨리슨 교수는 이날 ‘저선량 방사선 영향과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공포가 집어삼킨 과학’을 주제로 한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지금 내 앞에 희석되지 않은 후쿠시마 물 1리터가 있다면 바로 마실 수 있다. 만약 그 물을 마셨다고 계산해 보면 자연적인 수준의 80% 수준밖에 방사선 수치가 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염수 속에 제거되지 않은 방사성 물질로 몸 속 방사선 수치가 80% 정도 증가하는 정도는 큰 문제가 될 정도는 신경쓰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팩트를 가릴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신념 문제다. 다만, 그 배경에 깔린 팩트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WHO 정한 음용수 기준의 70배인데, 괜찮다고?
“후쿠시마 오염수 1리터를 바로 마실 수 있다”는 앨리슨 교수의 주장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2021년 초 월성원전 지하 삼중수소 유출 논란 때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도 같은 맥락에서 이른바 ‘바나나·멸치론’을 주장한 바 있다. 정 교수는 당시 페이스북에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이 삼중수소로 노출되는 방사선량은 (자연 상태에서 방사능 칼륨을 함유한 식품인) 바나나 6개, 멸치 1g에 해당하는 양”이라는 글을 올렸다. 정 교수는 최근 언론 기고에서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로) 방류기준에 딱 맞는 물 1리터를 먹는다면 그 피폭량은 바나나 8개를 먹을 때와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는 사실일까.
일본 도쿄전력의 분석 결과를 보면, 앨리슨 교수가 마시겠다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는 리터당 평균 70만Bq(베크렐) 이상의 삼중수소가 함유돼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인간 건강을 위해 설정한 음용수 기준(1만Bq/L)의 70배가 넘는다.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이 기준은 어린이와 같은 민감한 계층의 장기간 섭취까지 고려한 것이라는 점에서, 앨리슨 교수처럼 기준치를 넘는 물을 한 번 마시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이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령 화장실 변기에서 내린 물이라면, 음용수 기준에 맞도록 정화해 내놓는다고 해도, 그 물을 마신다고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방사선이 생물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의 생각은 앨리슨 교수의 생각과 크게 다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생물학과 티머시 무소 교수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안전한 방사선이란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오염수 등을 통해 피폭될 인공 방사선량이 자연 방사선 노출이나 엑스선 촬영 등을 통해 불가피하게 피폭되는 방사선량에 비해 미미할 수 있지만, 그것이 불필요한 방사선 노출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못된다는 취지다. 무소 교수는 방사선 생물학 전문가로, 최근 체르노빌 원전사고 지역에 사는 야생화된 개들의 유전자가 방사선 피폭의 영향으로 변형됐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가 음용수에 삼중수소와 같은 방사성 물질 함유량 기준을 정한 것은 과학계 주류의 생각이 앨리슨 교수보다는 무소 교수 쪽에 가깝다는 방증이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삼중수소처럼 ‘베타입자를 방출하는 방사선 핵종의 인체 내부 침착’도 제1군 발암원으로 분류하고 있다.
앨리슨 교수는 이날 간담회 질의 답변에서 한국이 일본과 협의 중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시찰과 관련해 여러 차례 “일본을 신뢰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한다고 제시하는 근거는 불분명했거나, 과학자답지 않게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이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시료를 직접 검증 못했는데, 이상 없다고 확신하는가”라는 질문에 “확신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불이나 자동차의 위험성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는 안전성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답한 게 대표적이다.
“신뢰보다 과학이 앞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은 도리어 기자의 입에서 나왔다. 이 기자가 “일본은 오염수 관련 수치만 제공하고 직접 확인을 못하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앨리슨 교수는 “일본 정부를 신뢰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한국 시찰단이 다핵종제거설비를 점검하려는 것을 두고도 “확인해야 할 건 일본의 정책”이라며 “별도의 문제도 아니고 (오염수를) 따로 측정할 문제도 아니다”고 말했다.
‘일본을 신뢰해야 한다’는 앨리슨 교수의 발언은, 2020년 11월3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신문은 그해 9월26일 스가 요시히데 당시 총리가 후쿠시마 제1원전을 방문해 원전 오염수를 정화 처리한 물을 보고 “마셔도 되냐”고 물었다고 전했다. “희석하면 마실 수 있다”는 도쿄전력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한 질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스가 총리는 오염수 정화 처리한 물을 마셨을까?
오염수를 마시지는 않았다는 게 아사히 신문의 전언이다. 신문은 “(스가 총리가) 설사 마셨다고 해도 오염수에 대해 ‘안전하다’라거나 ‘그래서 바다로 흘려보내도 괜찮다’는 인식이 세간에 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 팩트와 다른 발언은…방사선 분야 전문가의 ‘실수’?
<한국방송>(KBS)이 현장 통역을 받아 보도한 앨리슨 교수의 발언 전문을 보면 이처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을 강조하려는 과정에서, 앨리스는 교수는 팩트와 다른 발언을 여러 번 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 두 가지만 꼽으면 다음과 같다.
①“삼중수소도 수소의 한 종류입니다. 물과 함께 씻겨가고 반감기가 12년이라고 하지만, 몸 안에서는 12~14일 이후에는 다 배출됩니다.”
☞삼중수소의 반감기가 약 12년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2~14일 이후에 전부 배출되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발간 자료인 ‘방사성 핵종 섭취로 인한 일반인의 연령 의존 선량’(자료번호 56)을 보면 삼중수소의 체내 반감기는 약 10일이지만, 이 삼중수소가 체내에서 유기물과 결합해 유기결합삼중수소(OBT)로 바뀌면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약 40일이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다.
방호위원회에서 아직 공인되지 않은 연구 결과 가운데는 일부 유기결합삼중수소의 체내 반감기를 500일까지 길게 잡은 것도 있다. 방사선방호위원회는 체내에 흡수된 삼중수소의 약 3%가 유기결합삼중수소로 전환된다고 본다.
방사선이 생물체에 끼치는 영향을 나타내는 생물학적 효과비(REB)는 삼중수소가 플루토늄이나 세슘보다도 높다. 방사선방호위원회가 지난해 발간한 ‘참조 동·식물에 대한 방사선 가중치'(자료번호 148)를 보면 삼중수소가 방출하는 저에너지 베타선의 생물학적 효과비는 세슘137 등에서 배출하는 고에너지 감마선의 2~2.5배, 엑스선의 1.5~2배에 이른다. 고에너지 방사선은 투과력이 강해 순간적으로 영향을 주고 바로 빠져나가지만 저에너지 방사선은 투과력이 약해 체내에 더 오래 머무르며 내부피폭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②“이때(브라질에서 발생했던 한 핵 사고) 사망하신 분들은 피폭으로 인한 암이 아니고 공포심이나 부차적인 요인으로 사망한 걸로 보입니다. 방사선이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알파입자를 방출하는 방사선 핵종의 내부 침착’, ‘베타입자를 방출하는 방사선 핵종의 내부 침착’ 등을 제1군 발암원으로 분류하고 있다. 앨리슨 교수는 이어진 질문 답변과정에서 “태양에서 나오는 자외선이 방사선 중 하나”라며 “자외선을 너무 많이 쐬면 암을 유발한다는 걸 알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앨리슨 교수 스스로 자신의 앞선 발언을 부정한 셈이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